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무역전쟁 휴전 신호…트럼프 "협상 여지 남겨둬"
레거시 칩 겨냥한 301조 조사 마무리…관세율은 내년 5월 이후 결정
레거시 칩 겨냥한 301조 조사 마무리…관세율은 내년 5월 이후 결정
이미지 확대보기USTR은 "중국이 수십 년간 반도체 산업 지배를 목표로 갈수록 공격적이고 광범위한 비시장 정책을 동원했다"고 지적했다. 중국 정부의 막대한 보조금, 기술 강제 이전, 지식재산권 침해 등이 미국 상업에 부담을 주거나 제한했다는 판단이다.
다만 USTR은 중국산 반도체 수입에 부과할 추가 관세율을 2027년 6월 23일까지 0%로 유예한다고 덧붙였다. 구체적 관세율은 부과 시점 최소 30일 전에 공표할 예정이다.
미·중 정상 부산 회담 이후 갈등 완화 분위기
이번 결정은 미·중 양국 정상이 무역 휴전에 합의한 점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은 지난 10월 30일 부산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미국의 관세 인하와 중국의 희토류 수출 통제 유예를 골자로 한 무역 합의를 맺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후 중국과의 관계 안정에 무게를 두고 있다. 미국은 앞서 중국의 해운, 물류, 조선 산업에 대한 301조 조사를 통해 중국산 선박 입항 수수료 등 조처를 시행했으나 양국 정상 합의로 이 조처도 1년 유예했다. 또 미 의회 내 대중국 강경파가 반대했음에도 엔비디아의 고성능 인공지능(AI) 반도체 H200의 대중 수출을 허용하기도 했다.
로이터통신은 "중국이 세계 기술 기업들이 의존하는 희토류 수출을 통제하는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과의 긴장을 낮추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블룸버그통신도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과의 관계 안정화와 양국 정상 간 합의를 확고히 하려는 신호"라고 전했다.
자동차·의료기기 등에 쓰이는 구형 칩 겨냥
이번 조사는 지난해 12월 조 바이든 전 대통령 재임 말기에 시작됐으며 최종 판단은 트럼프 행정부에서 내렸다. 조사 대상은 이른바 '레거시(구형) 반도체'다. 레거시 반도체는 28나노미터 이상 공정으로 생산된 반도체로 AI 칩 같은 첨단 반도체와 대비되는 범용 칩을 가리킨다.
레거시 반도체는 자동차, 항공기, 의료기기, 통신 장비, 군사 시스템 등 다양한 산업 전반에 광범위하게 쓰인다. 전 세계 반도체 매출에서 여전히 절반 정도를 차지하고 있어 산업의 근간을 이룬다.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는 2027년까지 전 세계 레거시 반도체의 42%가 대만에서, 33%가 중국에서 생산될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 첨단 메모리 강세지만 레거시는 비중 낮아
이번 관세 조처가 한국 반도체 산업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DRAM, NAND 등 메모리 반도체와 HBM(고대역폭메모리) 분야에서 세계 1,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삼성전자 파운드리 매출의 70% 정도가 레거시 공정에서 나오지만, 주력은 첨단 공정이다. SK하이닉스는 8인치 웨이퍼 레거시 파운드리를 자회사로 운영하고 있으나 규모가 크지 않다.
오히려 한국은 자동차, 의료기기, 산업용 설비에 필요한 레거시 반도체를 중국과 대만에 상당 부분 의존하고 있다. 2027년 전 세계 레거시 반도체 생산능력 가운데 중국 비중이 32%로 3분의 1 이상을 차지하면서 공급망 리스크가 커질 전망이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자동차용 반도체 부족으로 국내 자동차 생산에 차질을 빚었던 경험이 있다.
업계에서는 중국산 레거시 반도체에 관세가 부과되면 장기적으로 한국 기업의 경쟁력 향상 기회가 될 수 있지만 당장은 18개월 유예로 영향이 미미하다는 분석이다. 다만 중국 의존도를 줄이고 레거시 반도체 국산화 비중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기존 50% 관세에 추가 부과 가능성 열어둬
현재 중국산 반도체는 이미 50% 관세를 부과받고 있다. 트럼프 1기 행정부가 중국의 불공정 기술 관행을 문제 삼아 25% 관세를 매겼고 바이든 전 행정부가 이를 인상해 올해부터 50%를 적용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추가 관세 인상 가능성을 열어둠으로써 향후 미·중 관세 합의가 무산될 경우 활용할 협상 카드를 유지하게 됐다. USTR은 "이번 조처의 효과와 문제 해결을 위한 진전, 추가 조처 필요성을 계속 점검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과 유럽 당국은 중국이 레거시 반도체 공급망에서 과도한 영향력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의 제재로 첨단 반도체 장비 접근이 차단되자 제재 대상이 아닌 레거시 반도체 분야에 막대한 투자를 집중했다. 전 세계 반도체 신규 투자의 3분의 1을 중국이 차지할 정도다.
이번 조처는 미국 무역법 232조에 따른 별도 관세 조처와는 무관하다. 트럼프 행정부는 국가 안보를 근거로 중국산 반도체에 추가 관세를 부과할 가능성을 여전히 검토 중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