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위안화 확산에 맞서 백악관이 신흥국 달러화 전략 시동
이미지 확대보기지난 2일(현지시각) 파이낸셜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미국 재무부와 백악관 관계자들이 지난 여름 달러라이제이션 전문가를 만나 이 정책 추진을 논의했다.
백악관, 달러라이제이션 전문가 만나 "진지하게 검토 중"
미국 정부 부처 관계자들은 지난 여름 존스홉킨스대학 스티브 행키 교수를 만나 달러라이제이션 정책 추진 방안을 논의했다. 행키 교수는 달러라이제이션 분야 세계적 권위자로 에콰도르, 몬테네그로 등에서 달러라이제이션 정책 설계와 시행을 자문한 경험이 있다.
행키 교수는 파이낸셜타임스에 "이는 행정부가 매우 진지하게 검토하는 정책이지만 아직 진행 중이며 최종 결정은 내려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8월 중순과 하순 두 차례에 걸쳐 백악관에서 고위 관계자들을 만났다. 회의에는 대통령경제자문위원회(CEA), 국가경제위원회(NEC), 국가안보회의(NSC) 소속 고위 인사들이 참석했으며, 두 번째 회의에는 재무부 관계자도 자리했다.
행키 교수에 따르면 백악관과 연결된 한 '정치인'은 8월 말 회의에서 "행정부 고위층에 달러의 국제적 역할을 강화하려는 그룹이 있다"고 분명히 밝혔다. 그는 달러라이제이션 추진이 행정부가 역점을 두는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의 광범위한 사용 확대와 연결돼 있다고 설명했다.
백악관 대변인 쿠시 데사이는 관계자들이 행키 교수를 만난 사실은 확인했지만, 아직 공식 정책으로 결정된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데사이 대변인은 "트럼프 대통령은 달러의 힘과 지위를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거듭 표명했다. 행정부는 이 같은 대통령의 우선순위와 관련해 외부 전문가들로부터 정기적으로 의견을 구하고 있다"며 "이러한 논의와 청취 세션이 공식 정책 입장이나 행정부의 정책 결정을 드러낸다고 봐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아르헨티나가 최우선 후보…200억 달러 통화스와프 지원
미국 정부가 달러라이제이션 정책의 최우선 대상국으로 검토하는 곳은 아르헨티나다. 행키 교수는 아르헨티나를 비롯해 레바논, 파키스탄, 가나, 터키, 이집트, 베네수엘라, 짐바브웨 등이 달러라이제이션의 적합한 후보국이라고 관계자들에게 제시했다.
아르헨티나는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이 2023년 대선 공약으로 달러라이제이션을 내걸었던 나라다. 아르헨티나는 1991년부터 2002년까지 달러와 고정 연동되는 통화위원회 제도를 운영했으나, 2001년 경제 붕괴 이후 이 체제가 무너졌다.
트럼프 행정부는 최근 아르헨티나의 통화 위기를 직접 나섰다. 미국 재무부는 지난달 아르헨티나에 200억 달러(약 28조 6100억 원) 규모의 통화스와프를 제공했다. 재무장관 스콧 베선트는 "아르헨티나가 심각한 달러 부족에 직면했고, 국제통화기금(IMF)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아르헨티나를 지지하고 있지만, 미국만이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며 "그래서 우리는 조치를 취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이는 1995년 클린턴 행정부가 멕시코를 구제한 이후 미국이 다른 나라에 제공한 최대 규모의 직접 금융 지원이다. 재무부는 통화스와프 외에도 아르헨티나 페소화를 직접 사들이는 이례적인 조치까지 펼쳤다. 베선트 장관은 이것이 1996년 이후 미국이 다른 나라 통화를 직접 매입한 네 번째 사례라고 밝혔다.
아르헨티나의 루이스 카푸토 경제장관은 지난달 초 단기적으로는 달러라이제이션이 선택지가 아니라고 밝혔다. 아르헨티나가 달러라이제이션을 실행할 만한 충분한 달러 보유고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이 아이디어 자체를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았다.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Elliott Management)에서 아르헨티나 채무 협상을 주도해온 제이 뉴먼은 "아르헨티나가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면 그것(달러라이제이션)이 일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뉴먼은 "그렇지 않으면 경제에 달러를 투입할 때마다 과두층과 해외 은행 계좌를 가진 사람들이 그것을 빨아들인다"고 지적했다.
