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 하트랜드' 꿈 앗아간 18조 원 적자…완공 2030년으로 연기
美 정부 지원에도 경영난 심화…주민들 "끝없는 공사에 고통"
美 정부 지원에도 경영난 심화…주민들 "끝없는 공사에 고통"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24일(현지시각) 당초 2025년 완공을 목표로 했던 이 프로젝트가 인텔의 심각한 경영난으로 최소 2030년으로 연기되면서, 지역 사회의 기대가 깊은 불안감으로 바뀌고 있다고 보도했다. 표류의 근본 원인으로는 18조 원이 넘는 누적 적자를 낸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의 구조적 부진과, 생존을 위해 애플·엔비디아 등 외부 투자 유치에 사활을 걸어야 하는 인텔의 절박한 처지가 꼽힌다.
인텔은 2022년 오하이오주 콜럼버스 외곽의 신흥 데이터센터 중심지인 뉴올버니에 200억 달러(약 28조 원)를 시작으로 총 280억 달러(약 39조 원)를 투자해 최첨단 반도체 공장 두 곳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2025년 가동을 목표로 건설 일자리 7000개와 정규직 일자리 3000개를 약속했으며, 장기적으로 투자액이 1000억 달러(약 140조 원)에 이를 수 있다는 장밋빛 전망도 내놨다.
하지만 인텔이 치열한 반도체 경쟁에서 밀리면서 계획은 어긋나기 시작했다. 지난해 인텔은 최고경영자(CEO)를 바꾸고 전체 인력의 30%를 줄이는 구조조정에 들어가며 오하이오 사업을 두 번째 연기했다. 지난 7월 새로 부임한 인텔의 립부탄 CEO는 "시장 수요에 맞춰 지출을 조정하기 위해 공사 속도를 더욱 늦출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현장에는 약 1000명의 건설 인력만 있으며, 인텔은 2030~2031년 공장 가동을 목표로 비용 효율적인 완공을 준비 중이라고 설명했다.
흔들리는 '반도체 왕국'…18조 적자와 동업자 찾기
인텔의 위기는 'IDM 2.0' 전략의 핵심인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이 '재정 블랙홀'로 떨어진 탓이다. 첨단 공정 개발이 늦어지고 외부 고객 확보에 실패하면서 파운드리 사업부의 누적 적자는 130억 달러(약 18조 원)를 넘었고, 최근 3년간 영업손실은 180억 달러(약 25조 원)에 이른다. 시장 점유율은 1%대로 추락해 64%를 차지한 TSMC와의 격차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이런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립부탄 CEO는 외부 투자 유치에 모든 힘을 쏟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은 지난 24일 인텔이 애플과 투자 유치, 협력 확대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보도했다. 이 소식에 인텔 주가는 6.4% 급등했다. 이는 최근 경쟁사 엔비디아가 50억 달러(약 7조 원)를, 일본 소프트뱅크가 20억 달러(약 2조8000억 원)를 인텔에 투자한 데 이은 움직임이다. 업계에서는 파운드리 사업부의 분사나 매각설까지 나오는 가운데, 인텔이 생존을 위해 여러 동업자를 찾는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사업이 들어설 뉴올버니는 가구 중위 소득이 20만 달러(약 2억8000만 원)에 이르는 부유한 도시로, 아마존, 메타, 구글 등 대기업의 데이터센터를 유치하며 성장했다. 뉴올버니의 슬론 스폴딩 시장은 "인텔이 이미 수십억 달러를 썼기 때문에 사업을 완공할 것"이라며 "이 사업은 우리 시와 주뿐 아니라 국가를 위해서도 실패해서는 안 된다"고 기대를 나타냈다.
하지만 공장 터와 이웃한 존스타운의 분위기는 다르다. 존스타운의 티파니 홀리스 시의회 의장은 "한때 조용했던 마을 광장을 수백 대의 공사 트럭이 굉음을 내며 지나간다"며 "도로는 망가지고 도시는 목적지가 아닌 그저 거쳐 가는 곳으로 바뀌었다"고 호소했다. 그가 운영하는 식당 매출은 25%나 줄었고, '인텔 효과'를 기대했던 가게 여럿이 이미 문을 닫았다.
정부 지원에도 높은 불확실성의 벽
현 트럼프 행정부는 이 사업에 강력한 지원을 하고 있다. 정부가 직접 인텔 지분 10%를 확보한 데 이어, 반도체 공급망 자립을 목표로 한 '칩스법(CHIPS Act)'을 통해 인텔에 총 78억 달러(약 10조9200억 원)의 보조금을 지원했다. 이 가운데 약 15억 달러(약 2조1000억 원)가 뉴올버니 사업에 투입됐다.
인텔은 이 보조금을 바탕으로 미국 내 생산 시설에 1000억 달러(약 140조 원)를 투자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런 정치권의 초당적인 지원에도 인텔이 넘어야 할 산은 여전히 높다. 엔비디아·AMD 같은 경쟁사와 벌어진 기술 격차를 좁히고 막대한 투자금을 감당하는 일이 시급한 과제다.
결국 오하이오의 멈춰선 크레인은 인텔이 처한 위태로운 상황을 상징한다. '실리콘 하트랜드'의 운명은 이제 정부 보조금을 넘어, TSMC와의 기술 격차를 줄이고 애플 같은 거대 기업한테서 생존 자금을 확보하려는 인텔의 필사적인 노력에 달렸다. 한때 옥수수밭이었던 땅 위에서, 지역 주민들은 자신들의 삶을 좌우할 거대 기업의 전략적 선택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신세가 됐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