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전략 경쟁의 심화 속에서 일본이 공격 주체가 아닌 방어 주체로만 규정했던 전수방위가 종언을 고하고 재무장을 통한 전략적 자율성을 추구함에 따라 한국이 완성해야 할 대전략은 무엇인가
이미지 확대보기전후 일본 안보 질서는 어디서 균열되기 시작했는가
전후 일본 안보 질서의 핵심은 전수방위 원칙이었다. 일본은 스스로를 공격 주체가 아니라 방어 주체로 규정하며 군사적 자율성을 제한하는 대신 미일동맹이라는 외부 억지에 의존해 왔다. 그러나 중국의 핵전력 고도화와 러시아의 전략핵 현대화, 북한의 실전 배치 단계에 들어선 핵미사일 능력은 이 질서를 근본적으로 흔들었다. 일본이 더 이상 전후 규범에 머물 수 없다는 판단은 정치적 선택이 아니라 구조적 압력의 결과였다.
전수방위라는 전제가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 이유
일본의 재무장은 군비 확장이 아니라 전략 전환이다
다카이치 내각 출범 이후 강화하고 있는 일본의 재무장(rearmament)은 단순한 국방비 증액이 아니라 억지(deterrence) 개념의 전환이다. 일본이 공격을 받은 뒤 대응하는 국가에서 공격 자체를 사전에 억제하는 국가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반격 능력과 장거리 타격 능력의 확보는 일본이 더 이상 동맹의 수동적 보호 대상이 아니라 억지 구조의 공동 설계자가 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방어 국가에서 억지 국가로 이동하는 일본의 선택
이 변화는 일본이 잠재적 핵무기 보유 국가라는 사실과 결코 분리될 수 없다. 일본은 고도의 원자력 기술과 플루토늄 보유량, 운반체 기술을 갖춘 대표적인 잠재 핵국이다. 일본의 재무장은 비핵을 유지한 채 핵 억지의 문턱에 서 있는 국가가 어떻게 전략적 자율성을 확장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이는 일본이 언제든 전략 환경 변화에 따라 선택지를 바꿀 수 있는 위치에 있음을 의미한다.
기술이 군사력을 규정하는 시대의 도래
현대의 억지는 핵탄두의 숫자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감시 정찰과 지휘 통제, 미사일방어와 우주 체계, 사이버와 전자전이 결합된 복합 억지가 핵심이다. 일본은 이 변화에 가장 빠르게 적응하고 있으며 핵을 보유하지 않으면서도 핵 보유국에 준하는 전략적 발언권을 확보하려 하고 있다.
일본이 병력보다 체계를 택한 이유
일본의 재무장은 병력 증강이 아니라 체계 통합이다. 장거리 타격 수단과 미사일방어, 조기경보 위성과 정보 체계의 결합은 상대의 핵 사용 계산 자체를 복잡하게 만든다. 이는 핵 억지의 하위 층위에서 작동하는 기술 억지다.
장거리 타격과 방어의 결합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억지
이 억지는 핵 보복을 전제로 하지 않으면서도 상대가 핵을 사용했을 때 감당해야 할 비용을 증폭시킨다. 일본은 핵 보유국은 아니지만 핵 억지 구조의 일부로 기능하는 위치를 확보하고 있다.
제1도련선이 다시 핵심 전선이 된 배경
일본의 재무장은 제일도련선을 둘러싼 미중 전략 경쟁과 직결된다. 이 지역은 단순한 해양 경계가 아니라 핵과 재래식 전력이 동시에 충돌할 수 있는 잠재 전선이다. 일본은 이 선의 핵심 축으로서 미국의 전진 억지를 보완하면서도 자국의 생존 공간을 넓히고 있다.
일본 안보 전략이 지정학으로 회귀하는 과정
이는 동맹 강화와 전략적 자율성 확대를 동시에 추구하는 복합 전략이다. 일본은 더 이상 비핵이라는 명분만으로 안보를 보장받을 수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였다.
중러북 핵 위협이 만들어낸 구조적 압박
중국과 러시아는 전략핵과 전술핵을 동시에 현대화하고 있으며 북한은 실전 운용 단계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이 삼각 핵 위협은 개별 국가 차원의 대응으로는 억지가 불가능한 구조다. 일본의 재무장은 바로 이 구조적 압박의 결과다.
상호 취약성의 균형이 흔들릴 때 나타나는 위험
중국의 미사일방어 강화와 핵 전력 증강은 상호 취약성이라는 냉전 억지의 기본 전제를 무너뜨리고 있다. 이 환경에서 비핵국의 안전은 더욱 취약해진다.
미중 장기 경쟁 속에서 동맹의 의미는 어떻게 바뀌는가
미국은 여전히 핵심 동맹국이지만 자동 개입을 보장하는 시대는 지났다. 동맹은 신뢰 이전에 능력으로 평가된다. 일본은 이를 정확히 인식했고 그 결과가 재무장이다.
동맹 신뢰는 능력에서 나온다는 일본의 판단
일본은 스스로 억지 능력을 갖춤으로써 미일동맹의 신뢰성을 오히려 강화하고 있다. 이는 동맹 이탈이 아니라 동맹 내 발언권 확대 전략이다.
한국이 직면한 전략적 분기점
한국은 일본과 달리 즉각적 핵 위협에 노출돼 있다. 중러북의 핵 위협이 동시에 작동하는 환경에서 확장 억지만으로 안정적 억지를 유지하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재래식 전력의 우위는 핵 억지를 대체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분명해지고 있다.
자체 핵무장이 동맹을 강화하는 이유
한국의 자체 핵무장은 한미동맹을 약화시키는 선택지가 아니다. 오히려 동맹의 신뢰를 현실적으로 재조정하는 수단이다. 조건부이든 단계적이든 자체 핵무장은 미국의 확장 억지를 보완하고 한국의 생존 의지를 명확히 보여주는 전략적 언어다.
아시아 다자 평화 협력이라는 또 하나의 축
한국의 대전략은 핵 억지 하나로 완성되지 않는다. 인도와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와 같은 아시아 역내 평화 지향 국가들과의 다자 협력은 중러북의 위협에 대응하는 또 하나의 안정 축이다. 이 협력은 군사 동맹이 아니라 안보 협력과 기술 협력, 해양 안전과 공급망 안정이라는 폭넓은 틀에서 구축될 수 있다.
억지와 협력이 결합된 질서 설계의 필요성
강한 억지와 넓은 협력은 모순이 아니다. 오히려 상호 보완적이다. 한국이 자체 핵 억지를 확보할수록 역내 다자 협력은 더 안정적인 기반 위에서 작동할 수 있다.
결론으로 드러난 일본의 메시지와 한국의 길
일본의 재무장은 동아시아 질서가 비핵 규범의 시대에서 핵과 기술 억지가 병존하는 시대로 이동했음을 보여준다. 이는 한국에 분명한 선택지를 제시한다. 미국과의 동맹을 더욱 강화하고 그 신뢰를 기반으로 자체 핵무장을 실현하며 동시에 아시아 평화 지향 국가들과의 다자 협력을 통해 중러북의 위협에 맞서는 질서를 설계하는 것이다. 일본은 그 길을 먼저 보여주고 있다. 이제 문제는 한국이 언제, 어떤 속도로, 어떤 언어로 자신의 대전략을 완성할 것인가다.
이교관 글로벌이코노믹 대기자 yijion@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