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초점] 곰 다니던 툰드라가 '우주 최전선'…北極 데이터 요새 쟁탈전

글로벌이코노믹

[초점] 곰 다니던 툰드라가 '우주 최전선'…北極 데이터 요새 쟁탈전

美·中, 위성 통신 최적지 알래스카·스발바르에 '지상국' 구축 총력
ICBM 감시의 '눈' 확보하라…안보와 직결된 빙하 위 인프라 경쟁
캐나다 노스웨스트 준주 이누빅에 위치한 위성 기지 시설(ISFF). 북극 궤도를 통과하는 위성들의 데이터 수신 수요가 폭증하면서, 미국과 유럽 등 서방 국가들의 안테나 증설이 이어지고 있는 우주 경쟁의 핵심 거점이다. 사진=캐나다 천연자원부이미지 확대보기
캐나다 노스웨스트 준주 이누빅에 위치한 위성 기지 시설(ISFF). 북극 궤도를 통과하는 위성들의 데이터 수신 수요가 폭증하면서, 미국과 유럽 등 서방 국가들의 안테나 증설이 이어지고 있는 우주 경쟁의 핵심 거점이다. 사진=캐나다 천연자원부

미국과 중국을 비롯한 주요 강대국들의 우주 패권 경쟁이 지구 최북단, 북극으로 옮겨붙고 있다. 군사 및 정찰 위성의 데이터 송수신을 위한 최적지로 북극권이 지목되면서, 툰드라의 황무지였던 알래스카 데드호스(Deadhorse)와 같은 지역이 우주 경쟁의 전략적 요충지로 급부상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22일(현지시각) 보도했다. 북극 궤도를 도는 위성들과의 빠르고 빈번한 통신 연결(link)을 확보하려는 수요가 폭발하면서 북극 지상국(Ground Station)이 '전략 물자'로 격상된 것이다.

알래스카 앵커리지에서 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약 1370km 떨어진 노스 슬로프(North Slope)의 작은 마을 데드호스는 프루도 베이(Prudhoe Bay) 유전으로 가는 관문이다. 이곳의 모든 기반 시설은 본래 화석 연료 추출을 지원하기 위해 존재했다. 병원이나 은행, 학교는 찾아볼 수 없고 노동자들을 위한 조립식 기숙사와 곰 퇴치 스프레이를 파는 잡화점이 전부인 척박한 곳이다. 그러나 최근 이곳은 우주 경쟁의 의외의 전초기지로 변모했다.

위성 안테나 운영업체인 RBC시그널(RBC Signals)의 설립자 크리스토퍼 리친스는 "광섬유 케이블이 있는 곳에만 위성 접시를 설치할 수 있다"며 "그렇지 않으면 데이터가 내려와도 갈 곳이 없다"고 설명했다. 데드호스에는 데이터를 전송할 수 있는 광섬유 케이블 인프라가 갖춰져 있어 RBC시그널이 8개의 안테나를 운용 중이다. 리친스는 이곳에 아마존닷컴의 시설도 존재하며, 이는 'AWS 지상국 네트워크'의 일부라고 밝혔다.

이러한 변화는 북극 전역에서 감지되는 거대한 흐름이다. 마이클 바이어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교수는 "우리는 더 많은 지상국과 기존 지상국에 추가되는 더 많은 접시, 그리고 이중화를 제공하기 위한 더 많은 케이블을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기후 변화로 빙하가 녹으며 북극해 항로가 열리고 있는 상황은 이 지역의 전략적 중요성을 한층 고조시킨다.

中 위성 급증에 美 '골든 돔' 맞불


중국은 이미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하버드-스미스소니언 천체물리학 센터의 천체물리학자 조나단 맥도웰에 따르면, 베이징은 극궤도 위성의 수를 대폭 늘렸다. 중국의 한 해운 회사는 '빙상 실크로드(Polar Silk Road)' 계획의 일환으로 북극해를 통과해 유럽으로 향하는 정기 여름 항로를 계획 중이다. 2010년부터 2025년까지 중국의 극궤도 위성 발사 횟수는 급격한 우상향 곡선을 그리며 미국의 경계심을 자극하고 있다.

미국 역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제안한 우주 기반 방어 시스템인 '골든 돔(Golden Dome)'에 이 지역을 집중 감시하는 위성들을 포함시킬 것으로 보인다. 이미 미 우주군(US Space Force)은 북극 관련 방어 계약을 잇달아 체결하며 대응 태세를 강화했다. 노스롭 그루먼은 2024년 미 우주군을 위한 북극 탑재체 활성화를 발표했으며, 2031년까지 두 개의 극궤도 위성을 제작하는 41억 달러(약 6조 원) 규모의 계약을 맺었다. 보잉 역시 지난 7월 우주군으로부터 28억 달러(약 4조 원) 규모의 위성 2기 제작 계약을 따냈으며, 이는 '향상된 북극 능력'을 포함하는 120억 달러(약 17조 원) 규모 프로그램의 일부다.

