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트의 경보와 푸틴의 전쟁 선언, 나토 국경의 지뢰화가 한국의 ‘독자 핵무장’으로 수렴하는 이유
이미지 확대보기서로 다른 세 기사, 하나의 결론을 향하다
최근 서로 다른 매체에 실린 세 개의 기사는 표면적으로는 각기 다른 사안을 다루고 있었다.
이스라엘의 바르일란대 산하의 외교안보 분야 싱크탱크인 베사센터(BESA Center) 산하 PSCRP의 보고서는 발트 국가들이 왜 유럽 안보의 ‘동부 전선’을 다시 전면에 올려야 하는지를 경고했다.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의 신년 연설을 다룬 미 폭스뉴스 기사는 전쟁을 끝내지 않겠다는 러시아의 전략적 결심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나토 국가들이 러시아 및 그 동맹국과 맞닿은 국경을 따라 지뢰지대와 방어선을 확대하고 있다는 지도 중심의 미 뉴스위크 보도는, 외교적 수사와 달리 유럽이 이미 장기 대치를 전제로 움직이고 있음을 드러냈다.
글로벌이코노믹은 이 글을 통해 이들 세 보도가 각기 다른 언어로 던진 메시지가 왜 하나의 결론, 즉 ‘봉합되지 않은 충돌선의 시대에는 자력에 의한 핵 억지 외에 안정적 대안이 없다’는 판단으로 수렴하는지를 분석한다. 그리고 그 결론이 왜 한국에 가장 직접적인 전략적 함의를 갖는지를 묻는다.
발트의 경보가 말하는 억지의 본질
PSCRP 보고서가 던진 핵심 메시지는 단순하다.
억지는 선언이 아니라 신뢰 가능한 능력이며, 그 신뢰는 상대의 계산 속에 실제로 반영될 때만 작동한다는 것이다.
발트 국가들은 나토 회원국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불안을 호소한다. 이유는 명확하다. 집단방위 조항은 자동 장치가 아니며, 위기 시 강대국의 개입은 언제나 정치적 판단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발트 국가들이 요구하는 것은 규범적 연대가 아니라, 러시아가 감히 시험하지 못할 수준의 억지다.
전쟁을 끝내지 않겠다는 선언의 전략적 의미
푸틴의 신년 연설은 감정적 선동이 아니라 전략적 선언이었다. 그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협상 가능한 정책 실패로 규정하지 않았다. 대신 그것을 러시아의 체제와 문명, 역사적 권리를 지키는 전쟁으로 격상시켰다. 이 순간 전쟁은 끝을 정할 수 있는 사건이 아니라, 질서를 재편하는 수단이 된다.
이러한 인식은 전쟁을 억제하기 위한 조건을 바꾼다. 상대가 전쟁을 ‘피해야 할 비용’이 아니라 ‘감내 가능한 수단’으로 인식하는 순간, 재래식 억지는 급격히 효력을 잃는다. 이때 유일하게 계산을 강제하는 수단은 존재 자체로 치명적인 결과를 보장하는 억지력, 즉 핵이다.
지도에 드러난 유럽의 선택
나토 국경의 지뢰화와 방어선 강화는 유럽이 이미 결론에 도달했음을 보여준다. 전쟁은 끝나지 않았고, 충돌선은 봉합되지 않았으며, 장기 대치는 구조가 되었다는 판단이다. 이는 유럽이 더 이상 ‘전쟁을 막을 수 있는 질서’를 전제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대신 ‘전쟁이 다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조건’을 관리하려 한다.
그러나 이 관리 방식은 유럽의 지정학적 조건에서나 가능한 선택이다. 한국은 다르다. 한반도는 완충 지대도, 전략적 깊이도, 전쟁을 국지화할 공간도 없다. 유럽식 장기 대치 모델은 한반도에 적용될 수 없다.
세 기사가 공유하는 하나의 결론
이 세 기사를 융통합하면 하나의 결론이 도출된다.
봉합되지 않은 충돌선의 시대에, 억지는 다시 국가의 책임으로 돌아오고 있으며, 그 책임은 핵 억지 없이는 완결될 수 없다는 점이다.
이 결론은 이념적 선택이 아니다. 자유주의 패권 전략의 실패, 현실주의적 세력균형의 미완, 강대국 경쟁의 구조가 만들어낸 결과다.
