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 만의 신공장 투자로 생산량 1.5배 확대…첨단 패키징 시장 선점
'디지털 노광' 기술로 비용 절감·대형 기판 공략…옛 라이벌 경쟁 재점화
'디지털 노광' 기술로 비용 절감·대형 기판 공략…옛 라이벌 경쟁 재점화

지난 7월 30일 캐논은 우쓰노미야시 기요하라 공업단지에서 21년 만에 반도체 장비 신공장 문을 열었다. 미타라이 후지오 캐논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는 "이 공장은 세계 산업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며 "세계 최고 수준의 장비를 곳곳에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약 500억 엔(약 4691억 원)을 들여 연면적 약 6만 7500㎡ 규모로 지은 이 공장은 반도체 후공정 노광장비의 핵심 부품을 생산하며, 캐논의 생산 능력을 1.5배 높이는 핵심 거점이다.
캐논이 대규모 투자에 나선 데에는 생성형 AI의 폭발적인 성장이 있다. AI 연산에 꼭 필요한 그래픽처리장치(GPU)와 고대역폭 메모리(HBM) 등을 하나의 칩처럼 묶는 첨단 패키징 기술 수요가 급증하면서, 관련 후공정 장비 시장이 새로운 기회의 땅으로 떠올랐다. 미우라 세이야 캐논 반도체기기 사업부장은 "노광장비 전체 출하량이 2024년 233대, 2025년에는 255대에 이를 것으로 보여 급증하고 있다"고 말했다.
캐논이 이처럼 압도적인 지위를 차지한 배경에는 과거의 전략적 선택이 있다. 첨단 패키징용 노광장비 시장에서 캐논의 점유율(수량 기준)은 거의 100%에 이른다. 본래 전공정 노광장비의 강자였으나, 최첨단 EUV 장비 개발 경쟁에서 2009년 무렵부터 네덜란드 ASML에 뒤처지며 결국 이 시장에서 철수했다. 이후 캐논은 빛의 파장이 더 긴 'i-line'이나 '불화 크립톤(KrF)'을 쓰는 구형 장비에 집중하며 생존을 꾀했다. 당시만 해도 첨단 기술 경쟁에서 밀려난 듯 보였지만, 차량용 파워 반도체나 메모리처럼 상대적으로 선폭이 넓은 반도체 시장의 꾸준한 수요에 대응한 끈기가 지금의 후공정 시장 지배력이라는 결실을 낳았다.
'전통'의 캐논이냐 '혁신'의 니콘이냐
지금까지 반도체 성능은 전공정에서 회로 선폭을 줄이는 미세화를 통해 높여왔다. 하지만 기술 한계에 부딪히면서, 여러 칩을 수직·수평으로 연결해 성능을 높이는 후공정 패키징 기술의 중요성이 커졌다. 캐논의 후공정 노광장비는 칩들을 잇는 '인터포저'라는 중간 기판에 미세 회로를 새기는 핵심 역할을 하며 독주 체제를 세웠다.
이러한 캐논의 독주에 제동을 건 것은 옛 라이벌 니콘이다. 니콘은 지난 7월, "신형 노광장비 수주를 2025년 7월부터 시작한다"고 알리며 후공정 시장 진출을 공식화했다. 특히 업계의 눈길을 끈 것은 '디지털 노광'이라는 새로운 기술이었다.
캐논의 '투영 노광' 방식은 회로 패턴이 그려진 포토마스크에 빛을 쪼여 회로를 복사하는 전통 방식이다. 반면 니콘의 '디지털(다이렉트) 노광'은 포토마스크 없이 CAD 설계 데이터를 바탕으로 레이저를 이용해 기판에 직접 회로를 그린다. 니콘은 이 방식이 값비싼 포토마스크 제작 비용을 없애고, 600mm 정사각형 같은 대형 기판에 회로를 만드는 데 더 낫다고 주장한다. 미즈노 히토시 니콘 정기사업본부 과장은 평판 디스플레이(FPD) 장비에서 쌓은 렌즈 제어 기술을 써서 "선폭 1마이크로미터의 고해상도 구현도 가능하다"고 자신했다.
후공정 둘러싼 일본 기업 간 경쟁 격화
후공정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보고 뛰어든 것은 니콘뿐만이 아니다. 우시오 전기는 미국 어플라이드 머티리얼즈와 손잡고 2026년 3월 말까지 다이렉트 노광 제품을 시장에 내놓을 예정이며, SCREEN 홀딩스도 연내 신제품을 출시할 계획이다. 스마트폰 기판용 다이렉트 노광 분야에서 오랜 실적을 쌓은 비상장 기업 오크 제작소 역시 첨단 패키징 시장 공략을 강화하고 있다.
앞으로 경쟁의 핵심은 기술 주도권 싸움이다. 다이렉트 노광 진영은 캐논의 투영 방식이 대형 기판 작업 때 여러 번 찍어내는 과정에서 연결 부위에 오차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한다. 아오키 카즈야 우시오 전기 부문 차장은 "다이렉트 노광은 오차 문제가 없고 포토마스크를 쓰지 않아 비용도 낮다"며 신기술의 장점을 내세웠다. 다만 업계에서는 캐논이 이 문제를 완전히 해결했는지를 신중하게 보는 시각도 있다.
이에 캐논은 정면으로 맞선다. 미우라 사업부장은 "정밀한 위치 보정 기능으로 오차 문제는 해결했으며, 대형 기판에서의 작업 속도와 생산성은 투영 노광 방식이 훨씬 높다"고 주장했다. 기판이 커질수록 생기는 기판 자체의 휨이나 뒤틀림 문제는 양쪽 모두에게 남겨진 숙제다. 하시모토 노리오 오크 제작소 회장은 이를 공통된 기술 난제로 꼽았다.
생성형 AI가 이끄는 반도체 기술 혁신이 새로운 시장을 열면서 캐논과 니콘의 해묵은 경쟁이 다시 시작됐다. 어느 기업이 제조 과정의 기술 난제를 가장 먼저 해결하고 시장의 기회를 잡을지, 반도체 장비 업계의 지각 변동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