데이비드 마시 '스페이스 포 어스(Space For Earth)' 설립자는 "극궤도의 장점은 지구상의 모든 지점을 통과한다는 것"이라며 "지구가 회전함에 따라 위성은 그 아래 모든 곳을 훑고 지나간다"고 설명했다. 이는 군사 안보 측면에서 결정적인 이점을 제공한다. 피에르 르블랑 전 캐나다군 북극 사령관은 "중국이나 러시아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한다면 그 모든 것은 북극 상공을 비행하게 될 것"이라며 "해당 지역을 감시하고 정보를 업로드할 수 있는 센서를 다수 확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케이블 끊기면 끝…'안보 사각' 없애라


그러나 인프라 확보 과정에는 지정학적, 지리적 난관이 존재한다. 노르웨이의 스발바르(Svalbard) 제도는 북극점에 가장 가까운 거주지이자 해저 케이블로 노르웨이 본토와 연결된 이상적인 입지다. 세계 최대의 극궤도 위성 지상국인 '스발사트(Svalsat)'가 이곳에 있다. 하지만 1920년 체결된 스발바르 조약은 이 지역을 '전쟁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금지한다. 스발사트의 올레 코크빅 이사는 "이는 군사적 용도로 데이터를 다운로드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해저 케이블의 취약성 또한 심각한 위협 요인이다. 2022년 스발바르와 본토를 잇는 스페이스 노르웨이(Space Norway)의 링크가 전력 중단을 겪었고, 발트해에서는 의심스러운 사보타주(파괴 공작) 세력이 수중 데이터 케이블을 표적으로 삼기도 했다. 덴마크령 그린란드의 피투픽(Pituffik) 미 우주군 기지 역시 비슷한 취약점을 안고 있다. 지난 3월 이곳을 방문한 JD 밴스 부통령은 덴마크가 섬의 보안 아키텍처에 과소 투자했다고 지적했으며, 트럼프 대통령은 과거 미국이 그린란드를 매입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호주전략정책연구소(ASPI)의 엘리자베스 뷰캐넌 선임연구원은 "미국 영토 내에 강력하고 현대화된 발자취(footprint)를 확보해야 한다"며 바이든 전 행정부 시절의 인프라 확장을 언급했다.

이러한 제약은 스웨덴, 캐나다 등 대체 지역에 대한 수요를 부채질하고 있다. 스웨덴 피테오(Piteå)에 위치한 아크틱 스페이스 테크놀로지스(Arctic Space Technologies)는 2022년 첫 안테나를 설치한 이후 현재 35개로 늘렸으며, 내년에는 40개까지 확장할 계획이다. 캐나다 노스웨스트 준주의 옐로나이프(Yellowknife)에는 일론 머스크의 스타링크와 경쟁하는 유텔샛(Eutelsat)이 지상국을 개설했다. 인구 약 3300명의 이누빅(Inuvik) 또한 캐나다, 노르웨이, 프랑스, 독일, 스웨덴 정부 등이 사용하는 위성 허브로 성장했다. 피터 클락슨 이누빅 시장은 "캐나다의 접시(안테나)가 꽉 찼기 때문에 또 다른 접시를 설치하고 있다"며 고객층이 넓어지고 있음을 시사했다.

캐나다 마크 카니 총리 정부가 대미 의존도를 낮추려 함에 따라, 씨코어(C-Core)와 같은 현지 운영사들은 "캐나다인을 위한 캐나다의 임무를 수행할 것"이라며 독자적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 이누빅의 인터넷 서비스 제공업체인 뉴 노스 네트웍스의 톰 줍코는 "중국 위성들이 거의 매시간 우리 머리 위를 날아다니고 있고, 러시아 위성들도 마찬가지"라며 안보 위협을 직설적으로 경고했다.

기술적 진보가 지상국의 중요성을 일부 희석시킬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위성 간 레이저 통신(inter-satellite links) 기술이 발전하면 우주에서 데이터를 전송한 뒤 지상으로 내릴 수 있어 지리적으로 외진 지상국의 필요성이 줄어들 수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여전히 물리적 지상국의 가치를 높게 평가한다. 데이비드 마시는 "첨단 위성 간 레이저 통신이라 할지라도 대역폭의 제한이 있다"며 "거대한 접시 안테나와 광섬유 케이블을 갖추고 데이터 양에 대한 걱정 없이 사용하는 것이 여전히 최선"이라고 단언했다.

데드호스의 혹독한 환경 속에서 엔지니어들은 영구동토층이 녹을 경우를 대비해 강철 기둥을 지하 13.7m(45피트) 깊이까지 박고, 돛 모양의 안테나를 보호하기 위해 열선이 내장된 돔을 씌운다. 2018년 건설 당시에는 미완성된 구조물에서 회색곰(grizzly bear)이 어슬렁거리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현재 RBC시그널은 침입자를 막기 위해 잠금장치가 달린 문과 철조망 울타리를 설치했다. 이는 북극권의 데이터 요새를 지키기 위한 물리적 보안이 곰뿐만 아니라 인간의 위협까지 고려해야 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고위도 지역에서는 위성을 하루 14회 이상 볼 수 있지만, 중위도에서는 4회에 그친다. 이 압도적인 데이터 수신 빈도의 차이가 강대국들을 얼어붙은 땅으로 불러모으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