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1484원 터치 후 1450원대 숨고르기… 펀더멘털은 ‘견고’하나 미래는 ‘불안’
日 ‘금리인상’·臺 ‘도덕적 개입’ 안간힘… 제조 강국들, ‘킹달러’ 파도에 방패 뚫려
반도체 착시 걷어내면 제조업 붕괴 우려… 정부, 유류세·개소세 인하 연장하며 ‘총력 방어’
日 ‘금리인상’·臺 ‘도덕적 개입’ 안간힘… 제조 강국들, ‘킹달러’ 파도에 방패 뚫려
반도체 착시 걷어내면 제조업 붕괴 우려… 정부, 유류세·개소세 인하 연장하며 ‘총력 방어’
이미지 확대보기이유는 복합적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 2기 출범 이후 본격화되고 있는 ‘미국 우선주의’에 기반한 관세 폭탄 공포가 현실화되자, 안전자산인 달러로 전 세계 돈이 쏠리고 있다. 여기에 한국 내부의 자본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현상이 겹쳤다. 다행히 외환 당국의 강력한 구두 개입과 국민연금 외환 스왑 등 긴급 처방이 나오며 환율은 1450원대로 일시 후퇴했으나, 시장의 불안 심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해외의 냉정한 시선, “한국, 당장 망하진 않지만 ‘성장 엔진’이 식고 있다”
1480원대라는 충격적인 환율급등에도 불구하고, 국제 금융기관과 신용평가사들은 한국 경제의 ‘즉각적인 국가 부도’ 가능성은 낮게 보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한국 경제가 직면한 ‘만성적이고 구조적인 취약성’에 강력한 경고 신호를 보내고 있다.
국제신용평가사 S&P는 최근 보고서에서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AA’로 유지하며 등급 전망을 ‘안정적(Stable)’으로 제시했다. S&P는 “한국의 강력한 수출 경쟁력과 대외 건전성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미국의 관세 정책 변화와 글로벌 교역 둔화가 2026년 한국 성장의 하방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는 단서를 달았다. 즉, 당장은 망하지 않겠지만, 앞으로 돈 벌기가 더 힘들어질 것이라는 냉정한 진단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역시 최근 외신 인터뷰에서 “과거 외환위기(1997년)나 금융위기(2008년)처럼 달러가 없어서 망하는 ‘유동성 위기’는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한국은 충분한 외환보유액을 가진 순대외채권국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총재는 “환율 급등이 물가 상승과 내수 부진을 초래해 경제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새로운 형태의 위기’”라고 규정했다.
IMF와 OECD의 2026년 경제 전망 또한 이러한 우려를 뒷받침한다. OECD는 한국의 2026년 성장률을 2.1%로, IMF와 한국은행은 1.8%로 내다봤다. 이는 한국의 잠재성장률(약 2% 수준)을 간신히 턱걸이하거나 밑도는 수치다. 해외 기관들은 “반도체 호황이 없었다면 1%대 초반 성장에 그쳤을 것”이라며, 한국이 단기 부양책보다 노동 시장 유연화와 규제 개혁 등 근본적인 체질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방패’ 뚫린 아시아 제조 강국들… 韓·日·臺의 각기 다른 생존법
이번 환율 충격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수출 의존도가 높고 외환보유액이 넉넉한 동아시아의 제조 강국 일본과 대만 역시 ‘트럼프발(發) 강달러’와 ‘고금리’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한국과 유사한 통화 가치 하락을 겪고 있다. 하지만 위기를 돌파하려는 각국의 노력은 사뭇 다르다.
일본은 기록적인 ‘슈퍼 엔저’를 막기 위해 일본은행(BOJ)이 기준금리를 0.75%까지 올리는 강수를 뒀다. 이는 30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의 금리로, 엔화 가치를 방어하기 위해 '마이너스 금리' 시대를 완전히 청산한 것이다. 또한, 정부가 “시장 개입에 있어 자유로운 손(Free hand)을 가지고 있다”며 투기 세력에 강력한 경고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미국과의 금리 차이가 여전히 커서 엔화 약세를 완전히 되돌리지는 못하고 있다.
이들 국가의 사례는 “아무리 외환보유액(방패)이 많아도, ‘미국 우선주의’라는 외부 충격(창) 앞에서는 수출 주도형 경제 모델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는 아시아 제조업 국가들이 공통적으로 직면한 구조적 위기다.
위기의 내부 요인, “나라 밖으로 돈 싸 들고 나가는 개미와 기업들”
외부 환경이 태풍이라면, 한국 내부의 문제는 구멍 난 지붕이다. 과거에는 수출해서 돈을 벌면(경상수지 흑자) 달러가 들어와 환율이 안정됐지만, 지금은 그 공식이 깨졌다.
