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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이건희 컬렉션, 워싱턴 D.C.서 세계 무대 첫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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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이건희 컬렉션, 워싱턴 D.C.서 세계 무대 첫선

정선 '인왕제색도' 등 국보급 200점 공개…한미 문화외교 새 장 열어
이병철-이건희 대 이은 '문화 보국' 정신…시카고·런던 순회 예정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 이건희 컬렉션 주요 작품들이 스미스소니언 국립아시아미술관에서 열리는 첫 해외 특별전 '한국의 보물'에서 공개된다. 이번 전시는 한국 미술의 정수를 세계에 알리는 중요한 문화외교의 장으로 평가받는다. 사진=이건희 컬렉션이미지 확대보기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 이건희 컬렉션 주요 작품들이 스미스소니언 국립아시아미술관에서 열리는 첫 해외 특별전 '한국의 보물'에서 공개된다. 이번 전시는 한국 미술의 정수를 세계에 알리는 중요한 문화외교의 장으로 평가받는다. 사진=이건희 컬렉션

한국 미술사의 정수가 담긴 '이건희 컬렉션'이 마침내 세계 무대에 오른다. 오는 11월 미국 워싱턴 D.C.의 스미스소니언 국립아시아미술관(NMAA)에서 '한국의 보물: 수집하고, 아끼고, 나누다(Korean Treasures: Collected, Cherished, Shared)'라는 이름으로 막을 올리는 이번 전시는 한국 최대 개인 소장 미술품의 첫 해외 순회 전시이다. 다수의 국보와 보물이 미국에 처음 공개된다는 점에서 단순한 미술 전시를 넘어 한국 문화 외교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중요한 이정표가 될 전망이라고 워싱턴포스트가 13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이번 전시는 2021년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의 유족이 대한민국에 기증한 23,000여 점의 방대한 문화유산 가운데 엄선한 작품들로 꾸렸다. 이 회장은 삼성전자를 세계 최고 기업으로 이끈 경영인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국내에서는 우리 문화유산에 깊은 애정과 헌신을 보여준 미술품 수집가로서도 큰 족적을 남겼다. 그에게 예술품 수집은 단순한 소유의 개념을 넘어섰다. "문화유산 보호는 인류의 미래를 위한 의무"라는 철학을 평생에 걸쳐 실천했다. 예술에 대한 그의 깊은 안목과 애정은 부친인 고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의 유지를 잇는 것이기도 했다. 이병철 창업회장의 초기 수장품들은 오늘날 국보 14점과 보물 46점을 포함한 이건희 컬렉션의 굳건한 초석이 되었다.

2021년 기증 이후 '이건희 컬렉션'은 국내 주요 박물관에서 순회 전시를 열어 2024년까지 350만 명이 넘는 관람객을 동원하며 온 국민의 큰 호응을 얻었고, 한국 문화의 저력을 확인시키며 국민의 자긍심을 한층 높였다. 이러한 성공을 바탕으로 마련한 이번 해외 전시는 한국 미술의 아름다움을 세계인과 공유하는 새로운 장을 연다. 워싱턴 D.C.에서 시작해 2026년 시카고 미술관으로 이어지는 여정은 한국의 예술혼을 세계 관객과 잇는 교두보를 마련했다는 평가다.

워싱턴 전시에서는 1,500년의 한국 미술사를 아우르는 200여 점의 명작이 관객을 맞는다. 삼국시대부터 고려, 조선을 거쳐 근현대에 이르는 대표 불상과 고아한 도자기, 궁중과 학자들이 사용했던 가구, 달항아리, 책가도 등 장르 또한 다채롭다. 전시의 백미는 단연 겸재 정선의 18세기 걸작 '인왕제색도(1751, 국보)'다. 이 작품은 중국 화풍을 넘어 한국 고유의 진경산수 화풍을 확립한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이와 함께 김환기, 박수근 등 근현대 거장들의 작품까지 망라하며 한국 미술의 과거와 현재를 조망한다.

문화 보국의 철학, 세계와 나누다


이건희 회장이 남긴 경영 유산은 뚜렷하다. 1993년 그가 선언한 '신경영' 철학은 삼성이 세계 시장을 제패하는 원동력이었다. 예술에 대한 그의 열정은 이러한 눈부신 사업 성취와 나란히 했다. 이번 해외 전시는 부인 홍라희 여사와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비롯한 유족들의 결단으로 성사했다. 유족들은 고인의 뜻을 계승하며 그의 개인 유산을 기리는 동시에, 한국 사회의 기부 문화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이러한 헌신은 삼성 가문 예술 후원의 상징이다. 이는 기술을 넘어 의미 있는 연결을 만들고 새로운 창의성에 영감을 불어넣으며, 깊이 있는 문화유산을 존중하려는 삼성의 철학과도 맥을 같이한다.

K-컬처의 뿌리, 세계를 매혹하다


지난 10년간 K팝, K드라마 등 한국 문화는 세계적인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이번 전시는 K-컬처의 화려함 이면에 있는 깊고 단단한 문화의 뿌리를 세계인에게 선보이는 기회다. 이번 전시는 스미스소니언 국립아시아미술관과 시카고 미술관이 기획을 주도하고, 소장 기관인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이 협력해 완성도를 높였다.

스미스소니언 국립아시아미술관의 체이스 F. 로빈슨 관장은 "이번 전시는 한국 미술의 풍요로움과 깊이를 미국 관객에게 선보일 드물고 특별한 기회"라며 "문화유산 공유를 통해 미래를 창조한다는 점에서 우리 미술관의 설립 정신과도 일치한다"고 밝혔다.

워싱턴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한 기업을 넘어 한 국가의 위상을 재정립하고, 이제는 전 인류의 자산이 된 위대한 문화유산을 남긴 한 리더의 비전을 세계인들이 직접 마주하는 자리가 된다. 미국 순회 전시에 이어 영국 런던 전시도 예정돼 있어 이건희 컬렉션의 세계 순회 여정은 계속될 전망이다.

전시 정보


전시명: 한국의 보물: 수집하고, 아끼고, 나누다 (Korean Treasures: Collected, Cherished, Shared)

장소 및 기간:

스미스소니언 국립아시아미술관 (워싱턴 D.C.): 2025년 11월 8일 ~ 2026년 2월 1일

시카고 미술관 (시카고): 2026년 3월 7일 ~ 2026년 7월 5일

큐레이터:

국립아시아미술관: 키스 윌슨, 캐럴 허, 황선우

수석 큐레이터: 지연수 (시카고 미술관)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