중국 위안화 확산에 대항…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도 활용
미국이 달러라이제이션 정책을 적극적으로 검토하는 배경에는 중국이 주도하는 탈달러화 움직임이 있다. 행정부 관계자들은 신흥국들이 국가간 거래에서 달러를 덜 쓰도록 하려는 베이징의 압박에 우려를 나타냈다.
중국의 국경간 결제에서 위안화 비중이 가파르게 늘고 있다. 2010년 중국 국경간 무역 유입액 중 위안화 비중은 1%에 불과했지만, 2025년 3월에는 거의 50%에 다다랐다. 2023년 3월 중국의 결제에서 위안화 비중이 처음으로 달러를 넘어섰으며, 2024년 3월 기준 중국 결제의 52.9%가 위안화로, 42.8%가 달러로 이뤄졌다.
국제결제은행(BIS) 분석에 따르면 2022년 달러는 여전히 외환 거래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통화로 88.5%를 차지했다. 하지만 위안화는 지난 10년간 2.2%에서 7.0%로 가장 큰 상승폭을 기록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 활성화도 달러 지배력 강화 전략의 한 축으로 추진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월 18일 스테이블코인에 첫 번째 연방 규제 틀을 마련하는 'GENIUS법'에 서명했다. 이 법은 스테이블코인 발행자들이 자산을 미국 국채와 달러로 뒷받침하도록 의무화해 미국 국채 수요를 늘리고 달러의 세계 준비통화 지위를 견고히 하려는 것을 목표로 한다.
재무장관 베센트와 연방준비제도 크리스토퍼 월러 이사는 스테이블코인의 거의 99%가 달러로 표시돼 있어 미국 국채에 새로운 수요를 만들면서 달러의 우위를 강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에콰도르·엘살바도르는 안정, IMF는 우려
IMF는 아르헨티나의 달러라이제이션에 부정적이다. IMF는 달러라이제이션이 아르헨티나를 저성장으로 몰아낼 것이라고 본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통화정책을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에콰도르와 엘살바도르 같은 중남미 소규모 경제국들은 이미 달러를 사용하면서 회복력과 안정성, 지속적 성장을 보여줬다. 행키 교수는 에콰도르의 달러라이제이션이 "매우 잘 작동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에콰도르 역사상 가장 오래 지속된 통화 체제이며, 가장 긴 경제 안정 기간을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에콰도르는 2000년 1월 달러라이제이션을 시작한 이후 두 차례 쿠데타, 두 차례 불필요한 채무 불이행, 2008년 국제 금융위기, 지진 피해, 헌법 개정, 코로나19 팬데믹을 견뎌냈다. 행키 교수는 "가장 중요한 것은 달러라이제이션에 반대하고 이를 약화시키려 한 코레아 정부에서도 살아남았다는 점"이라며 "그래서 달러라이제이션이 에콰도르 국민 사이에서 여전히 인기가 있다"고 설명했다.
엘살바도르의 경우 IMF 연구에 따르면 달러라이제이션 이후 통화 리스크 프리미엄이 크게 줄어 상업은행 대출금리와 예금금리가 고정환율제 아래서보다 4~5% 포인트 낮아졌다. 이는 엘살바도르 민간부문에 국내총생산(GDP)의 0.5%, 공공부문에 0.25%에 해당하는 순이자 절감 효과를 가져왔다.
연구는 또 "미국 통화정책이 달러라이제이션 체제에서 엘살바도르의 물가와 산출 변동성을 안정시키는 데 기여했다"며 "이는 엘살바도르가 미국 경제와의 통합이 심화되고 두 나라의 경기 흐름이 높은 상관관계를 보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행키 교수는 1995년 이후 아르헨티나가 쌓아온 채무의 76%가 페소화에 대한 오랜 불신으로 빠져나간 자본이라고 추정한다. 그는 "이 모든 구제금융은 끔찍한 거래"라며 "부채의 4분의 1만 남아서 생산 활동에 투자된다면 부채를 갚을 만한 충분한 잉여현금흐름을 만들어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아르헨티나 달러 채권 보유자 대부분은 공식적인 달러라이제이션이 먼 미래의 일이라고 본다. 무엇보다 고갈된 달러 보유고를 크게 늘려야 뒷받침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밀레이 대통령의 지난달 총선 승리로 시장이 안정된 가운데, 투자자들은 그의 정부가 결국 페소화를 달러 대비 공식 환율 '밴드'에서 더욱 유연하게 조정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채권 보유자들은 페소화를 거래 범위 내에 묶어두는 정책이 통화 가치를 지나치게 높게 유지해 인플레이션을 낮추는 대신 보유고를 다시 채울 달러 유입을 줄였다고 우려하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