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군사적 ‘탐색’이 드러낸 미중 패권 경쟁의 위기 관리형 경쟁으로의 이동, 중러 군사 공조 체제 작동, 일본의 탈후방, 그리고 미국의 확장억제 불확실성에 따른 한국의 핵무장 필요성 고조 등 동아시아 질서의 이동, 그리고 한국의 전략적 선택
이미지 확대보기최근 중국 항공모함 랴오닝함(사진)과 장거리 폭격기, 그리고 러시아 항공기들이 일본 인근 태평양 상공에서 공동 행동에 나선 사건이 있었는데 이는 단발성 군사 훈련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보다는 이번 중러 연합 군사 행동이 이뤄진 시점에 미 해군 항공모함 조지 워싱턴함이 일본 해상자위대와 연합 훈련을 진행 중이었다는 사실과 관련 지어 볼 필요가 있다. 요컨대 이번 움직임이 미일 해상 합동 훈련이 이루어지던 중에 있었다는 사실은 중러가 연합 군사 훈련을 빌미로 미일의 반응을 측정하는 ‘전략적 탐색’이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만약 그렇게 보는 것이 맞는다면 이번 사건은 미중 패권 경쟁이 어떤 단계로 진입했는지, 동아시아 역내 질서가 어떤 방향으로 재편되고 있는지,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 놓인 한국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동시에 묻는 신호로서 분석될 필요성이 높다.
군사 훈련이 아니라 ‘탐색’이었던 이유
중국이 확인하려 했던 것은 세 가지다. 첫번째는 일본의 감시·추적·대응 체계가 어느 수준에서 작동하는지, 두번째는 미·일 연합 지휘 체계의 반응 속도와 연동성이 어떤지 그리고 세번째는 미 항모 전력과 일본 해상자위대가 실제 상황에서 어떤 형태로 협조하는지 하는 것 등이다.
이 같은 탐색은 단독 행동이 아니라 러시아와의 공동 행동으로 이뤄졌다. 이는 중국이 동아시아에서의 군사적 행동을 미·일 대 중·러의 구조적 대립 구도 속에서 전개하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미중 패권 경쟁의 성격 변화: ‘위기 관리형 경쟁’으로의 이동
미중 패권 경쟁은 이미 단순한 세력 확장의 단계는 지났다. 지금의 경쟁은 전면 충돌을 피하면서 상대의 한계를 시험하는 ‘위기 관리형 경쟁’으로 진화하고 있다. 미국은 인도태평양에서 항모 전개와 동맹 연합 훈련을 통해 억제력을 유지하고, 중국은 항모·폭격기·중러 연합 행동을 통해 그 억제의 실효성을 시험한다. 이 과정에서 양측은 의도적으로 충돌을 피하지만, 충돌 직전까지 접근하는 행동을 반복한다.
이번 태평양 상공에서의 중국 행동은, 미중 경쟁이 더 이상 선언이나 외교 수사로 관리되는 단계가 아니라, 군사적 ‘현장 테스트’를 통해 관리되는 단계로 넘어갔음을 보여준다.
일본을 시험한 중국, 일본은 더 이상 후방이 아니다
중국의 이번 행동에서 일본은 단순한 통과 지점이 아니다. 일본은 이미 미중 경쟁의 전면에 서 있는 핵심 행위자다. 중국이 일본 인근에서 탐색 행동을 벌였다는 것은, 일본의 군사적 역할 확대를 현실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뜻이다. 일본은 항공모함급 개조함, 장거리 타격 능력, 미일 통합 작전 체계 강화를 통해 더 이상 후방 지원 국가가 아니라 전면 억제의 일부로 기능하고 있다.
중국은 일본을 단독으로 압박하지 않는다. 항상 미·일 연합 대응을 함께 본다. 이는 일본이 단독 선택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줄어들고 있음을 의미하며, 동시에 일본이 미국의 전략에 더 깊이 편입되고 있음을 뜻한다.
중러 군사 공조의 의미: 동아시아판 ‘이중 전선’의 형성
이번 행동에서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요소는 러시아의 참여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서방과의 대립이 고착된 상태에서, 동아시아에서 중국과의 군사 공조를 전략 자산으로 활용하고 있다.
