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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교관의 글로벌 워치] 일본이 핵을 고민하는 지금 한국은 어디에 서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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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교관의 글로벌 워치] 일본이 핵을 고민하는 지금 한국은 어디에 서 있는가

일본의 핵 논의 시작이 드러낸 확장억제의 한계와 자체 핵무장 등 한국 대전략의 공백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10월24일 중의원(하원)에서 소신표명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로이터/연합이미지 확대보기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10월24일 중의원(하원)에서 소신표명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로이터/연합
일본에서 핵을 둘러싼 담론의 방향이 바뀌고 있다. 오랫동안 “말해선 안 되는 것”으로 봉인돼 있던 핵무기·핵추진 잠수함·비핵 원칙의 재검토 같은 단어들이, 이제는 정권 핵심부의 전략 담론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이는 지난달 초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일본 영토에 핵무기의 반입을 금지하는 비핵 정책의 세 번째 조항 개정 가능성을 암시했다는 데서 알 수 있다.

본지 글로벌이코노믹은 파리 소재 외교안보 전문 매체인 모던 디플로머시가 지난 12월13일 보도한 다카이치 일본 내각의 기류 변화, 전직 방위상의 핵추진 잠수함 필요 발언, 그리고 일본 영토 내 핵무기 반입 금지를 포함한 비핵 원칙의 해석 변화 등 '금기의 복귀' 가능성을 바탕으로 일본의 핵무장 흐름을 살펴 보고 이와 관련한 한국의 대응 전략을 분석했다.

핵을 둘러싼 일본 내부의 담론 변화는 중요한 신호다. 그 까닭은 동아시아 질서의 기반이 흔들릴 때, 일본이 핵무장 관련 담론을 입에 올리는 순간은 단순한 국내 정치적 변화가 아니라 동아시아 역내 억제 구조가 재설계되고 있다는 신호가 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같은 시기 유럽에서는 유럽연합(EU) 방위 담당 집행위원이 러시아가 수년 내 실제 분쟁으로 유럽을 “시험”할 수 있다고 경고하며, 유럽이 자체 방위 역량을 키우고 유럽 군대 논의도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 경고에는 또 하나의 핵심 문장이 있는데 그것은 미국이 인도태평양에 더 많은 자원을 배분해야 하므로 유럽이 더 책임져야 한다는 문장이다.

일본의 금기 해제, 유럽의 자립 압박, 미국의 인도태평양 우선 순위는 서로 다른 사건이 아니다. 이것은 하나의 구조 변화다. 미국이 만든 질서를 미국이 재정렬하는 과정에서, 동맹은 '영구 보증'에서 '조건부 계약'으로 이동하고, 핵 억제는 '심리적 신뢰'에서 '제도적 장치'로 옮겨간다. 한국이 지금 이 변화를 읽는 방식이 곧 2035년 한국의 위상을 결정한다.

일본이 핵을 다시 말하기 시작한 진짜 이유


일본이 당장 핵무장을 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일본 역시 국내 제도와 정치 문화, 대중 정서, 국제 규범의 제약을 받기 때문이다. 모던 디플로머시도 일본이 핵확산금지조약 체제 안에서 당장 핵을 보유·생산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제하면서도, 최소한 위기 시 미국 핵무기의 일본 내 배치 허용이라는 형태로 '영토 내 핵' 논의가 부상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핵심은 일본이 핵을 “갖느냐”가 아니다. 일본이 핵을 “허용하느냐”라는 질문을 공론장에 올린 사실 자체가 억제의 구조가 바뀌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중국은 핵전력을 증강하고, 북한은 핵을 실전적 협박 도구로 다듬고, 러시아는 핵위협을 전쟁 수행의 언어로 사용하고 있다. 이들 전체주의 국가와 권위주의 국가의 핵 위협 속에서 일본은 미국 핵우산의 ‘확신’이 아니라 ‘운용’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운용이란 결국 배치, 접근성, 위기 절차, 동맹의 결심 속도를 뜻한다.

여기서 일본의 잠재력이라는 요소가 중요해진다. 일본은 분리 플루토늄을 상당량 보유하고 있고 기술적 역량도 갖춘 ‘잠재적 핵능력 국가’로 평가 받는다. 이 같은 평가는 국제적으로 널리 존중되고 있다. 이 잠재력은 핵무장을 곧바로 뜻하지 않는다. 그러나 위기 시 선택지의 폭을 넓히고, 동맹 협상에서 발언권을 키우는 지렛대로 작동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일본은 핵을 통해 전쟁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핵을 통해 협상의 구도를 바꾸려는 쪽에 가깝다.

유럽이 던진 경고는 동아시아에 대한 ‘미래 통지서’다


유럽의 경고는 러시아만을 향하지 않는다. 유럽의 메시지는 “미국이 떠나지 않더라도, 미국이 예전처럼 다 해주지는 않는다”로 요약된다. EU 방위 담당 집행위원이 우주 기반 데이터, 정보, 위성통신에서 유럽이 미국 의존이 크다는 점을 콕 집어 말한 것은 억제의 본질이 탄약과 병력 뿐만 아니라 감시·정찰·표적화·지휘통제의 시스템에 있음을 공개적으로 인정한 장면이다.
이 장면은 한국에게 익숙하다. 동아시아에서도 유사한 의존 구조가 존재한다. 위기에서 확장억제가 작동하려면 정치적 결심만이 아니라 표적화와 지휘통제, 통신과 정보 공유가 즉시 작동해야 한다. 유럽이 이제 그 구조를 ‘유럽화’하려 한다면, 동아시아도 ‘동아시아형 억제 체계’를 더 촘촘히 묶으라는 압박을 받게 된다. 일본의 핵 논의 부상은 바로 그 압박의 동아시아적인 표현인 것이다.

