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군용기부터 무인화 시동…에어버스 '조종사 1명' 체제 개발 중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9일(현지시간) 미국 공군이 무인 항공기 개발에 1700만 달러(약 244억 원)을 투자했으며, 보잉과 에어버스 등 세계 최대 항공기 제조사들도 자율 비행 기술 개발에 본격 나섰다고 보도했다.
美 공군, 무인 화물기에 1700만 달러 투자
캘리포니아주 마운틴뷰에 본사를 둔 리라이어블 로보틱스(Reliable Robotics)는 최근 미 공군과 1700만 달러 규모 계약을 체결했다. 이 계약에는 자율 화물 비행 시험이 포함됐다. 이 회사는 최근 북부 캘리포니아 상공에서 세스나 캐러밴을 이용한 시험 비행을 실시했다. 항공기에는 대기 조종사와 비행 시험 엔지니어가 탑승했지만, 새로운 충돌 방지 시스템과 레이더가 다른 항공기를 자동으로 감지하고 회피하는 기능을 시험했다.
비행 택시 제조업체 조비 에비에이션(Joby Aviation)도 최근 태평양 상공에서 공군을 위해 자체 개발한 무인 세스나를 시험 비행했다. 업계에서는 화물 및 군용 비행 분야가 자율 비행 기술을 가장 먼저 도입할 것으로 보고 있다.
스페이스X와 테슬라에서 자율 기술 부문을 맡았던 로버트 로즈 리라이어블 로보틱스 최고경영자(CEO)는 "2028년까지 회사 항공기에 완전 원격 조종 체계를 갖춰 연방항공청(FAA) 인증을 받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그는 "완전 자율 여객 운송 시스템을 당장 도입하기는 어렵다"며 "기술 자체보다는 승객 수용도와 더 관련이 있다"고 설명했다.
보잉·에어버스, 조종사 1명 체제 검토
세계 최대 상용 제트기 제조업체인 보잉과 에어버스도 항공기 자동화 수준을 높이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다만 두 회사 모두 조종석에 조종사가 전혀 타지 않는 상용 제트기 설계는 진행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에어버스는 특정 비행 단계에서 조종석에 필요한 조종사 수를 한 명으로 줄이는 '확장 최소 승무원 운항(eMCO)'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장거리 국제선에 사용하는 A350 기종을 개량해 순항 중 고고도 비행 구간에서 조종사 한 명이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다. 장거리 비행의 경우 A350 같은 광동체 항공기는 조종사 3~4명을 태운다. eMCO 시스템은 특정 시간 동안 조종석에 조종사 한 명만 있으면 되고, 나머지는 승무원 전용 구역에서 쉴 수 있다. 화물 항공사들이 이 시스템을 먼저 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에어버스는 항공기 기압이 낮아지면 자동으로 1만 피트까지 하강해 항공 교통 관제소에 비상 신호를 보내고 저고도로 이동하는 다른 항공기를 회피하는 '스마트 자동화' 기능을 A350에 이미 적용했다고 밝혔다. 말콤 리들리 에어버스 최고 상업 시험 조종사는 "이 시스템은 승무원을 대체하는 게 아니라 지원하는 구실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연합 항공안전청(EASA)은 현재 상용 항공기 조종석에 최소 두 명 조종사를 배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EASA 대변인은 "개발 중인 에어버스 시스템이 그만큼 안전하다는 것을 뒷받침할 연구 결과가 없다"며 "신기술 안전성이 먼저 입증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보잉은 2018년과 2019년 737 MAX 추락 사고 뒤 자동화 시스템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사고는 조종사가 비상 상황을 완벽하게 처리할 것이라는 보잉의 잘못된 가정을 드러냈고, 회사는 문제 발생 시 조종사 대응에만 의존하지 않도록 자동화 시스템 개발에 나섰다. 보잉은 무인 비행 택시 '위스크(Wisk)'를 통해 개발한 자동화 기술을 활용해 조종사 업무 부담을 줄이고 중요한 결정을 더 빠르게 내릴 수 있도록 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짐 웹 보잉 최고 상업용 조종사는 지난달 시카고에서 열린 조종사 노조 회의에서 "이런 기술은 엄청난 발전을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레이더·액추에이터 등 핵심 기술 개발
리라이어블 로보틱스는 자율 비행에 필요한 핵심 기술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이 회사는 자동 조종 장치가 조종사처럼 다른 항공기를 보고 피할 수 있도록 기내 레이더 시스템을 개발했다. 상용 제트기 충돌 방지 시스템은 보통 트랜스폰더와 센서를 사용하지만, 레이더는 사용하지 않는다.
또한, 조종사 근육을 대신해 조종석 방향타와 비행 조종면을 움직이는 강력한 액추에이터도 개발했다. 로즈 CEO는 처음에는 조종 뒤에 '안전 조종사'가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지상 관제사가 원격 조종사 구실을 하며 개입할 수 있지만, 시스템 자체는 비행 중 비상 상황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에릭 앨리슨 조비 최고 제품 책임자(CPO)는 "무인 택시처럼 항공 분야 자율성 향상은 시간이 지나면 더 이상 새로운 게 아닐 것"이라며 "로봇 자동차든, 집안일 로봇이든, 로봇 비행기든 로봇과 일상으로 상호작용하는 게 훨씬 더 일상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종사 노조 반발…규제 당국도 신중
자율 비행 기술이 발전하고 있지만, 안전성과 규제 문제는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다. 미국과 캐나다 항공사 조종사들을 대표하는 항공 조종사 협회(ALPA) 노동조합은 안전은 잘 훈련받고 충분히 쉰 2명의 조종사에게 달려 있다고 주장한다.
제이슨 앰브로시 ALPA 회장은 "이 시스템은 사막에서 세스나 캐러밴을 원격으로 조종하는 것"이라며 "뉴욕 JFK 공항에서 유럽으로 향하는 A350이나 777과는 매우 다르다"고 지적했다.
FAA는 리라이어블 로보틱스의 구체적인 업무를 밝히지 않았지만, 2020년에 원격 조종 및 자율 항공기 인증을 위한 경로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로즈 CEO는 "우리는 인구가 많은 지역과 그 주변에서 사용하도록 인증받은 시스템을 이야기하고 있다"며 "뉴멕시코주 앨버커키를 시작으로 붐비는 공항 환경에서 작동하도록 설계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