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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트럼프의 베네수엘라 석유 장악 구상, ‘현실성·법적 리스크’가 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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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트럼프의 베네수엘라 석유 장악 구상, ‘현실성·법적 리스크’가 관건

지난해 12월 21일(현지 시각) 베네수엘라 푸에르토카베요에 위치한 엘 팔리토 정유공장 앞 도로에 차량들이 오가고 있다. 이 정유공장은 베네수엘라 국영 석유기업 페트롤레오스 데 베네수엘라(PDVSA)가 운영하는 주요 시설 가운데 하나다. 사진=AP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지난해 12월 21일(현지 시각) 베네수엘라 푸에르토카베요에 위치한 엘 팔리토 정유공장 앞 도로에 차량들이 오가고 있다. 이 정유공장은 베네수엘라 국영 석유기업 페트롤레오스 데 베네수엘라(PDVSA)가 운영하는 주요 시설 가운데 하나다. 사진=AP연합뉴스
미군이 베네수엘라에서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체포한 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베네수엘라 석유산업을 사실상 장악해 미국 기업 주도로 재건하겠다는 구상을 밝히면서 국제사회에서는 국제유가 변동보다 이 같은 계획의 실현 가능성 자체에 더 큰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4일(현지 시각) AP통신에 따르면 베네수엘라는 세계 최대 수준의 원유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지만 장기간의 제재와 국유화 여파로 산업 전반이 붕괴된 상태여서 정치·법적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는 한 미국 석유 기업들의 본격적인 참여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 ‘기름은 있지만 꺼낼 수 없다’…붕괴된 산업구조


베네수엘라는 확인 매장량 기준으로 전 세계 원유의 약 17%를 보유하고 있지만 실제 생산량은 글로벌 공급의 1%에도 못 미친다. 국영 석유회사 페트롤레오스 데 베네수엘라(PDVSA)는 설비 노후화와 인력 이탈로 정상적인 운영이 어려운 상황이다.

AP에 따르면 에너지 전문가들은 문제의 핵심이 매장량이 아니라 생산 능력이라고 지적한다.

중질유 비중이 높은 베네수엘라 원유 특성상 채굴과 정제에 고도의 기술과 지속적인 유지 투자가 필요하지만 지난 10여 년간 관련 투자가 사실상 중단됐다는 점이 가장 큰 제약으로 꼽힌다는 것.

일부 추산에 따르면 현재 하루 100만 배럴 수준인 생산량을 과거 수준으로 회복하려면 최소 10년 이상의 시간과 약 1000억 달러(약 144조6000억 원)의 투자가 필요하다. 단기적인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 미국 기업들 ‘관망’…정권 안정·계약 신뢰가 전제


미국 주요 석유 기업들은 공식적으로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현재 베네수엘라에서 의미 있는 생산을 유지하고 있는 미국 기업은 셰브론이 유일하며 이마저 PDVSA와의 합작 형태다.

과거 우고 차베스 정권 시절 국유화로 엑손모빌과 코노코필립스 등이 강제 철수한 전례는 여전히 기업들의 판단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정권이 교체되더라도 계약 안정성과 사법 체계가 복원되지 않는다면 대규모 자본 투입은 어렵다는 인식이 강하다.
특히 코노코필립스는 베네수엘라 정부로부터 회수하지 못한 미지급금 문제가 남아있어 향후 법적·재정적 정리가 선행돼야 한다는 점에서 재진출 여부는 불투명한 상태다.

◇ 국제법 논란 불가피…‘자원 통제’의 법적 함정


트럼프 행정부의 구상은 국제법적 논란도 피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군사력으로 정권을 제거한 뒤 자원 통제를 시도하는 방식은 점령국의 권한 범위를 둘러싼 논쟁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국무부와 국방부에서 근무했던 매슈 왁스먼 컬럼비아대 로스쿨 교수는 점령국은 피점령국의 천연자원을 자국 이익을 위해 이용할 수 없다는 국제법 원칙이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미국이 베네수엘라의 석유를 관리하고 개발하는 과정에서 수익 귀속 구조와 운영 주체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외교적 마찰이 불가피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이와 함께 베네수엘라가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이라는 점도 변수다. 생산 확대가 현실화될 경우 OPEC 내부 감산 합의와의 충돌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전망이 나온다.

◇ 유가보다 중요한 건 ‘정치적 출구’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단기 유가 변동보다 미국의 대외 개입 방식과 에너지 전략의 지속 가능성을 시험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정치적 출구 전략이 불명확한 상태에서 석유산업 재건을 추진할 경우 비용과 리스크가 급격히 커질 수 있다는 점에서다.

에너지업계에서는 베네수엘라 원유가 글로벌 시장에 의미 있게 복귀하려면 군사적 개입보다 정권 안정, 제재 완화, 계약과 사법 시스템에 대한 신뢰 회복이 선행돼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인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