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스타트업 '벡사', 초소형 팹 쏘아올려 '완벽한 진공' 실험
발사 충격·고열 견딜까…2030년 상용화 두고 '기대 반 우려 반'
발사 충격·고열 견딜까…2030년 상용화 두고 '기대 반 우려 반'
이미지 확대보기인공지능(AI) 혁명이 촉발한 글로벌 반도체 경쟁이 지표면을 넘어 우주 궤도로 확전하고 있다. 공상과학(SF) 영화의 영역으로 치부되던 '우주 반도체 공장(Space-based fabs)' 구상이 민간 우주 기업들의 기술력과 결합해 구체적인 기술적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6일(현지 시각) IT 전문 매체 디지타임스에 따르면 최근 우주 스타트업인 '벡사 스페이스 인더스트리즈(Besxar Space Industries)'가 궤도상에서 반도체 미세 공정을 수행하는 초소형 팹인 '팹십(Fabship)' 프로젝트를 발표하며 이 무모해 보이는 도전에 불을 지폈다. 이는 인류가 지구상에서 구현할 수 있는 물리적 한계를 뛰어넘어, 우주라는 극한의 환경을 반도체 제조의 새로운 전진기지로 삼겠다는 야심 찬 시도로 해석된다.
"지구엔 없는 '진짜 진공' 찾아서"
지난 수개월 전 벡사 스페이스가 공개한 '팹십' 프로젝트의 핵심 논리는 단순하면서도 급진적이다. 지구상 그 어떤 첨단 장비로도 구현할 수 없는 '완벽한 진공'이 우주에는 무한히 존재한다는 점이다. 벡사 측은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대형강입자가속기(LHC)와 같은 거대 시설조차 흉내 낼 수 없는 우주의 자연 진공 환경이 반도체 공정의 '게임 체인저'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벡사 스페이스의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애슐리 필리피신(Ashley Pilipiszyn)은 이번 임무를 '궁극의 달걀 낙하 도전(Ultimate Egg Drop Challenge)'에 비유했다. 깨지기 쉬운 달걀을 높은 곳에서 떨어뜨려 온전하게 살려내는 실험처럼, 극도로 민감한 웨이퍼가 로켓 발사 시의 강력한 진동과 궤도 노출, 그리고 대기권 재진입 시 발생하는 고열과 충격을 견뎌낼 수 있는지를 테스트하는 것이 이번 미션의 1차적 목표라는 설명이다. 만약 웨이퍼의 구조적 무결성이 유지된다면, 이는 저궤도(LEO) 기반 반도체 제조의 가능성을 입증하는 기념비적인 사건이 될 것이다.
구글·엔비디아도 '우주 데이터센터' 눈독
반도체 제조뿐만 아니라 우주 공간을 AI 데이터센터로 활용하려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구글의 '프로젝트 선캐처(Project Suncatcher)'와 '스타클라우드(Starcloud)' 등은 저궤도에 텐서처리장치(TPU)와 엔비디아의 H100 프로세서를 배치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우주 공간에 서버를 띄워 지상의 데이터 처리 부하를 분산하고, 글로벌 네트워크 효율을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여기에 레이저 기반 전력 전송 기술을 개발 중인 '스타 캐처(Star Catcher)'와 같은 기업들이 가세하면서, 반도체 제조부터 데이터 처리, 전력 공급에 이르는 '우주 반도체 생태계'의 윤곽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발사 진동·비용…산적한 난제들
그러나 장밋빛 전망 이면에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공학적 난제들이 산적해 있다. 가장 큰 의문은 "과연 웨이퍼가 살아남을 수 있는가"이다. 발사 과정의 극심한 기계적 진동과 진공 노출, 그리고 지구 귀환 시의 열적 스트레스는 웨이퍼에 미세 균열(microcracks)이나 박리(delamination), 구조적 변형을 일으킬 치명적 위험 요인이다. 벡사가 2025년 첫 실험을 시작으로 2026년 중반까지 총 12차례의 궤도 테스트를 계획하고 있는 이유도 이러한 데이터 확보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경제성 문제도 무시할 수 없다. 재사용 로켓 덕분에 우주 발사 비용이 낮아지고 있다고는 하나, 여전히 발사, 회수, 유지 보수에 드는 비용은 막대하다. 우주에서 생산된 칩이 지상의 칩보다 월등한 순도나 수율을 보장하지 않는다면, 상업적 대량 생산은 요원한 꿈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빨라야 2030년에야 상업적으로 유의미한 '우주 제조 칩'이 등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TSMC 대체?…"특수 칩 틈새시장 될 것"
업계 전문가들은 우주 파운드리가 기술적으로 실현된다 하더라도, TSMC나 삼성전자와 같은 기존의 거대 파운드리를 즉각적으로 대체하지는 못할 것으로 분석한다. 대신 고성능 칩이나 특수 목적용 소량을 생산하는 '틈새시장'을 형성할 가능성이 높다. 혹은 박막 증착과 같이 초고진공이 필수적인 공정 단계만 우주에서 수행하고, 나머지 공정은 지상에서 마무리하는 '하이브리드 모델'이 현실적인 대안으로 거론된다.
결국 우주 반도체 제조는 글로벌 공급망의 지리적 집중 위험을 분산하고 다변화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녔다. 장기적으로는 기존 파운드리 업체들이 우주 제조 기업과 협력하거나 자체적인 우주 공정 기술을 확보해야 할 시점이 도래할 수도 있다. 물론 높은 웨이퍼 손실률과 비용 문제, 규제 장벽 등에 부딪혀 이 모든 시도가 단순한 '과학 실험'으로 끝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스페이스X, 블루 오리진, 로켓랩 등 발사체 기업들에게는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는 기회임이 분명하며, AI와 우주 산업의 결합은 반도체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어젖히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