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SJ "투기 아닌 생존전략"…미성년 거래 2년 새 77% 폭증
韓, 부모 주도 '증여형'서 직접 투자 '학습형' 전환 시급
韓, 부모 주도 '증여형'서 직접 투자 '학습형' 전환 시급
이미지 확대보기과거 '밈 주식' 열풍에 휩쓸리던 모습과 달리, 최근 10대 투자자들은 주택 구매와 조기 은퇴를 목표로 우량주와 인덱스 펀드에 장기 투자하는 성향을 보인다.
고등학교의 금융 교육 의무화 확대와 맞물려, '자본 소득'의 중요성을 일찍 깨달은 Z세대가 향후 자산 시장의 새로운 주류로 부상할 것이라는 전망마저 나오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달 29일(현지시각) 미국 10대들 사이에서 불고 있는 주식 투자 열풍을 집중 조명하며, 이들이 시장 변동성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자산을 불려 나가고 있다고 보도했다.
"넷플릭스 보며 넷플릭스 산다"…용돈 대신 주식 계좌
미국 매사추세츠주에 사는 13세 소녀 미즈 포프는 아직 투표를 할 수 없지만, 주식 거래는 능숙하다. 이웃집 쓰레기통을 비워주는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모아 자신이 즐겨 이용하는 넷플릭스나 맥도날드 주식을 사들인다.
포프는 "그저 투자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돈을 얼마나 벌 수 있는지 궁금해서 엄마의 권유로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부모의 동의를 얻어 주식시장에 참여하는 10대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투자 플랫폼 '그린라이트(Greenlight)'에 따르면, 지난달 미성년자가 주도한 주식 거래 건수는 2년 전 같은 기간보다 77%나 급증했다.
과거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유행했던 '밈 주식(Meme Stock·온라인에서 입소문을 타 개인투자자가 몰리는 주식)' 투기 열풍과는 결이 다르다. 최근 10대 투자자들은 시장의 등락을 차분하게 견디며 기성세대 못지않은 인내심을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린라이트의 제니퍼 세이츠 교육 담당 이사는 "많은 청소년이 계좌에 매주 일정 금액을 자동 이체하고 있다"며 "이는 10대들이 일일 시황에 집착하기보다 장기적인 목표에 집중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설명했다.
"500달러 수익이 인생 바꿨다"…노동 소득 한계 깨달아
텍사스주에 사는 19세 에이버리 섀넌의 사례는 10대 투자자의 진지함을 잘 보여준다. 어린이 캠프 운영과 쿠키 판매 등으로 돈을 모은 섀넌은 고등학생 때 부모님의 권유로 투자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애써 번 돈을 잃을까 두려워 망설였지만, 1년 만에 500달러(약 73만 원)의 수익이 나는 것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현재 섀넌이 직접 굴리는 자산 규모는 약 5만5000달러(약 8080만 원)에 이른다. 지난달 기술주 중심의 시장 하락세가 나타났을 때도 그는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미국 전체 주식시장 지수를 추종하는 펀드에 5000달러(약 735만 원)를 추가로 넣었다.
교육 현장의 변화도 이런 흐름을 뒷받침한다. 현재 미국 내 12개 주가 고등학교 졸업 요건으로 개인 금융 수업 이수를 의무화하고 있다. 샴플레인 대학 금융소양센터는 2031년 졸업생을 배출할 시점에는 이 숫자가 30개 주까지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물론 시행착오도 있다. 버몬트주 위누스키 고등학교의 코트니 포켓 교사는 "한 학생이 암호화폐 관련 사기로 대학 진학 자금을 날린 사례도 있었다"며 "수업 시간에 투기와 투자의 차이를 강조하고 사기를 구별하는 법을 가르치는 데 주력한다"고 전했다.
15세에 기업 공시 분석…목표는 '노동 해방'
10대들이 주식에 빠진 근본적인 이유는 '경제적 안정'에 대한 갈망이다. 뉴욕 차이나타운에서 자란 19세 대학생 요요 정은 "부모님의 재정 상태가 불안정한 것을 보면서 나는 반드시 경제적으로 안정돼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꼈다"고 털어놨다.
그는 식당과 안과 병원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으로 엔비디아와 같은 인공지능(AI) 관련주와 비트코인에 투자하고 있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발언으로 시장이 출렁이며 약 2000달러(약 290만 원)의 손실을 보기도 했지만, 시장이 회복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버텨냈다. 그의 목표는 주식 투자 수익으로 학비를 충당하고 아파트 구매 자금을 마련하는 것이다.
전문가 수준의 지식을 갖춘 10대도 등장했다. 뉴욕 스카스데일 고등학교에서 80명 규모의 투자 클럽을 운영하는 15세 압둘라 아흐메드는 기업의 실적 발표(Earnings Call)를 듣거나 연차보고서(10-K)를 읽는 조건으로 아버지에게 투자금을 지원받는다.
아흐메드는 "의사나 변호사가 되어도 노동을 통해 버는 돈에는 한계가 있다"며 "나의 시간을 돈과 맞바꾸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고 강조했다. 베스트셀러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가 그에게 큰 영감을 줬다.
금융서비스 기업 찰스 슈왑의 2024년 조사에 따르면, Z세대는 평균 19세에 투자를 시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밀레니얼 세대가 25세에 투자를 시작했다고 응답한 것보다 6년이나 빠른 수치다. 자본주의의 생리를 일찍 깨우친 '똑똑한 10대'들이 자산 시장의 지형도를 바꾸고 있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한국의 10대 주식 투자, '증여' 넘어 '교육'으로 가야
미국의 10대 투자 열풍은 한국 사회에도 유사점이 있다. 국내에서도 코로나19 이후 소위 '동학 개미 운동'과 함께 미성년자 주식 계좌가 급증했다.
한국예탁결제원 자료를 보면, 미성년 주식 소유자는 이미 수십만 명을 넘어섰다. 삼성전자와 같은 우량주를 자녀 명의로 사주는 부모들이 늘어난 탓이다.
하지만 한국과 미국의 10대 투자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미국 10대들이 아르바이트 소득을 기반으로 '직접 투자'를 경험하며 실물 경제를 배우는 반면, 한국은 부모가 자녀의 미래를 위해 대신 투자해 주는 '증여형 투자'가 주를 이룬다는 점이다.
국내 금융권 전문가들은 "자녀 명의로 주식을 사주는 것을 넘어, 자녀가 직접 기업을 분석하고 경제 흐름을 읽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단순히 자산을 물려주는 것이 아니라 '자산을 관리하는 능력'을 교육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처럼 공교육 내 금융 교육이 부족한 한국 현실에서는 10대들이 유튜브나 SNS상의 검증되지 않은 정보(리딩방 등)에 노출될 위험이 크다.
자본시장연구원 관계자는 "미국이 고교 금융 교육을 의무화하는 추세는 한국 교육계가 주목해야 할 대목"이라며 "청소년들이 '한탕주의'가 아닌 건전한 장기 투자의 원칙을 학교에서부터 배울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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