중국에게 러시아는 단순한 협력 파트너가 아니다. 러시아의 참여는 미국과 동맹국들의 전략 계산을 복잡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동아시아에서 중국만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잠재적으로 중러 연합이라는 변수를 동시에 고려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 구조는 동아시아에 유럽과 유사한 ‘이중 전선’ 구조를 형성한다. 미국과 동맹국들은 유럽과 인도태평양을 동시에 관리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되고, 중국은 그 부담을 최대화하는 방향으로 행동한다.
한국 안보에 던지는 첫 번째 질문: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
이 지점에서 한국의 위치는 불편하게 드러난다. 일본은 이미 미중 경쟁의 전면에 들어섰고, 중국은 일본을 시험한다. 미국은 일본과 함께 대응한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디에 있는가. 한국은 한미동맹의 핵심국이지만, 군사적 행동의 현장에서는 여전히 ‘중간 지대’에 머물러 있다. 이는 단기적으로는 위험 회피처럼 보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전략적 불확실성을 키운다.
중국의 탐색 행동은 앞으로 일본뿐 아니라 한국 주변에서도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그때 한국이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어떤 수준의 억제력을 갖고 있는지가 시험대에 오를 수밖에 없다.
한국 안보에 던지는 두 번째 질문: 억제는 충분한가
미중 경쟁이 군사적 탐색 단계로 들어간 상황에서, 억제력의 기준도 바뀐다. 선언적 억제나 정치적 메시지는 더 이상 충분하지 않다. 실제 행동에서 신뢰할 수 있는 억제가 필요하다.
한국은 재래식 전력에서는 강력한 역량을 갖고 있지만, 핵·장거리 억제 구조에서는 여전히 미국에 의존한다. 문제는 이 같은 의존이 위기 상황에서 얼마나 자동적으로 작동하는가 여부다. 중국과 북한, 러시아가 연동된 위기 상황에서, 한국에 대한 확장 억제가 얼마나 신속하고 단호하게 작동할지는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 바로 이 불확실성이 한국 안보의 구조적 취약점이다. 그래서 미 전술핵 재배치가 필요함과 동시에 그것이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미국과의 동맹을 전제로 한 자체 핵무장을 본격 추구해야 하는 것이다.
한국 안보에 던지는 세 번째 질문: 선택을 미룰 수 있는가
중국의 이번 행동이 중요한 이유는, 시간이 한국 편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미중 경쟁은 완화 국면으로 가고 있지 않다. 오히려 군사적 접촉의 빈도와 강도는 높아지고 있다. 이 상황에서 한국이 전략적 결정을 미루는 것은 중립이 아니라 수동적 편입을 의미한다. 선택하지 않는 선택은 결국 타인의 전략에 의해 선택당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한국의 대응 전략: 억제 구조를 명확히 하라
첫째, 한국은 억제의 구조를 모호하게 유지해서는 안 된다. 한미동맹의 확장 억제를 실질화하는 장치, 특히 핵 억제의 가시성과 자동성을 강화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정치 선언이 아니라, 실제 작전 계획과 훈련, 배치 논의로 이어져야 한다.
둘째, 한미일 안보 협력에서 한국의 역할을 명확히 해야 한다. 일본이 전면에 서 있는 상황에서, 한국이 애매한 위치에 머무를수록 전략적 가치는 떨어진다. 한국은 억제의 공동 설계자로 참여해야 한다.
셋째, 자체 억제 능력에 대한 논의를 더 이상 금기시해서는 안 된다. 핵 잠재력, 전략 자산 운용 능력, 장거리 억제 체계에 대한 공개적·제도적 논의가 필요하다. 이는 위협이 아니라 협상력의 기반이다.
태평양에서의 탐색은 한국을 향한 질문이다
중국이 러시아와 함께 태평양에서 탐색한 행동은 일본과 미국을 향한 시험이었지만, 동시에 한국을 향한 질문이기도 하다. 질문은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 무엇을 억제할 수 있는가, 그리고 언제 선택할 것인가 등 세 가지다.
미중 패권 경쟁은 선언의 시대를 지나 행동의 시대로 들어섰다. 그 행동은 점점 더 한국의 주변으로 다가오고 있다. 선택을 미루는 전략은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 지금 한국에 필요한 것은 방향 없는 균형이 아니라, 명확한 억제와 선택의 전략이다. 태평양에서 던져진 이들 세 가지 질문에, 한국은 더 이상 침묵으로 답할 수 없다.
이교관 글로벌이코노믹 대기자 yijion@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