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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 디코드] 머스크, 韓 법원에 '강제 수사' 요청…애플·오픈AI '담합 스모킹건' 한국서 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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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 디코드] 머스크, 韓 법원에 '강제 수사' 요청…애플·오픈AI '담합 스모킹건' 한국서 캔다

美 법원, 한국 법원행정처에 '사법 공조' 승인…삼성·SK·카카오 등 '타깃' 거론
HBM 공급·플랫폼 탑재 과정서 '배타적 압력' 있었나…국내 기업 '고래 싸움' 휘말려
일론 머스크의 xAI가 애플과 오픈AI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한국 법인에 대한 증거 수집 권한을 확보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오픈AI의 핵심 파트너사들이 조사 대상에 오를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국내 업계에 긴장감이 돌고 있다. 사진=오픈AI의 챗GPT-5.1이 생성한 이미지이미지 확대보기
일론 머스크의 xAI가 애플과 오픈AI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한국 법인에 대한 증거 수집 권한을 확보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오픈AI의 핵심 파트너사들이 조사 대상에 오를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국내 업계에 긴장감이 돌고 있다. 사진=오픈AI의 챗GPT-5.1이 생성한 이미지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애플과 오픈AI를 상대로 벌이고 있는 'AI 반독점 전쟁'의 전선이 한국으로 급격히 확장됐다. 머스크 측이 소송의 승패를 가를 결정적 증거(스모킹건)를 확보하기 위해 한국 법원을 통해 국내 특정 기업을 강제 조사하겠다는 카드를 꺼내 들었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 빅테크 간의 진흙탕 싸움에 한국의 반도체 및 플랫폼 기업들이 핵심 증인으로 '소환'되는 초유의 사태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관련 기업들에 비상이 걸렸다.

지난달 29일(현지시각) 미국 텍사스 북부 연방지방법원 기록과 맥옵서버 등 외신에 따르면, 마크 피트만(Mark Pittman) 판사는 머스크의 AI 기업인 xAI가 제출한 '한국 내 증거 수집 요청(Letter of Request)'을 전격 승인했다. 이에 따라 미국 법원은 한국 대법원 산하 법원행정처에 정식으로 사법 공조를 요청하게 되며, 지목된 한국 기업은 법적 절차에 따라 관련 자료를 제출해야 하는 압박을 받게 된다.

머스크가 한국서 찾는 것, '칩(Chip)'인가 '플랫폼(Platform)'인가


이번 소송의 핵심은 애플과 오픈AI가 결탁하여 xAI 등 경쟁자를 시장에서 배제했는지 여부다. 업계에서는 머스크가 굳이 '한국'을 지목한 배경에 주목한다. 한국은 오픈AI의 거대언어모델(LLM) 구동에 필수적인 고대역폭메모리(HBM)의 생산 기지이자, 애플의 유일한 하드웨어 대항마인 삼성전자가 있는 곳이다.

외신과 업계 관측을 종합하면, 조사 대상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혹은 카카오 등이 유력하다. 머스크는 오픈AI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한국 메모리 기업들에게 "xAI에는 최신 HBM을 공급하지 마라"는 식의 압력을 행사했거나, 애플이 아이폰 온디바이스 AI 구축 과정에서 한국 기업들과 맺은 계약에 '독소 조항(배타적 거래)'이 포함됐는지를 캐내려 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만약 한국 기업의 내부 이메일이나 계약서에서 이러한 '담합'의 정황이 발견된다면, 이는 머스크가 주장하는 반독점 혐의를 입증할 치명적인 무기가 된다.

12월 11일 답변 시한…피 말리는 '증거 전쟁'


사태가 긴박하게 돌아가자 피고 측인 애플과 오픈AI는 법원에 방어 논리를 다듬을 시간을 달라며 답변서 제출 기한 연장을 요청했다. 법원은 이를 받아들여 데드라인을 12월 11일로 늦췄다.

하지만 이는 폭풍전야의 고요일 뿐이다. 피트만 판사는 당초 양사의 소송 기각 요청을 거부하며 "판결을 위해선 더 많은 증거가 필요하다"고 못 박았다. 법원이 xAI의 한국행 증거조사 요청을 신속하게 승인한 것 역시, 이번 사안을 단순한 기업 분쟁이 아닌 글로벌 공급망 차원의 반독점 이슈로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방증이다.

韓 기업, '영업기밀' 유출 위기…곤혹스런 '양자택일'


증거 요청 대상이 된 한국 기업은 진퇴양난에 빠질 수 있다. 미국 법원의 적법한 절차를 따른 요청인 만큼 무작정 거부하기 어렵지만, 자료 제출 과정에서 민감한 고객사 정보나 영업 기밀이 노출될 위험이 크다. 더욱이 현재 최대 고객사인 애플·오픈AI와, 잠재적 거대 고객인 머스크(테슬라·xAI) 사이에서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는 모양새가 될 수 있어 곤혹스러운 처지다.

현재 미국 법원의 요청서는 번역 및 공증 절차를 거쳐 한국 법원행정처로 발송될 예정이다. 조만간 한국의 어느 기업 법무팀 책상 위에 미국 법원의 직인이 찍힌 '증거 제출 요구서'가 도착하게 된다. 태평양 건너편에서 시작된 머스크의 '반(反)애플 전쟁'이 한국 기업들의 심장부를 겨누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