가장 큰 원인은 자본의 해외 이탈이다. 이른바 ‘서학개미’로 불리는 개인 투자자들과 국민연금 등 기관들이 수익률이 높은 미국 주식과 채권을 사기 위해 원화를 팔고 달러를 사고 있다. 벌어들인 달러가 국내에 머물지 않고 다시 미국으로 빠져나가는 구조다. 여기에 12월 들어 외국인 투자자들이 삼성전자 등 한국 주식을 매도(Sell Korea)하며 환율 상승에 기름을 부었다.
기업들 또한 환율 불안에 대비해 수출 대금으로 받은 달러를 원화로 바꾸지 않고 그대로 쥐고 있거나(달러 잠그기), 미국 관세를 피하기 위해 미국 현지에 공장을 짓느라 달러를 해외로 내보내고 있다. 달러는 벌지만, 정작 국내 시장에는 달러가 마르는 기현상이 1480원 환율의 주범L 되고 있다.
산업의 명암, 반도체만 웃는 ‘K자형’ 양극화… 석유화학은 ‘생존 전쟁’
고환율의 파장은 산업별로 극명하게 갈리는 ‘K자형 양극화’를 만들었다.
반도체는 ‘나홀로 호황’이다. AI 데이터센터 투자 붐으로 10월 반도체 수출은 전년 대비 25.4% 급증하며 역대 최대 실적을 찍었다. 환율이 오르니 달러로 돈을 버는 반도체 기업들의 원화 환산 이익은 더 커졌다. 시장 조사에 따르면 2026년 코스피 전체 영업이익 예상치(425조 원) 중 반도체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200조 원을 넘어 47% 이상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 경제가 사실상 ‘반도체 공화국’이 되었음을 보여주는 수치다.
반면 전통 효자 산업인 석유화학은 벼랑 끝에 섰다. 최대 시장인 중국이 공장을 지어 자급자족에 나서면서 한국 제품을 사주지 않기 때문이다. LG화학, 롯데케미칼 등은 정부와 함께 공장 가동을 멈추거나 설비를 줄이는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의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정부는 에틸렌 생산 능력을 대폭 감축하는 고강도 처방을 내놨다.
고환율은 수입물가를 밀어 올려 서민들의 지갑을 털고 있다. 휘발유, 식료품 등 수입 원자재 가격이 오르면서 11월 소비자물가는 2.4% 상승, 한국은행 목표치(2%)를 넘어섰다.
정부의 위기대응, “민생부터 챙기자”… 유류세 인하·개소세 감면 연장
정부는 고환율로 인한 물가 상승과 내수 침체를 막기 위해 긴급 처방을 내놨다.
기획재정부는 12월 말 끝날 예정이었던 유류세 인하 조치(휘발유 7%, 경유 10%)를 2026년 2월까지 2개월 더 연장하기로 했다. 기름값 부담이라도 줄여주겠다는 것이다. 또한, 자동차를 살 때 내는 개별소비세 인하(5% → 3.5%) 조치도 2026년 6월까지 6개월 연장했다. 자동차 내수 판매 절벽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외환 시장 안정을 위해서는 국민연금과 외환 스왑을 연장해 달러 공급 숨통을 틔우고, 수출 기업들과 만나 달러 매도를 독려하는 등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2026년 전망, “살얼음판 걷는 한국 경제, 해법은 ‘체질 개선’뿐”
2026년 한국 경제는 1.8~2.1%의 완만한 성장이 예상되지만, 그 길은 살얼음판이다. 전문가들은 환율이 당장 1300원대로 내려가기는 어렵다고 본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 폭탄이 언제 터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관세가 현실화되면 수출이 줄고, 이는 다시 성장률 저하와 환율 상승 압력으로 이어진다. 즉, 고환율은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상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해법은 명확하다. 지금처럼 반도체 하나에만 목을 매는 ‘외발 자전거’ 경제 구조로는 이 파도를 넘을 수 없다. 반도체 경기가 꺾이거나 미국의 견제가 심해지면 한국 경제 전체가 휘청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와 기업은 반도체 호황이 벌어준 시간을 헛되이 쓰지 말아야 한다. 바이오, AI, 방산, K-콘텐츠 등 달러를 벌어들일 수 있는 새로운 먹거리를 키워 수출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해야 한다. 동시에 경쟁력을 잃은 석유화학 등 한계 제조업은 과감하게 구조조정하여 군살을 빼고 고부가가치 소재로 전환해야만 고환율 시대를 버틸 수 있다. 2026년은 한국 경제가 ‘고환율·고물가·저성장’의 3각 파도를 넘어설 수 있을지 판가름 나는 ‘운명의 해’가 될 것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