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쿠스(AUKUS)의 ‘지리 전략’이 보여주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동맹 재편과 한국의 자체 핵무장 대전략
이미지 확대보기지금 호주에서 벌어지고 있는 오쿠스(AUKUS, 미국-영국-호주 3국 안보협력체)의 변화는 단순한 방산 협력이나 잠수함 도입 사업의 진전이 아니다. 그것은 동맹의 본질이 병력 규모나 방위비 비율이 아니라, 영토와 지리를 어떻게 제공하느냐로 재정의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영국의 스카이뉴스(Sky News)는 12월13일 호주의 말스 국방장관의 말을 빌어 미국이 호주에 요구하는 것은 더 많은 국방비가 아니라, 인도태평양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전투 준비가 완료된 공간이라면서 양국 간에 이번 주 워싱턴에서 이와 관련한 회담이 있었다고 전한다. 이 같은 변화는 곧 한국이 직면할 미래를 선명하게 비춘다.
방위비의 시대에서 지리의 시대로
스카이뉴스가 동 보도를 통해 전한 전 호주 내무부 사무차관 마이크 페줄로의 발언은 동맹의 패러다임 전환을 정확히 짚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미국에게 중요한 것은 호주의 군사력 규모가 아니라 접근 가능한 지리다. 중국과의 유사 시 대중 공격 전진 기지로서의 지리가 미국이 호주를 중요시 이유라는 것이다. 공군기지와 항만, 연료 보급 허브와 벙커, 나아가 핵추진 잠수함의 주둔까지 허용하는 이 선택은 호주를 정보 협력국에서 미국의 실질적 전진 전쟁기지로 변화시키고 있다.
트럼프 2기 동맹 전략의 핵심 논리
이 변화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새 국가안보전략과 정확히 맞물린다. 미국은 더 이상 아틀라스처럼 세계 질서를 혼자 떠받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대신 동맹국이 전쟁 수행의 부담을 물리적으로 분담해야 한다는 조건을 제시한다. 이는 동맹 해체가 아니라 동맹의 조건화다.
미국은 여전히 개입하되, 전쟁의 전초 비용과 위험을 동맹국의 영토 위에 배치하려 한다. 유럽에는 방위 자율성을, 호주에는 전진 기지를, 일본과 한국에는 억제의 실체를 요구하는 구조다. 이 맥락에서 오쿠스는 예외가 아니라 전형이다.
오쿠스가 한국에 던지는 불편한 질문
호주의 선택은 한국에 세 가지 질문을 던진다. 첫째, 한국은 유사시 미국이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 있는가. 둘째, 그 공간 제공이 한국의 생존을 자동으로 보장하는가. 셋째, 공간 제공만으로 핵 위협을 억제할 수 있는가.
확장억제의 한계와 자체 억제의 필요성
트럼프 2기 행정부 하에서 확장억제는 사라지지 않지만 자동적이지도 않다. 미국은 동맹을 지키되, 개입의 조건과 속도를 자국의 전략 우선 순위에 따라 조정한다. 인도태평양이 주전장인 상황에서, 미국이 한국 방어에 핵을 사용할지 여부는 점점 더 비용과 위험의 계산 문제가 된다.
이때 한국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다. 하나는 미국의 결심을 기다리는 수동적 동맹국으로 남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미국의 결심을 앞당기고 확정짓는 능동적 억제 제공자가 되는 것이다. 자체 핵무장은 후자의 선택지에서만 의미를 갖는다.
자체 핵무장은 동맹을 대체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동맹을 작동시키기 위한 억제의 보험이다. 한국이 핵 억제 능력을 제도화할수록, 미국은 한국 방어에 개입할 명분과 여유를 더 갖게 된다. 이는 호주가 영토를 제공함으로써 미국의 개입을 구조화하는 방식과 논리적으로 동일하다.
오쿠스와 한국 핵 전략의 교차점
오쿠스의 핵심은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으면서도 핵 추진과 핵 전략의 일부가 되는 구조다. 호주는 핵탄두를 갖지 않지만, 핵추진 잠수함과 전진 인프라를 통해 핵 억제 체계의 일원으로 편입된다. 한국은 이 모델을 더 진전시킬 수 있다.
한국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의 원자력 기술과 미사일 역량, 감시·정찰 체계를 갖추고 있다. 여기에 자체 핵 억제 옵션을 조건부·단계적으로 제도화한다면, 한국은 단순한 방어 대상이 아니라 억제 체계의 공동 설계자가 된다. 이는 한미동맹의 파기를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한미동맹을 냉전 이후 가장 강력한 형태로 재정의하는 길이다.
영토를 여는 국가, 억제를 설계하는 국가
호주는 오쿠스를 통해 영토를 열었고, 그 대가로 미국 전략의 핵심 축이 되었다. 한국은 이미 영토를 열어두고 있지만, 억제의 설계까지는 아직 완성하지 못했다. 북핵과 중핵이 구조화된 시대에, 단순한 기지 제공은 충분하지 않다.
한국이 2035년을 향해 세계 3~5위 선진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안보를 비용이 아닌 전략 자산으로 전환해야 한다. 자체 핵무장은 그 자산의 핵심 구성 요소다. 그것은 전쟁을 부르는 선택이 아니라, 전쟁을 피하기 위한 가장 현실적인 대전략이다.
오쿠스의 최근 변화가 보여주는 것은 분명하다. 미국은 동맹을 버리지 않는다. 그러나 미국의 새 국가안보전략은 어떤 동맹이라도 자동으로 지켜주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 현실을 직시하는 국가만이 다음 시대의 질서를 설계할 수 있다.
이교관 글로벌이코노믹 대기자 yijion@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