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운드리·메모리 비용 동반 폭등 '이중고'…AI 칩이 선단공정 독식해 '설상가상'
"애플 잡으려 출혈 감수"…원가 부담, 스마트폰 가격 전가 땐 '수요 절벽'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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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확대보기2나노·메모리 동반 폭등…'비용 쓰나미'
IT전문 매체 디지타임스(DIGITIMES)는 25일(현지시각) 업계 소식통을 인용해 퀄컴과 미디어텍이 2026년 출시할 플래그십 모바일 SoC의 가격 인상을 준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같은 결정의 배경에는 반도체 제조의 양대 축인 '로직(Logic)'과 '메모리(Memory)' 양쪽에서 동시에 발생한 비용 상승 압력이 자리 잡고 있다.
우선 메모리 시장의 상황이 심상치 않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확장에 따른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고부가 제품 수요가 폭발하면서, 범용 메모리 생산 라인까지 영향을 받고 있다. 업계의 컨센서스는 고성능 메모리에 대한 강력한 수요가 여전히 견고하다는 데 모이고 있다. 일각에서는 중국의 메모리 생산 능력(CAPA) 확대로 공급 부족이 해소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내비치기도 했으나, 이는 현실적으로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중국발 물량이 글로벌 공급망의 목마름을 해소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메모리 가격 인플레이션이 단기간에 해소되지 않고 2026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2027년이 되어서야 수급 불균형이 다소 완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팹리스(반도체 설계) 기업들은 당분간 높은 메모리 조달 비용을 감내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여기에 파운드리 비용 상승이 기름을 부었다. 구형 공정인 레거시 노드(Mature Process Node)의 경우 가동률 저하로 일부 가격 인하의 조짐이 보이지만, 최첨단 선단 공정(Advanced Process Node)은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기술 난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지는 2나노 공정의 웨이퍼 당 가격은 기존 3나노나 4나노 대비 훨씬 높은 수준에서 형성될 것이 확실시된다. 퀄컴과 미디어텍은 이러한 '제조 공정의 초고가화'와 '메모리 가격 급등'이라는 이중고를 온몸으로 받아내야 하는 상황이다.
마진 방어 비상…스마트폰 값도 뛴다
시장 관측통들은 퀄컴과 미디어텍이 2026년 플래그십 플랫폼 가격을 인상하더라도, 이것이 곧바로 이익 증가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현재의 원가 상승폭이 워낙 가파르기 때문에, 가격을 올리더라도 기존의 영업이익률(OPM)을 온전히 보전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분석이다.
결국 늘어난 비용의 상당 부분은 세트 업체(스마트폰 제조사)로 전가되고, 이는 다시 최종 소비자가 구매하는 스마트폰 가격표에 반영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퀄컴과 미디어텍 입장에서는 수익성을 방어하기 위해 칩 공급가를 인상해야 하지만, 이것이 완제품 가격 상승으로 이어져 판매량을 떨어뜨리는 '부메랑'이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일부 칩 제조사 관계자들은 "AI 스마트폰 시대에 요구되는 연산 성능을 맞추고, 무엇보다 경쟁사인 애플의 칩 성능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2나노 도입 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토로한다. 만약 성능 경쟁 압박이 없었다면 퀄컴과 미디어텍이 천문학적인 비용이 드는 2나노 공정 도입을 주저했을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기술 리더십 유지를 위해 채산성 악화를 감수하고서라도 '2나노 행(行)' 열차에 탑승할 수밖에 없는 팹리스의 딜레마가 여기에 있다.
AI 칩이 삼킨 공정…모바일 설 곳 없다
이번 가격 인상 사태의 또 다른 핵심 원인은 파운드리 내 '병목 현상'이다. 디지타임스는 이번 파장이 단순히 모바일 칩에 그치지 않고 PC를 포함한 소비자용 전자기기 전반으로 확산될 것으로 전망했다. 현재 엔비디아, AMD 등이 주도하는 데이터센터용 AI 가속기 수요가 폭증하면서, 5나노 이하의 최선단 공정 라인은 사실상 포화 상태다.
