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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교관의 글로벌 워치] 강대국이 주권을 결정하는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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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교관의 글로벌 워치] 강대국이 주권을 결정하는 시대

미국의 베네수엘라 대통령 압송과 중국의 대만 포위가 만든 질서 붕괴, 그리고 한국 안보의 구조적 노출
헤그세스 美 국방장관이 지난해 6월 초 “중국이 대만 침공을 준비 중이라며 침공 임박 가능성을 경고했다. 사진은 2017년 홍콩의 영국 반환 20주년을 맞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주둔 병력을 사열하고 있는 모습이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헤그세스 美 국방장관이 지난해 6월 초 “중국이 대만 침공을 준비 중"이라며 침공 임박 가능성을 경고했다. 사진은 2017년 홍콩의 영국 반환 20주년을 맞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주둔 병력을 사열하고 있는 모습이다. 사진=로이터


국제질서가 무너지는 순간은 조약이 폐기될 때가 아니다. 그것은 강대국이 스스로를 규범의 해석자이자 집행자로 자처하며, 국가 주권과 국제 규칙을 자신의 전략적 필요에 따라 선택적으로 적용하는 행동을 감행할 때 시작된다.

최근 세계 질서를 뒤흔든 두 사건은 이 점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하나는 중국의 대만 포위 군사훈련이고, 다른 하나는 미국이 베네수엘라의 마두로 대통령을 체포해 본토로 압송한 사건이다. 두 사안은 지역도, 명분도 다르다. 그러나 국제정치의 구조적 관점에서 보면 동일한 문제를 공유한다. 강대국이 규범을 말하면서 규범을 무력화하는 순간, 세계는 규칙의 질서에서 힘의 질서로 이동한다.

규범을 말하며 규범을 무력화하는 강대국의 논리


중국은 대만을 ‘내정 문제’이자 ‘영토 보전’의 문제로 규정하며 대규모 군사훈련을 정당화한다. 그러나 그 실행 방식은 방어가 아니라 선택지 제거다. 해상과 공중을 포위하는 군사 행동은 현상 유지를 넘어, 무력에 의한 현상 변경을 상시화하는 압박이다. 이는 국제법이 금지하는 강압적 수단의 전형이다.

미국의 베네수엘라 대통령 체포 역시 다르지 않다. 범죄 처벌과 정의 구현이라는 언어를 사용했지만, 주권 국가의 현직 수반을 국제적 합의된 사법 절차 없이 체포·압송한 행위는 국가 주권을 침해하는 위험한 선례를 남겼다. 법의 이름으로 실행되었으나, 규범의 보편성을 강화하기보다 ‘강대국만이 규범의 예외를 선언할 수 있다’는 신호를 전 세계에 보냈다.

두 사건의 공통점은 명확하다. 강대국은 규범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복해 언급한다. 그러나 그 규범이 자신의 전략적 목표를 제약하는 순간, 해석과 집행의 주체를 국제사회에서 자기 자신으로 바꾼다. 이때 국제질서는 규칙의 체계가 아니라, 힘의 사용이 정당화되는 공간으로 전락한다.

대만 해협과 베네수엘라에서 동일하게 작동한 권력 메커니즘


중국의 대만 포위 훈련은 단순한 군사 시위가 아니다. 이는 전쟁을 일으키지 않고도 상대의 전략적 선택지를 제거하는 ‘상시적 강압’의 구축이다. 대만을 둘러싼 해상·공중 통제는 위기 시 즉각적인 봉쇄로 전환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든다.

미국의 베네수엘라 대통령 체포와 압송은 전쟁과 무관해 보이지만, 구조적으로는 동일하다. 무력을 동원해 타국의 주권적 결정을 무력화할 수 있다는 선례를 남김으로써, 국제 질서의 안정적 예측 가능성을 파괴한다. 명분은 다르지만 결과는 같다. 강대국이 필요하면 주권을 넘어설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된다.
이러한 행동은 단발성 사건으로 끝나지 않는다. 국제정치에서 선례는 곧 규칙이 된다. 그리고 그 규칙은 가장 취약한 지역, 가장 민감한 체제에서 즉각 반응을 낳는다.

평양의 즉각적 반응이 보여준 연쇄 불안정성


미국의 베네수엘라 대통령 체포 보도 직후, 북한은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이 시간적 근접성은 우연으로 보기 어렵다. 평양은 강대국이 필요에 따라 국가 주권을 무력화할 수 있다는 신호에 극도로 민감하다. 이 미사일 발사는 단순한 기술 시험이 아니라, 체제 생존을 둘러싼 불안의 표현이다.

