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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 디코드] 中 "14나노 칩 쌓아 엔비디아 4나노 넘겠다"…'적층' 승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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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 디코드] 中 "14나노 칩 쌓아 엔비디아 4나노 넘겠다"…'적층' 승부수

웨이사오쥔 칭화대 교수 "3D 하이브리드 본딩으로 美 제재 돌파"
"엔비디아 생태계 안주는 자살행위…독자 공급망이 살 길"
사진=오픈AI의 챗GPT-5가 생성한 이미지이미지 확대보기
사진=오픈AI의 챗GPT-5가 생성한 이미지
미국의 전방위적 제재로 5나노미터(nm) 이하 첨단 공정 진입이 봉쇄된 중국이 '패키징 기술 혁신'으로 게임의 판도를 뒤집겠다는 도발적 승부수를 던졌다. 중국 반도체 학계의 거두인 웨이사오쥔(Wei Shaojun) 중국반도체산업협회(CSIA) 부이사장 겸 칭화대 교수는 중국의 범용 14나노 로직 공정과 18나노 D램을 수직 적층(3D Stacking)해, 엔비디아의 4나노급 최신 AI 반도체 성능을 구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미세 공정의 한계를 아키텍처(설계구조)와 후공정 기술로 돌파하겠다는 중국의 '기술 자립 선언'이자, 미국 주도의 기술 통제망을 무력화하겠다는 와해성 혁신(Disruptive Innovation) 전략이다. 웨이 부이사장은 ICC 글로벌 CEO 서밋에서 이 같은 '완전 통제 가능한 국산화 솔루션'을 제시하며, 엔비디아의 'CUDA(쿠다) 생태계'에 안주하는 것은 중국 AI 산업을 붕괴시킬 치명적 함정이라고 경고했다.

14나노와 18나노의 '이종 결합', 성능은 4나노급


웨이 부이사장이 제시한 해법의 핵심은 서로 다른 칩을 하나로 묶는 '이종 집적(Heterogeneous Integration)'이다. 그는 "미국의 제재를 뚫기 위해 미국식 기술 경로를 과감히 폐기하고, 중국이 강점을 가진 로직과 메모리 공정 기술을 활용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가 공개한 청사진은 14나노 로직 칩과 18나노 D램을 '3D 하이브리드 본딩(Hybrid Bonding)' 기술로 결합하는 것이다. 핵심은 '소프트웨어 정의(Software-defined) 로직' 기술과 '니어 메모리(Near-memory) 컴퓨팅'의 결합이다. 연산 장치와 메모리를 물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거리에 배치해 데이터 이동 경로를 최소화함으로써, 대역폭 병목 현상을 해결하고 지연 시간(Latency)을 획기적으로 줄이겠다는 전략이다.

웨이 부이사장은 보수적인 추정치임을 전제하면서도, 이 기술이 적용된 칩이 크기와 비용, 전력 소모를 대폭 줄이면서도 'Z스케일(10의 21승 FLOPS)'급 슈퍼컴퓨팅 성능에 도달할 잠재력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가 제시한 데이터에 따르면, 해당 칩은 120 테라플롭스(TFLOPS)의 연산 성능을 내면서도 전력 효율은 와트당 2 테라플롭스를 기록했다. 인텔 제온(Xeon) CPU 대비 약 100배, 엔비디아 A100 GPU 대비 약 30배 높은 에너지 효율이다.

그는 "현재 많은 AI 칩이 메모리 대역폭 부족으로 연산을 멈추고 '대기(Waiting)'하는 시간이 길다"고 지적하며 "AI 칩의 진정한 평가는 단순 연산 지표가 아니라 이론적 연산 능력, 저장 용량, 메모리 대역폭을 종합적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의 혁신 방향이 3D 적층을 통한 'D램 대역폭 극대화'에 맞춰져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구체적인 성과물에 대해서는 "약간의 서스펜스를 남겨두겠다"며 자신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엔비디아 CUDA는 덫"…기술 속국 경고


웨이 부이사장은 이날 기술적 성과 발표 이상으로 '엔비디아 생태계 탈피'의 당위성을 설파하는 데 주력했다. 그는 현재 전 세계 AI 개발이 엔비디아의 GPGPU(범용 그래픽처리장치)와 소프트웨어 플랫폼인 CUDA에 종속되어 있다는 점을 가장 큰 위협으로 꼽았다.

그는 엔비디아 아키텍처가 가진 위험성을 세 가지 '함정(Trap)'으로 규정했다.
첫째, '모델과 아키텍처의 고착화'다. 더 높은 연산 능력을 쫓다 보니 개발자들이 자연스럽게 GPGPU 아키텍처에 갇히게 됐다는 것이다.

둘째, '최적화의 늪'이다. 초기에는 GPGPU가 거대 모델을 수동적으로 지원했으나, 점차 아키텍처 자체가 거대 모델에 맞춰 최적화되면서 다른 유형의 연산 칩들이 설 자리를 잃었다.

셋째, 'CUDA 의존성 심화'다. CUDA가 AI 개발의 표준이 되면서, 이와 호환되지 않는 칩은 아예 시장 진입조차 불가능한 구조가 만들어졌다.

웨이 부이사장은 "이러한 함정들이 중국의 AI 개발을 엔비디아에 옭아매고 있다"며 "중국이 이 생태계에 락인(Lock-in)된다면, 중국의 AI 미래는 미국의 손바닥 안에 놓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중 갈등 상황에서 미국이 노리는 최종 목표는 중국의 AI 부상(浮上) 저지이며, 반도체 압박은 그 수단일 뿐이라는 진단이다.

"美 기술 경로 폐기하라"…독자 생존 선언


웨이 부이사장의 메시지는 '독자적 기술 생태계 구축'으로 귀결된다. 그는 데이터 분야에서는 중국이 강점이 있지만, 알고리즘과 컴퓨팅 파워에서는 여전히 중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고 냉정하게 분석했다. 특히 컴퓨팅 분야에서 엔비디아 의존을 끊지 못한다면 그 대가는 "매우 심각할 것"이라며 위기감을 고조시켰다.

그는 "컴퓨팅을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는 화두를 던지며, AI가 인류 발전의 전략적 고지인 만큼 중국은 반드시 자체적인 AI 기술 체계와 반도체 공급망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순한 기술 개발을 넘어, 미국의 봉쇄망을 뚫고 산업 회복 탄력성(Resilience)과 국가 안보를 지키기 위한 중국 반도체 굴기의 새로운 생존 전략이 '패키징을 통한 성능 초월'로 구체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중국이 과연 14나노와 18나노라는 '구형의 칼'을 갈아 엔비디아라는 '최신 방패'를 뚫을 수 있을지, 전 세계 반도체 업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