클라우드 AI 칩들이 파운드리의 전공정 웨이퍼 생산 능력뿐만 아니라, 패키징 등 후공정(Back-end) 생산 능력까지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다. 이로 인해 모바일이나 PC용 프로세서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좁아졌고, 이는 자연스럽게 제한된 생산 능력을 차지하기 위한 가격 경쟁을 유발하고 있다. 모든 프로세서가 최첨단 2나노 기술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상위 공정의 병목 현상은 전체 선단 공정의 수급 불안을 야기하며 도미노처럼 가격 상승 압력을 가중시키고 있다.
생존 화두는 '믹스'…치열한 눈치작전
업계 내부 관계자들은 2026년 반도체 설계 업체들이 직면할 최대 과제로 '제한된 캐파 내에서의 제품 믹스(Product Mix) 최적화'를 꼽는다. 파운드리 이용료와 메모리 가격이 모두 고공 행진하는 상황에서, 한정된 생산 물량을 어느 제품군에, 얼마나 배정하느냐가 수익성을 가르는 척도가 될 것이라는 의미다. 미세한 마진 개선이라도 이끌어내기 위한 치열한 눈치작전과 생산 할당 전략이 2026년 경영의 핵심이 될 전망이다.
관건은 시장의 수용력이다. 상승한 칩 가격이 반영된 고가의 스마트폰을 소비자들이 얼마나 구매해 줄지가 미지수다. 가격 저항선이 무너지며 판매량이 급감할 경우, 칩 공급 단가 인상으로 얻는 이득보다 매출 감소로 인한 타격이 더 클 수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단순한 제품 단가 하락보다 무서운 것은 전방 시장의 수요 침체"라며 "경기 침체로 지갑이 얇아진 소비자들이 구매를 주저하는 상황이 팹리스 기업들에겐 가장 큰 공포"라고 지적했다.
"소비자가 지갑 닫는다"…커지는 경고음
이미 시장 곳곳에서는 경고음이 들려오고 있다. 메모리 모듈 제조업체에 부품을 공급하는 벤더들 사이에서는 최근 소비자용 애플리케이션 관련 주문이 눈에 띄게 신중해졌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메모리 가격 변동성이 크고 내년에도 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함에도 불구하고, 모듈 업체들이 선뜻 출하량을 늘리지 못하고 주저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전방 산업의 수요 불확실성이 그만큼 크다는 방증이다. 향후 고객사들이 주문 수량을 어떻게 조절하고, 가격 협상 테이블에서 어떤 태도를 취할지가 관련 IC 설계 업체들의 내년도 실적을 가늠할 핵심 지표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특정 IC 설계 업체들은 선단 공정 비용이나 메모리 가격이 추가로 오르지 않더라도, 소비자용 시장 내의 출혈 경쟁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거시 경제 악화로 예산을 통제하는 소비자들이 지출에 극도로 신중해졌기 때문이다. 단순히 'AI 기능 탑재'라는 마케팅 포인트만으로는 얼어붙은 소비 심리를 반전시키기 어렵다는 냉정한 현실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주변기기 칩셋을 만드는 중소 팹리스들의 시름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메이저 업체들의 가격 정책 변화에 따른 낙수 효과보다는, 전반적인 비용 통제 압박에 시달리며 생존을 위한 원가 절감 전략에 몰두해야 하는 처지다.
미디어텍은 아직 구체적인 제품 가격 조정안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실적 발표 컨퍼런스콜을 통해 "공급 부족과 제조 비용 상승을 반영해 2026년에는 전략적인 가격 정책과 생산 능력 할당 변화를 꾀할 것"이라고 예고한 바 있다. 이는 사실상 가격 인상을 시사한 것으로, 다가오는 2026년이 팹리스 업계에 있어 '비용과의 전쟁'을 치르는 한 해가 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