더 위험한 점은 이러한 긴장이 대남 공격 옵션까지 포함한 계산으로 확장될 수 있다는 점이다. 즉, 미중의 행동이 직접적으로 한반도를 겨냥하지 않았음에도, 그 파급 효과는 곧바로 한국 안보를 압박하는 방향으로 이동한다. 강대국의 규범 훼손은 국지적 사건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연쇄적 불안정성을 통해 동맹국의 안보를 구조적으로 위협한다.

반복되는 교훈: 나토 동진과 북러 협력의 역설


이 구조는 이미 한 번 경험했다. 미국과 나토가 러시아에 대한 완전한 승리를 목표로 동진을 추진한 결과, 그 전략과 직접적 관련이 없는 동아시아에서 북러 군사 협력이 급격히 강화되었다. 러시아는 전쟁 수행을 위해 북한의 자원을 필요로 했고, 그 대가로 군사 기술 이전과 전략 협력이 이루어졌다.

이 과정에서 한국은 어떤 선택도 하지 않았음에도, 타 지역의 전략적 결정이 불러온 안보 비용을 떠안았다. 지금의 미중 행동 역시 같은 경로를 밟고 있다. 베네수엘라와 대만에서의 행동이 평양의 미사일로, 다시 한반도의 긴장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중국의 이중 전략과 한국 안보의 실질적 훼손


중국의 대만 포위 군사훈련과 한국을 향한 ‘하나의 중국’ 지지 압박은 분리된 사건이 아니다. 이는 무력에 의한 대만 복속이라는 장기 목표를 포기하지 않은 채, 주변국을 군사적·외교적으로 동시에 활용해 비용을 낮추려는 단일 전략의 두 축이다.

중국은 대만을 상대로는 포위 군사 훈련으로 선택지를 제거하고, 한국을 상대로는 신년 첫 정상회담이라는 상징적 보상으로 전략적 양보를 끌어냈다. 그 결과 중국은 전쟁을 일으키지 않고도 한국으로부터 사실상의 조건 없는 ‘하나의 중국’ 지지 표명을 받아냈다.

이 과정에서 실제로 훼손된 것은 대만 문제가 아니라 한국의 핵심 안보 자산이다. 중국은 한국이 인도태평양 질서의 핵심 사안에서도 중국의 전략적 민감성 앞에서 모호해질 수 있는 국가라는 인식을 동맹권에 심어주었다. 이는 향후 한국이 미국을 상대로 독자 핵무장을 포함한 자력 억지 전략의 확보에 대해 설득하는 데 있어 치명적인 신뢰 손실로 작용한다. 핵무장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질서 유지에 대한 책임 분담 능력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불량 강국의 정의: 규범을 선택적으로 사용하는 국가


불량 강국은 국제질서를 부정하는 국가가 아니다. 오히려 국제질서를 선택적으로 사용하는 국가다. 자신에게 유리할 때는 규범을 강조하고, 불리할 때는 명분을 바꿔 무력과 강압을 동원한다. 중국과 미국은 정치 체제와 이념을 넘어 이 점에서 동일한 행동 패턴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행태가 지속될수록 중견국과 약소국은 두 가지 선택지밖에 남지 않는다. 강대국의 해석에 종속되거나, 자력 억지력을 강화해 스스로를 보호하는 것이다. 한국에게 이는 윤리적 논쟁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동맹에 전가되는 예기치 않은 안보 비용


강대국은 자신의 행동이 다른 지역의 안보 균형에 미치는 연쇄 효과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는다. 그 결과 동맹국은 선택하지 않은 위기의 비용을 떠안는다. 미중의 불량 강국식 권력 행사는 세계 질서를 불안정하게 만들 뿐 아니라, 동맹국들에게 예기치 않은 안보 위협을 구조적으로 전가한다.

한국은 그 최전선에 있다. 대만 해협의 긴장, 베네수엘라에서의 선례, 평양의 미사일은 하나의 연결된 사슬이다. 이 사슬의 공통 원인은 규범을 무력화하는 강대국의 행동이다.

질서를 되살리기 위한 책임의 재배치


이번 사태는 단순한 외교적 논란이 아니라 경고다. 강대국은 과연 국제질서의 수호자인가, 아니면 가장 위험한 예외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미중이 다른 국가의 주권을 선별적으로 존중하고 무시하는 불량 강국으로서의 권력 행사를 자제하지 않는다면, 세계는 규범의 시대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 대가는 가장 먼저, 가장 크게 한국과 같은 중견국의 안보 위기로 나타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침묵도, 편 가르기도 아니다. 강대국에게 질서를 지킬 책임을 다시 묻는 것, 그리고 그 책임이 무너질 경우를 대비해 스스로를 지킬 준비를 하는 것이다. 규범이 무력화되는 세계에서, 규범은 선언일 뿐 안전장치가 아니다. 이 현실을 직시하지 않는 국가는 다음 위기의 첫 번째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다.


이교관 글로벌이코노믹 대기자 yijion@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