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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삶에 도전하는 인텔의 전설적 전 CEO 겔싱어가 전하는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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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삶에 도전하는 인텔의 전설적 전 CEO 겔싱어가 전하는 교훈

인텔 전 CEO 겔싱어 "530억 달러 칩스법 2년 반 집행 제로, 끔찍했다"
18세 입사해 32세 최연소 부사장 오른 반도체 전설, CEO 해임 후 양자컴퓨팅·AI 투자로 재기... "GPU는 10년 내 대체될 것"
인텔의 전 CEO인 겔싱어의 모습.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인텔의 전 CEO인 겔싱어의 모습. 사진=로이터
인텔에서 해임된 지 이틀 만에 재기를 결심한 팻 겔싱어 전 최고경영자(CEO)가 바이든 행정부의 반도체 칩스법 집행을 "끔찍했다"며 신랄하게 비판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지난 28(현지시간) 보도했다.

530억 달러 칩스법 로비 주역, 바이든 행정부 집행 혹평


겔싱어는 2022년 반도체 칩스법 통과를 위해 워싱턴에서 그 어떤 CEO보다 많은 시간을 보낸 인물이다. 바이든 전 대통령 당선인 시절부터 직접 서신으로 미국 반도체 부활을 위한 발전 방안을 제안하고 대통령의 각성과 지원을 촉구했다. 530억 달러(77조 원) 규모의 연방 보조금으로 TSMC의 애리조나 공장 같은 대규모 민간 투자를 끌어내 수십 년간 아시아로 이전됐던 반도체 산업을 재건하는 게 목표였다.

그러나 그는 "2년 반이 지났는데 한 푼도 집행되지 않았다. 끔찍하다고 생각했다""마지막 순간 급하게 밀어내는 방식도 매우 화가 났다"고 말했다. 미국 정부가 인텔에 약 110억 달러(16조 원) 보조금을 승인한 직후 그가 이사회에서 해임된 점을 감안하면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인텔의 새 CEO인 립부탄은 겔싱어가 약속한 5년 내 차세대 18A 공정 기술 개발 목표를 그대로 유지하며 반도체 제조 사업을 이어가고 있다. 겔싱어는 "약간의 아이러니가 있다"고 조심스럽게 인정했다. 그는 "나는 아래 직원들을 관리하는 데 집중했다""이사회를 더 관리했어야 했나? 아마도 그랬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18세 인텔 입사부터 CEO 해임까지


1961년 펜실베이니아 더치 가문에서 태어난 겔싱어는 수학과 과학에 뛰어나 조기 입학 장학금으로 링컨공대에 진학했다. 인텔은 그를 18세에 채용해 캘리포니아로 데려왔다. 당시 앤디 그로브는 24세의 겔싱어를 PC의 기초가 되는 초기 마이크로프로세서 엔지니어링 팀장으로 발탁했다. 32세에 인텔 역사상 최연소 부사장이 됐다.

1990년대 인텔은 마이크로소프트와 '윈텔' 동맹으로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그러나 2009년 겔싱어는 첫 번째 퇴사를 맞았다. 직장 내 종교 활동이 문제가 됐다. 신앙에 관한 책을 중국 직원들이 회사 행사에서 나눠주면서 "소동이 일었다". 교황이 겔싱어와 만나 인텔 기술을 축복한 일도 "인사부를 화나게 했다".

10년 넘게 소프트웨어 회사 VM웨어를 이끌며 주가를 두 배 이상 올린 그는 2021년 인텔로 복귀했다. 당시 인텔은 TSMC에 칩 제조 기술에서 뒤처지고 스마트폰 시장을 놓쳤으며 PC와 서버 칩에서도 경쟁에 직면한 상태였다.

겔싱어는 200억 달러(29조 원) 규모의 제조 리더십 회복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인텔의 조직 붕괴는 그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했다. 그는 "조직 부패가 내가 깨달은 것보다 더 깊고 심각했다"고 털어놨다. 그가 복귀하기 전 5년간 인텔은 "단 하나의 제품도 일정대로 출시하지 못했다".
인텔이 얼마나 추락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 있다. 과거 세계 반도체 업계를 지배했던 인텔이 겔싱어가 취임할 무렵 경쟁사인 TSMC에 자사 칩 일부를 위탁 생산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인텔의 제조 기술이 TSMC보다 뒤처졌다는 뜻이다. 겔싱어는 미국이 대만 공장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것을 경고했고, 이는 TSMC와의 관계를 긴장시켰다. TSMC 창업자는 겔싱어를 "약간 무례하다"고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트럼프 행정부 개입에 긍정 평가


겔싱어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여러 차례 만난 경험이 있다. 그는 트럼프를 "강렬한 사람"이라고 묘사했다.