유럽–대만–한반도의 결정적 차이
유럽은 집단 핵 억지 구조를 갖고 있다. 프랑스와 영국의 핵은 나토 전체의 전략 환경을 규정한다.
대만은 핵을 갖지 않았지만, 미국과 중국 사이의 전략적 모호성이라는 특수한 완충 구조 위에 놓여 있다.
한반도는 이 둘과 다르다. 한국은 핵을 보유한 적과 직접 대치하고 있으며, 전략적 모호성이 아니라 전략적 명확성이 요구되는 공간에 있다.
이 구조에서 한국만이 핵 억지를 갖지 않는다는 것은, 강대국 경쟁의 접경지대에서 유일하게 최종 억지를 외부에 의존하는 국가로 남는다는 뜻이다.
확장억지의 한계는 이미 드러났다
확장억지는 동맹이 유지되는 한 중요한 자산이다. 그러나 그것은 충분조건이 아니다. 유럽에서 드러났듯, 확장억지는 위기 시 정치적 계산과 국내 여론, 전장 우선순위에 따라 흔들린다. 이는 미국의 의지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한국이 직면한 핵 위협은 ‘관리 가능한 위기’가 아니다. 단 한 번의 오판이 국가 존립을 위협할 수 있는 상황에서, 억지를 외부의 정치적 결단에만 의존하는 것은 전략이 아니라 희망에 가깝다.
독자 핵무장이 동맹을 파괴한다는 오해
여기서 흔히 제기되는 반론은 독자 핵무장이 한미동맹을 약화시킨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는 유럽의 경험과 전략 이론 모두와 맞지 않는다. 프랑스와 영국의 핵은 나토를 붕괴시키지 않았다. 오히려 미국의 부담을 줄이고, 동맹 내부의 억지 구조를 안정화했다.
핵심은 방식이다. 독자 핵무장은 동맹을 대체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동맹이 작동하도록 만드는 최후의 안전장치로 설계되어야 한다.
미국 승인 하 독자 핵무장의 전략적 합리성
현실적으로 한국의 독자 핵무장은 미국과의 신뢰 기반 동맹을 전제로 하지 않으면 지속 가능하지 않다. 그러나 이것은 제약이 아니라 협상의 조건이다. 미국 역시 인도태평양에서 확장억지의 부담을 분산할 수 있는 신뢰 가능한 억지 축을 필요로 한다.
한국의 핵 억지는 미국을 배제하는 수단이 아니라, 미국이 한국을 포기할 수 없게 만드는 구조적 장치가 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자력 억지와 동맹 강화가 충돌하지 않는 지점이다.
독자 핵무장은 선택이 아니라 귀결이다
발트의 경보는 억지의 취약성을 말했고, 푸틴의 연설은 전쟁의 지속 가능성을 선언했으며, 나토 국경의 지뢰화는 장기 대치의 현실을 보여주었다. 이 세 메시지를 모두 받아들인다면, 한국의 선택지는 사실상 하나로 수렴한다.
재래식 전력 증강만으로는 핵을 억지할 수 없고, 확장억지만으로는 위기 시 신뢰를 담보할 수 없다. 남는 선택지는 독자 핵무장에 의한 자력 억지뿐이다.
억지는 선언이 아니라 결단이다
봉합되지 않은 충돌선의 시대에, 평화는 희망이 아니라 설계의 문제다. 설계의 핵심은 상대의 계산을 바꾸는 능력이다. 오늘날 그 능력의 최종 형태는 핵이다.
이 글의 출발점이 된 세 기사는 모두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전쟁은 끝나지 않았고, 억지는 다시 힘의 문제로 돌아왔으며, 국가 생존의 최종 책임은 다시 국가 자신에게 귀속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의 독자 핵무장은 급진적 선택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시작된 세계 질서 변화가 요구하는 전략적 귀결이다. 준비하지 않는 국가는 선택할 수 없고, 선택하지 않는 국가는 협상의 대상이 된다. 이 점에서 지금 한국이 마주한 질문은 단순하다.
억지를 남에게 맡길 것인가, 아니면 스스로 설계할 것인가.
이교관 글로벌이코노믹 대기자 yijion@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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