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칩렛·3D 패키징' 기술 혁신 가속…3나노 이하 미세공정 경쟁 치열
북미가 설계 주도, 아태는 '제조 허브'…파운드리 의존·R&D 비용은 '과제'
북미가 설계 주도, 아태는 '제조 허브'…파운드리 의존·R&D 비용은 '과제'
이미지 확대보기세계 반도체 산업의 발전과 함께, 반도체 칩 설계와 판매를 전문으로 하는 '팹리스(Fabless)' 시장이 핵심 동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팹리스는 생산 설비 없이 칩 설계와 판매에만 집중하는 기업들을 뜻하며, 제조는 TSMC, 삼성 파운드리, 글로벌파운드리스(GlobalFoundries) 같은 전문 위탁생산(파운드리) 업체에 맡기는 비즈니스 모델이다. 이는 막대한 자본 효율성과 빠른 혁신 속도, 기술 민첩성에서 강점을 가진다.
SNS 인사이더가 최근 발표하고 뉴스트레일닷컴이 지난 24일(현지시각) 보도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팹리스 시장은 2024년 46억1000만 달러(약 6조6300억 원) 규모에서 연평균 9.60%의 견조한 성장세를 이어가, 2032년에는 약 96억1000만 달러(약 13조8300억 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전망됐다.
이러한 성장은 AI(인공지능), 5G, 자율주행차, 고성능 컴퓨팅(HPC) 등 차세대 산업의 폭발적 수요가 이끌고 있다. 첫째, 스마트폰, 웨어러블 기기, 게임 콘솔, 스마트홈 기기 등 소비자 가전 시장이 커지며 맞춤형 고성능 칩인 응용 특화형 집적회로(ASIC)와 시스템 온 칩(SoC) 수요를 자극한다. 팹리스 기업들이 이 혁신 경쟁을 주도한다. 둘째, 데이터 센터와 각종 기기에 AI와 머신러닝이 광범위하게 통합되면서 팹리스 업계에 막대한 기회가 열렸다. 엣지 컴퓨팅 및 신경망 처리(NPU)에 최적화된 차세대 프로세서 개발이 한창이며, 데이터센터용 AI 가속기 시장도 커지고 있다.
셋째, 전기차(EV)와 첨단 운전자 지원 시스템(ADAS) 등 자동차 전장 분야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차량 네트워킹을 포함해 안전과 전력 효율을 중심으로 한 특화된 반도체 솔루션 확보를 위해 완성차 업체들이 팹리스 파트너십을 공격적으로 늘리고 있다.
칩렛·3D 패키징, 기술 혁신이 성장 이끈다
팹리스 시장은 현재 급격한 기술 변혁의 중심에 섰다. 가장 주목받는 흐름은 '칩렛(Chiplet)' 아키텍처다. 이는 여러 개의 작은 칩(칩렛)을 단일 패키지로 결합하는 모듈식 방식으로, 성능 향상과 비용 절감 효과가 뛰어나다. 이 기술은 고성능 컴퓨팅(HPC), 데이터 센터, AI 프로세서 시장에서 주류로 떠오르고 있다. 또한 3D 패키징과 서로 다른 기능을 통합하는 '이종 집적(Heterogeneous Integration)' 기술의 부상도 팹리스의 혁신을 앞당기고 있다. 이를 통해 고집적·저전력 패키징이 가능해져 모바일 및 자동차용 고효율 칩 설계가 쉬워졌다. 전자 설계 자동화(EDA) 도구의 발전 역시 복잡한 칩의 개발 주기를 단축하고 설계 복잡성을 낮추는 데 도움을 준다. 특히 인공지능을 활용한 설계 검증 자동화가 퍼지고 있다. 주요 파운드리들이 3나노미터(nm) 이하 초미세 공정 경쟁에 뛰어들면서, 팹리스 설계자들은 칩 성능의 한계를 계속 넓혀가고 있다.
'파운드리 의존' 구조적 한계, R&D 비용 급증은 '그늘'
팹리스 시장의 성장 이면에는 중대한 도전 과제도 존재한다. 가장 큰 우려는 제조를 전적으로 제3자 파운드리에 의존하는 구조적 한계다. 세계 공급망 교란, 파운드리의 생산 능력 부족 사태, 혹은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발생하면 팹리스 기업이 직접적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칩 설계 및 연구개발(R&D)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급증하면서 중소 팹리스 기업들의 시장 진입 장벽이 높아지고 있다. 강력한 지적 재산(IP) 포트폴리오와 선도 파운드리와의 확고한 파트너십을 확보한 기업만이 장기적 성공을 보장하는 구도다. 경쟁 환경도 치열해, 퀄컴(모바일 SoC 및 통신 칩 강자), 엔비디아(GPU 및 AI 연산 칩 주도), AMD(CPU/GPU 하이브리드 솔루션), 브로드컴(통신·네트워크용 반도체), 미디어텍(중저가 스마트폰 SoC 시장 선도) 등 거대 팹리스 기업들이 핵심 분야를 사실상 지배하고 있다.
지역별로는 북미가 여전히 팹리스 시장의 압도적인 맹주 자리를 지키고 있다. 특히 미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R&D 역량과 팹리스 거대 기업들이 몰려 있어, 칩 설계, AI 프로세서, 고성능 컴퓨팅 솔루션 분야의 혁신 허브 역할을 굳히고 있다. 아시아 태평양(APAC) 지역은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여 주목받고 있다. 대만, 한국, 중국, 일본 등지에 포진한 강력한 전자제품 제조 생태계가 팹리스 산업 성장을 뒷받침한다. 대만의 TSMC와 미디어텍, 그리고 무섭게 성장하는 중국의 팹리스 스타트업 생태계가 이 지역의 성장을 주도하고 있다. 유럽 역시 자동차용 반도체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유럽연합(EU) 주도의 반도체 공급망 강화 정책을 추진하며 존재감을 키워가고 있다.
앞으로 팹리스 시장 전망은 매우 밝다. 전 세계 산업계가 디지털 전환을 서두르면서, 더 진보하고 에너지 효율적이며 AI에 최적화된 반도체 칩을 공급하는 팹리스 기업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특히 6G 이동통신, 양자 컴퓨팅, 지능형 엣지 AI 기기 확산은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것이다. 업계에서는 칩 설계 기업과 파운드리 간의 협력이 더욱 긴밀해지면서 새로운 혁신 생태계가 본격적으로 조성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신흥국 중심의 시장 다변화가 예상되며, 특히 인도와 동남아시아 팹리스 스타트업의 증가도 주목된다. 팹리스 모델은 2032년 이후에도 반도체 산업 발전의 심장부 역할을 할 것이 확실하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