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에서 버려진 전자제품 수백만톤이 동남아시아로 흘러가면서 심각한 환경 오염을 일으키고 있다고 AP통신이 23일(현지시각) 보도했다.
AP에 따르면 시애틀에 본부를 둔 환경단체 ‘바젤 액션 네트워크(BAN)’는 2년에 걸친 조사 결과 최소 10군데의 미국 기업이 중고 전자제품을 아시아와 중동으로 수출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단체는 이를 “숨겨진 전자폐기물 쓰나미”라고 표현했다.
이 단체의 보고서에 따르면 매달 약 2000개의 컨테이너(약 3만3000t)의 전자폐기물이 미국 항구에서 출발해 말레이시아, 베트남, 태국, 필리핀 등으로 향하고 있다.
이들 폐기물에는 납·카드뮴·수은 등 독성 금속이 포함돼 있으며 상당수가 비공식 재활용 시장에서 맨손으로 해체되거나 불법 소각돼 유해물질을 배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BAN은 “전자폐기물 수출업자들이 ‘원자재’나 ‘재활용 가능 금속’으로 분류해 세관 감시를 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BAN 보고서는 특히 말레이시아를 미국산 전자폐기물의 최대 수입국으로 지목하며 “이미 각국의 폐기물이 밀려들고 있는 상황에서 오염 부담이 폭발적으로 커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달하우지대 환경자원학과의 토니 워커 교수는 “대부분의 전자제품은 이미 고장 나 있거나 시장 가치가 없는데 이를 개발도상국으로 ‘오염 전가’하는 셈”이라며 “미국이 여전히 바젤협약(유해폐기물의 국가 간 이동 금지 조약)을 비준하지 않은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BAN은 조사 기간인 지난 2023년 1월부터 올해 2월까지 이들 10개 기업이 1만 개 이상의 전자폐기물 컨테이너, 가치로는 약 10억 달러(약 1조3900억 원)에 달하는 전자폐기물를 수출했다고 추정했다.
전 세계적으로 전자폐기물은 2022년 기준 연간 6200만t에 달하며 2030년에는 8200만t으로 늘어날 것으로 유엔 산하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은 전망했다.
AP는 “중국이 2017년 외국 폐기물 수입을 전면 금지한 뒤 중국계 재활용 기업들이 동남아로 이전하면서 지역 오염이 심화되고 있다”고 전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