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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마이크론, 삼성 제치고 세계 HBM 시장 2위 등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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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마이크론, 삼성 제치고 세계 HBM 시장 2위 등극

SK하이닉스 62%로 1위 수성…AI 수요 속 한·미·중 3강 경쟁 가속
삼성, HBM4로 반격 예고…'HBM 주도권' 향한 기술·정치 전쟁 본격화
미국 마이크론이 2분기 글로벌 고대역폭 메모리(HBM) 시장에서 삼성전자를 제치고 출하량 기준 2위에 올랐다. SK하이닉스가 62% 점유율로 1위를 지킨 가운데, AI 수요 확대 속에 한국·미국·중국의 HBM 주도권 경쟁이 한층 치열해지고 있다. 사진=오픈AI 챗GPT-5가 생성한 이미지이미지 확대보기
미국 마이크론이 2분기 글로벌 고대역폭 메모리(HBM) 시장에서 삼성전자를 제치고 출하량 기준 2위에 올랐다. SK하이닉스가 62% 점유율로 1위를 지킨 가운데, AI 수요 확대 속에 한국·미국·중국의 HBM 주도권 경쟁이 한층 치열해지고 있다. 사진=오픈AI 챗GPT-5가 생성한 이미지

글로벌 고대역폭 메모리(HBM) 시장의 판도가 요동치고 있다. 미국의 마이크론 테크놀로지가 2분기 세계 출하량 기준으로 삼성전자를 제치고 처음으로 2위에 올랐다. 26일(현지시각) 시장조사기관 카운터포인트 리서치에 따르면, SK하이닉스가 62%의 점유율로 절대 강자의 자리를 지킨 가운데, 마이크론이 21%를 기록하며 삼성전자(17%)를 근소하게 앞섰다.

이번 성과는 마이크론의 공격적인 기술 투자와 시장 선점 전략이 결실을 맺은 결과다. 마이크론의 2024년 4분기 매출은 사상 최고치인 113억5000만 달러(약 16조 원)에 달했으며, 이 중 20억 달러(약 2조8000억 원)가 HBM 제품에서 발생했다. AI 데이터센터와 고성능 컴퓨팅(HPC) 수요 폭증이 실적을 견인했다. 특히 HBM3E 12-Hi 제품의 출하가 늘어나며 매출과 점유율이 동시에 상승했고, HBM4 샘플도 주요 고객사에 공급을 시작했다. 마이크론은 2026년 본격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마이크론은 미국 내 신규 메모리 생산시설 구축과 약 2000억 달러(약 280조 원) 규모의 장기 투자 계획을 추진 중이다. 이는 미국 정부의 반도체 산업 육성 정책과 맞물려 글로벌 공급망 내 입지를 공고히 하려는 전략으로 평가된다. 지정학적 요인 또한 마이크론의 상승세를 뒷받침하고 있다고 디지타임스 아시아는 분석했다. 미·중 갈등 속에서 미국과 유럽의 주요 IT·AI 기업들이 아시아 공급망 의존도를 낮추려 하면서, 마이크론은 자연스럽게 '서방권 대표 HBM 공급자'로 부상했다.

삼성전자는 17% 점유율로 3위에 머물렀지만, 2026년 이후 반격을 준비 중이다. 삼성은 주요 고객사들로부터 HBM3E 인증을 속속 확보하고 있으며, 차세대 HBM4 개발을 완료했다. 10나노급 6세대(1c) D램 공정을 적용한 HBM4는 기존 제품 대비 에너지 효율이 40% 향상되고, 최대 전송 속도는 11Gbps에 달한다. 평택 P5 공장의 신증설을 통한 대규모 생산 능력 확충도 병행하고 있다. 삼성은 내년 HBM4의 본격 양산과 함께 시장 점유율을 30% 이상으로 회복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다만 단기적으로는 메모리 가격 상승과 공급 부족 현상으로 시장 변동성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HBM 수요는 급증하지만, 생산 공정의 복잡성과 원자재 가격 상승이 부담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의 주도권은 여전히 확고하다. SK하이닉스와 삼성이 글로벌 HBM 생산량의 약 80%를 차지하며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를 비롯한 주요 AI 반도체 고객사에 HBM3E를 독점 공급하며 'AI 메모리 강자'의 위상을 확고히 하고 있다. 반면 삼성은 자체 고객 생태계를 중심으로 기술 차별화에 집중하고 있으며, HBM4를 통해 효율성과 안정성 면에서 우위를 되찾겠다는 전략이다.

그러나 경쟁자들의 추격도 거세다. 중국의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는 HBM3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화웨이 역시 자체 HBM 칩의 초기 개발을 시작했다. 하지만 CXMT는 발열 제어와 클럭 속도 등 핵심 기술 한계로 인해 양산 일정이 2026년 하반기로 미뤄질 가능성이 크고, 화웨이의 시제품은 기존 제품 속도의 절반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그럼에도 중국 정부의 전폭적 지원 아래 HBM 생태계 구축이 가속화되고 있어, 향후 중장기적 위협으로 부상할 전망이다.

AI 붐이 전 세계 반도체 산업을 재편하면서 HBM은 단순한 메모리가 아닌 '전략 자산'으로 자리 잡았다. AI 연산 효율을 좌우하는 핵심 부품이자, 각국 기술 패권 경쟁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카운터포인트는 "한국 기업들이 시장 주도권을 유지하려면 기술 혁신과 함께 AI·HPC 시장에 특화된 맞춤형 솔루션 개발이 필수적"이라고 분석했다.

현재 HBM 시장은 기술 경쟁을 넘어 지정학적 대결로 확장되고 있다. 미국은 마이크론을 중심으로 '서방권 메모리 공급망'을 강화하고 있으며, 중국은 자국 기술 자립을 가속화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국은 기술력과 생산 역량을 모두 갖춘 유일한 '균형자'로서 글로벌 시장의 중심에 서 있다.

전문가들은 향후 1년이 'HBM 패권'을 가를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마이크론의 약진, 삼성의 반격, 중국의 부상 속에서 한국이 지금처럼 주도권을 유지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의 향방은 결국 HBM 기술을 누가 더 빠르게, 더 효율적으로, 더 안정적으로 구현하느냐에 달려 있다.

AI 시대의 핵심 부품인 HBM을 둘러싼 경쟁은 이제 기술의 영역을 넘어 국가 전략의 영역으로 진입했다. 그 중심에서 마이크론, 삼성전자, SK하이닉스 3강의 각축전이 본격화되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