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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 디코드] 美·中 빅테크, 'AI 전력' 격전지 말레이시아로 집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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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 디코드] 美·中 빅테크, 'AI 전력' 격전지 말레이시아로 집결

2030년 AI 전력 수요, 일본 총사용량 추월…"전력이 곧 연산 능력"
MS·엔비디아 수조 원 투자 유치…정부, 전력망·수출 통제 '이중 과제'
사진=오픈AI의 챗GPT-5가 생성한 이미지이미지 확대보기
사진=오픈AI의 챗GPT-5가 생성한 이미지

인공지능(AI) 시대의 핵심 자원으로 '전력'이 부상하고 있다. 대만 산업기술연구소(ITRI)는 "전력이 곧 연산 능력"이라고 진단하며, AI 기반 시설 확장이 전 세계 에너지 수요를 재편하는 촉매가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격변 속에서 말레이시아가 미국과 중국의 거대 기술 기업들을 빨아들이는 AI 데이터 센터 중심지로 급부상하고 있다고 IT전문 매체 디지타임스가 5일(현지시각) 보도했다. AI 중심의 경제 성장을 이끌려는 말레이시아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정부는 AI 국가사무소(NAIO)를 설립하고 '2026-2030 AI 기술 실행 계획'을 추진하는 등, 국가 전략 우선순위로 AI 중심지 입지 강화에 나서고 있다.

폭증하는 AI 전력 수요, 2030년 일본 추월


ITRI는 최근 '2026 산업 발전 전망 포럼'에서 AI 기반 시설 확장이 세계 에너지 수요에 미치는 영향을 집중 분석했다. 이 자리에서 전문가들은 에너지 효율성, 신재생 에너지 통합, 전력 시스템 혁신 등을 핵심 의제로 다뤘다.
ITRI의 제이 왕(Jay Wang) 국제 부문 연구 부국장은 국제에너지기구(IEA) 데이터를 인용해, "2024년 전 세계 데이터 센터의 전력 사용량은 415TWh(테라와트시)로, 이는 전 세계 전력의 1.5%를 차지하며 연평균 12%의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2030년까지 이 소비량이 945TWh까지 치솟아, 일본의 연간 총 국가 전력 사용량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AI에 최적화된 데이터 센터의 전력 수요는 2030년까지 4배 이상 폭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왕 부국장은 "현재 구글의 클라우드 시설이 25~50MW(메가와트)를 소비해 5000~1만 5000가구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수준"이라며, "그러나 차세대 AI 센터는 100~1000MW를 필요로 할 것이며, 이는 2만에서 30만 가구에 맞먹는 엄청난 규모"라고 설명했다.

'기회의 땅' 말레이시아, 빅테크 투자 '블랙홀'


데이터 센터의 '하이퍼스케일화(초대형화)' 추세 속에서 말레이시아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말레이시아 데이터 센터의 평균 전력 부하(용량)는 약 60MW로, 100MW에 이르는 미주 지역을 뒤쫓고 있다. 반면 대만은 시설당 평균 7MW에 그쳐, 대규모 AI 개발 경쟁에서 뒤처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말레이시아 데이터 센터 시장은 2024년 약 40억 달러(약 5조 7000억 원)에서 2030년 약 135억 달러(약 19조 5000억 원) 규모로, 연평균 22.4%라는 폭발적인 성장이 전망된다.

세계 거대 기술 기업의 대규모 투자도 이어지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쿠알라룸푸르와 조호르 지역에 22억 달러를 투자해 3곳의 하이퍼스케일 데이터 센터를 건설 중이며, 현지 AI 인재 육성도 병행한다. 오라클 역시 65억 달러(약 9조 4000억 원) 규모의 클라우드 기반 시설 투자와 함께 엔비디아 GPU의 대규모 도입 계획을 밝혔다. 엔비디아는 현지 기업 YTL과 협력해 조호르에 친환경 AI 데이터 센터를 조성하고 있다.

이 외에도 구글, 알리바바, 틱톡의 모회사인 바이트댄스 등 미국과 중국의 주요 기업들이 말레이시아의 AI와 클라우드 기반 시설 확장에 가세하고 있다.

폭발적 성장의 그늘...전력망·지정학 '이중고'


AI 데이터 센터의 급격한 확장은 새로운 기술 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왕 부국장은 "AI 프로세서의 전력 밀도가 높아지면서 기존의 공랭식 냉각 방식으로는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액체 냉각 시스템, 에너지 저장 장치(ESS), 첨단 전력 설비가 차세대 데이터 센터의 필수 요소로 빠르게 자리 잡고 있다.

관련 에너지 장비 시장은 2025년 419억 달러(약 54조 원)에서 2030년 633억 달러(약 82조 원) 규모로 연평균 8.6%의 성장이 예상된다. 말레이시아 정부 역시 2050년까지 재생 에너지 비중을 70%로 늘린다는 목표를 설정하고 전력 기반 시설 확충에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급격한 성장에는 그림자도 존재한다. 데이터 센터의 급격한 증가는 현지 전력망과 수자원에 심각한 부담을 주고 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정전과 물 부족 현상까지 발생하고 있다. 이에 말레이시아 정부는 데이터 센터 전력 허가 기간을 단축하는 동시에, 지역별 개발 제한과 완충 구역을 설정하는 등 기반 시설 과부하 관리에 나섰다.

미국의 AI 반도체 수출 통제 역시 변수다. 말레이시아가 미국의 정책에 동조해 관련 수출 통제와 허가 정책을 도입함에 따라, 일부 중국 기업의 현지 반도체 접근이 제한되는 등 지정학 위험도 함께 관리해야 하는 과제를 안았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