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제조업 부활의 그늘, 자동화로 ‘고용 없는 성장’ 뚜렷… 관세·금리가 변수
쇼핑도 AI로 최저가 검색… ‘스마트 컨슈머’가 주도하는 2026년 시장
쇼핑도 AI로 최저가 검색… ‘스마트 컨슈머’가 주도하는 2026년 시장
이미지 확대보기고소득층은 자산 가치 상승에 힘입어 소비를 주도하지만, 저소득층은 빚으로 버티는 ‘양극화’가 뚜렷하다. 정치권이 기대하는 제조업 부활 역시 자동화 탓에 대규모 고용 창출로 이어지지 않는 ‘고용 없는 성장’에 그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 25일과 26일(현지시각) 이 같은 내용을 담아 2026년 미국 경제의 현주소를 심층 진단했다.
‘모자이크’ 경제… 지표는 호황, 체감은 불황
이번 연말 쇼핑 시즌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미국 소비자는 회복 탄력성을 보이면서도 동시에 극도로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윌 오친클로스 EY-파르테논 미주 소매 부문 대표는 지난 26일 WP와의 인터뷰에서 “데이터가 매우 섞여 있어, 현재 상황은 사진 한 장이라기보다 복잡한 모자이크에 가깝다”고 평가했다.
전미소매업연맹(NRF)에 따르면 추수감사절부터 사이버 먼데이까지 이어진 연휴 기간 온·오프라인 쇼핑객은 사상 최대인 2억290만 명을 기록했다. 어도비 애널리틱스 분석 결과, 해당 기간 온라인 매출은 442억 달러(약 63조8600억 원)로 1년 전보다 7.7% 늘었다. 마스터카드와 비자의 데이터 역시 11월부터 크리스마스 직전까지 지출이 1년 전보다 약 4% 증가한 것으로 집계했다.
하지만 이 수치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오친클로스 대표는 “인플레이션을 고려하면 실질적인 성장은 상당히 둔화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물가 상승분을 뺀 실질 소비는 지표만큼 뜨겁지 않다는 뜻이다.
이처럼 미국 소비자의 심리와 행동 사이에는 괴리가 존재한다. 미시간대가 발표한 소비자 심리지수는 5개월 연속 하락해, 지난 4월 관세 발표 이후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마이클 브라운 비자 미국 담당 이코노미스트는 “소비자가 느끼는 감정과 실제 행동 사이에는 틈이 있다”고 설명했다.
‘부의 효과’ 누리는 상류층 vs 할부로 버티는 서민
소비 시장을 떠받치는 힘은 소득 상위 계층에서 나온다. 무디스 애널리틱스 분석에 따르면 연 소득 25만 달러(약 3억6100만 원) 이상 가구가 전체 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25년 중반 기준 50%에 육박했다. 1990년대 초반 35%였던 것과 비교하면 비중이 대폭 커졌다.
애비게일 와트 UBS 투자은행 이코노미스트는 “주택과 주식을 보유한 고소득층은 자산 가치 상승에 따른 ‘부의 효과(Wealth Effect)’를 누리며 탄탄한 대차대조표를 유지하고 있지만, 저소득층은 점점 더 큰 압박을 받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럼에도 소비가 꺾이지 않는 심리적 요인에 대해 숀 그레인 카터 패션기술대학교(FIT) 교수는 “경제적,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큰 시기일수록 쇼핑을 통해 스트레스를 풀고 마음의 안정을 찾는 ‘쇼핑 테라피’ 심리가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제조업의 역설, “공장은 붐비는데 사람은 없다”
미국 정치권이 외치는 ‘제조업 르네상스’와 현실 사이의 괴리도 크다. WP는 지난 25일 코네티컷주 브리지포트 사례를 통해 미국 제조업의 구조적 변화를 조명했다. 과거 제너럴일렉트릭(GE) 등의 공장이 있던 브리지포트는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제조업 생산량이 늘며 활기를 되찾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곧 대규모 일자리 창출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미 노동통계국(BLS) 자료를 보면 브리지포트 지역의 제조업 고용은 여전히 30년 만의 최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유는 자동화와 생산 방식의 변화다. 오늘날 미국 제조 기업의 98%는 직원이 500명 미만이며, 93%는 100명 미만인 중소기업이다. 브리지포트의 성공 사례로 꼽히는 기업들도 조정 경기용 부품이나 반도체용 첨단 세라믹을 만드는 소규모 고숙련 업체들이다. 이들은 수천 명의 직원이 컨베이어 벨트에 매달리는 방식이 아니라, 로봇과 자동화 시스템을 활용해 소수의 숙련공이 고부가가치 제품을 생산한다.
WP는 “정치인들은 과거 디트로이트식 대량 고용을 꿈꾸지만, 현대 제조업은 생산성이 높을수록 고용 인원은 줄어드는 구조”라며 “미국 내 생산이 늘어나더라도 일자리가 획기적으로 늘어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2026년 변수, “관세 폭탄과 AI 소비”
전문가들은 2026년 미국 경제가 ‘불확실성’이라는 안개 속을 걸을 것으로 내다봤다. 미셸 마이어 마스터카드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불확실성의 무게 탓에 기업과 소비자 모두 회의적인 태도를 보인다”고 말했다.
가장 큰 변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추진하는 관세 정책이다. 미 연방대법원은 조만간 트럼프 대통령이 국가 비상사태를 이유로 거의 모든 수입품에 관세를 부과할 법적 권한이 있는지 판결할 예정이다. 예일 버짓 랩은 관세가 현실화하면 미국 가구당 연간 1800달러(약 260만 원)를 추가로 지출해야 할 것으로 추산했다.
‘똑똑한 소비자’의 등장은 시장의 새로운 특징이다. 어도비 애널리틱스에 따르면 최저가를 찾기 위해 챗GPT 등 생성형 인공지능(AI)을 활용한 트래픽이 11월 기준 1년 전보다 758% 폭증했다. 브라운 이코노미스트는 “비필수재 인플레이션이 둔화한 품목을 중심으로 소비가 몰리는 현상은 소비자들이 매우 영리하게 비교 쇼핑을 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풀이했다.
2026년 미국 경제는 고소득층의 자산 효과가 소비를 얼마나 지탱해 줄지, 그리고 고도화된 제조업이 질 좋은 일자리를 얼마나 만들어낼 수 있을지에 달렸다. 오친클로스 대표는 “강력한 연말 쇼핑 시즌이 내년까지의 성장 동력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