트럼프는 칩스법을 "끔찍한 것"이라 부르며 연방 보조금보다 관세를 통한 반도체 산업 육성을 선호한다. 이에 대해 겔싱어는 "비즈니스 CEO는 공화당원도 민주당원도 아니어야 한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그는 "트럼프 행정부 내 친구들은 기존 체제를 파괴하려는 의지를 받아들인다""지난 40년간 아시아로 이동한 공급망을 재조정하는 수단으로 관세를 활용하는 데 열려 있다"고 말했다. 칩스법 자체는 훌륭했지만, 집행 과정이 형편없었다는 게 그의 평가다. 그는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와 형편없는 집행 방식을 고쳐야 한다고 말하는 부분에는 동의하는 점들이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의 칩 제조 산업 재건이라는 더 큰 사명을 위해 자유시장 본능에도 불구하고 최근 정부가 인텔에 10% 지분을 갖는 것에도 열려 있다는 입장이다.

기독교 AI 플랫폼 수장으로 변신


"당신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아내의 말에 인텔에서 쫓겨난 지 이틀 만에 겔싱어는 바로 일을 시작했다. "100일간 약 100건의 면접"을 소화했다. 지난 3월 벤처기업 플레이그라운드글로벌의 제너럴파트너가 됐고, 미국 신앙 생태계를 위한 기술 플랫폼인 글루의 이사회 의장 겸 기술 책임자로 확대된 역할을 맡았다.

글루 사업의 일부는 인공지능(AI) 모델에 기독교 가르침에 초점을 맞춘 '인간 번영'을 장려하는 보호 장치를 구축하는 것이다. 플레이그라운드 역할은 그가 차세대 반도체 제조 기업 엑스라이트, 양자컴퓨팅 기업 사이퀀텀 같은 '딥테크' 최첨단 기술 기업에 다가갈 수 있게 해준다. 그와 가족은 약 12개 자선단체에도 참여하고 있다. 겔싱어는 총소득의 "52~53%"를 기부한다.

그는 기술이 정치사상이 아닌 인간 복지를 높인다고 본다. 보청기를 벗어 보이며 "교육을 위한 AI 음성 번역이 어린이를 빈곤에서 벗어나게 하는 핵심 수단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양자컴퓨팅은 컴퓨팅 산업을 뒤집을 잠재력이 있다는 게 그의 전망이다. 엔비디아의 젠슨 황은 양자가 주류가 되려면 20년이 걸릴 것으로 보지만, 겔싱어는 2년을 예상한다.

그는 "기술 전문가들에게 가장 스릴 넘치는 10~20년으로 향하고 있다""AI 거품이 터지는 데는 앞으로 몇 년 더 걸릴 것이지만 양자 돌파구가 이를 넘어뜨릴 수 있다"고 내다봤다. 현재 지배적 칩인 그래픽처리장치(GPU)는 이번 10년 말까지 대체되기 시작할 것으로 확신한다.

극한의 자기관리와 멘토링으로 점철된 삶


겔싱어의 일상은 극한의 자기 통제로 유명하다. 그는 매주 오전 4시에 일어난다. '스티브'라고만 언급하는 멘토와 매주 상담한다. 인텔 CEO 시절 실적 발표일에는 주가 목표치만큼 팔굽혀펴기를 했다. 주가 목표가 60달러 이상일 때도 있었다. 그는 일주일에 하루 단식한다. "마음이 실제로 몸을 지배하는지에 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산에 대한 질문에 그는 개의치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 브라이스 제섭 목사의 마지막 설교 '잘 마무리하기'를 떠올렸다. "나는 잘 마무리할 것이다. 손자들을 통해, 결혼 생활을 통해, 내가 멘토링하는 CEO들을 통해서"라며 감정을 드러냈다.

기술 경영인이 배워야 할 겔싱어의 덕목


겔싱어의 경력에서 기술 경영인들이 배울 수 있는 덕목은 크게 다섯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장기적 관점의 기술 투자다. 겔싱어는 단기 실적 압박 속에서도 200억 달러 규모의 제조 기술 회복 계획을 밀어붙였다. 5년이라는 명확한 시간표를 설정하고 18A 공정 기술 개발에 집중했다. 그가 해임된 뒤에도 후임 CEO가 같은 전략을 유지하는 것은 방향성이 옳았음을 입증한다.

둘째, 정책 입안자와의 적극적 소통이다. 그는 530억 달러 규모 칩스법 통과를 위해 워싱턴에서 그 어떤 CEO보다 많은 시간을 보냈다. 기술 기업이 단순히 제품 개발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산업 생태계 전체를 바꾸는 정책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다.

셋째, 실패 후 빠른 재기 능력이다. CEO 해임 후 이틀 만에 다음 행보를 준비했고, 100일간 100건의 면접을 소화하며 양자컴퓨팅과 AI 같은 차세대 기술 영역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았다. 한 분야에서의 좌절을 다른 분야에서의 도약으로 연결하는 회복탄력성이 돋보인다.

넷째, 극한의 자기관리 능력이다. 매일 오전 4시 기상, 주간 단식, 주가 목표치만큼의 팔굽혀펴기 등은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정신이 육체를 지배하는 훈련이다. 총소득의 52~53%를 기부하는 것도 물질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더 큰 목표에 집중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다섯째, 멘토링 시스템 구축이다. 그는 '스티브'라는 멘토에게 매주 조언을 구하며 동시에 다른 CEO들을 멘토링한다.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배우며, 자신이 배운 것을 다시 나누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