트럼프 2기의 NDAA가 보여주는 동맹의 새 가격표


미국 하원이 지난 12월11일 통과시킨 2026회계연도 국방수권법(NDAA)은 규모만 큰 문서가 아니다. 트럼프 행정부의 행정명령 다수를 법률로 굳히고, 인도태평양 억제 구상을 지속하며, 유럽 주둔 병력 수준과 우크라이나 지원 같은 쟁점까지 포괄한다. 또한 국방 정책 안에 외국인 투자 차단과 공급망 규제, 다양성 프로그램 제한 같은 국내 정치 의제도 함께 담았다.

이 조합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하다. 미국은 장기 경쟁에 돈을 쓰되, 그 돈을 쓰는 방식은 ‘미국 우선’의 재정렬이며 동맹은 그 재정렬에 맞춰 재설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동맹은 자동이 아니라 조건이다. 조건은 방위비만이 아니라 기술, 공급망, 투자, 산업기반, 정보자산, 위기 절차까지 포함한다.

동아시아에서 핵 억제 논의가 부상하는 배경에는 바로 이 조건부 동맹의 현실이 깔려 있다. 미국이 약해졌기 때문이 아니라, 미국이 선택적으로 강해지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맹국은 “미국이 해줄 것”을 기다리는 수혜자가 아니라 “미국이 해주도록 만드는 장치”를 제공하는 설계자가 되어야 한다.

한국이 얻어야 할 결론은 ‘억제의 내재화’다


한국의 선택은 감정의 과잉이 아니라 구조의 해법이어야 한다. 일본이 핵을 말하는 것은 일본의 호전성이 아니라 일본의 불안이 제도 언어로 번역되는 과정이다. 유럽이 유럽 군대를 말하는 것도 유럽의 분열이 아니라 유럽의 의존이 줄어드는 구조를 설계하려는 과정이다. 미국이 NDAA로 ‘평화는 힘’이라는 구호를 법제화하는 것 역시 동맹이 자동이 아니라 계약이 되는 과정을 제도화하는 것이다.

한국은 여기서 한 가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확장억제는 신앙이 아니라 시스템이다. 시스템이란 공동의 위기 절차, 지휘통제 연동, 정보 공유의 실시간성, 동맹의 결심 속도, 그리고 최악의 경우에 대비한 옵션의 존재다. 한국이 이 시스템을 스스로 설계하고 제공할 때, 동맹은 강화되고 억제는 실질화된다.

'자체 핵무장'이란 의제는 제도 설계의 결론으로 다뤄져야 한다. 동맹을 유지·강화하는 구조 속에서 동맹의 신뢰와 정책적 지원을 바탕으로 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체 핵무장은 동맹과 신뢰를 바탕으로 협력하고 대화함으로써 대전략을 설계하고 추진할 때 실현될 가능성이 높다.

동아시아 질서의 다음 단계와 한국의 대전략 방향


동아시아는 ‘비핵의 이상’과 ‘핵 위협의 현실’이 충돌하는 지역이다. 일본이 비핵 원칙의 문장을 흔들기 시작하면, 한국의 정치·여론·전략도 영향을 받는다. 중국과 북한은 이를 분열의 씨앗으로 활용하려 할 것이고, 미국은 동맹의 책임 확대라는 이름으로 더 많은 역할을 요구할 것이다. 이런 삼중 압력 속에서 한국의 대전략은 두 가지를 동시에 달성해야 한다.

첫째는 억제의 신뢰성을 한국의 국가 시스템 안에 내재화하는 일이다. 군사력만이 아니라 산업, 기술, 공급망, 정보자산, 우주·위성, 사이버 역량이 함께 묶여야 한다. 둘째는 그 내재화를 동맹의 해체가 아니라 동맹의 강화로 발전시켜나가는 외교적 설계다. 이 같은 외교적 설계에 성공할 때만 한국은 안보와 경제를 동시에 끌어올려 2035년 세계 3~5위의 선진 강국 도약을 실현할 수 있다.

일본의 핵 담론 변화는 한국도 미국의 확장억제 변화에 대응 방향으로서의 자체 핵무장을 중심으로 대전략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는 과제를 던진다. 미국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새로운 국가안보전략(NSS)와 미 하원에서 통과된 국방수권법안(NDAA)을 통해 동맹국들에 자동으로 안보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하기 시작했다. 다카이치 일본 총리가 비핵 정책의 3번째 조항을 개정할 수 있다는 암시를 한 것도 미국의 확장억제가 더 이상 중국과 러시아, 북한에 의한 핵 위협으로부터 일본의 안보를 지켜주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기 때문이다.


이교관 글로벌이코노믹 대기자 yijion@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