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이교관의 글로벌 워치] 미국의 기후변화 이탈은 인류 생존 관리에서의 후퇴다

글로벌이코노믹

[이교관의 글로벌 워치] 미국의 기후변화 이탈은 인류 생존 관리에서의 후퇴다

신 먼로 독트린이 드러낸 국익 중심 전략의 한계와 자국민 포함한 인류 안전의 불안정화
중국이 기후변화 연구 논문 건수에서 미국을 제치고 이 분야의 글로벌 선두로 부상하고 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중국이 기후변화 연구 논문 건수에서 미국을 제치고 이 분야의 글로벌 선두로 부상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기후변화 의제를 환경 정책으로 보는 것은 매우 중대한 본질을 놓치는 것이다. 그것은 인류가 이 지구 위에서 지속적으로 존속할 수 있는 조건을 관리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기후변화 대응은 도덕적 선택이나 국제적 선의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 문명이 스스로를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수행해야 하는 집단적 관리 행위인 것이다. 이 의제는 경제나 외교, 안보 가운데 하나로 분류될 수 없는 인류의 최상위 문제이며, 어떤 국가도 단독으로 회피하거나 책임을 전가할 수 없는 성격을 지닌다.

그런데 최근 미국이 이 같은 중대한 의제에서 이탈을 선택했다. 이는 단순한 정책 변경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그것은 인류 전체가 의존해 온 생존 관리 체계에서 가장 큰 책임자이자 핵심 행위자가 물러났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의 기후변화 의제 이탈은 환경 규제의 완화나 국제기구 탈퇴라는 행정적 조치로 축소될 수 없다. 그것은 인류의 안전을 공동으로 관리해 온 질서 자체에 균열을 일으키는 선택인 것이다.

기후변화 관리는 환경 정책이 아니라 인류 존속을 위한 집단 안전 체계다


기후변화 관리 체계는 본질적으로 집단 관리 시스템이다. 기후는 국경을 가리지 않고, 반구로 나뉘지 않으며, 특정 영향권 안에 가둘 수 없다. 군사력이나 경제력으로 억지할 수도 없다. 따라서 기후변화 대응은 국제 협력과 규범, 그리고 책임 분담 위에서만 작동한다. 이 체계의 핵심은 모든 국가가 동일한 책임을 지는 데 있지 않다. 영향력과 자원, 기술과 자본을 더 많이 가진 국가가 더 큰 책임을 지는 구조다. 미국은 오랫동안 이 구조의 중심에 있었던 국가다.
미국의 이탈은 이 관리 체계의 효율을 떨어뜨리는 수준을 넘어선다. 그것은 체계의 정당성과 신뢰를 동시에 약화시킨다. 관리 시스템은 참여자들이 그 시스템이 유지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질 때만 작동한다. 가장 큰 행위자가 이탈하는 순간, 다른 국가들은 더 이상 이 의제가 절대적이라고 믿지 않게 된다. 기후변화 대응이 공동의 의무가 아니라 선택 가능한 부담으로 인식되기 시작하면, 관리 체계는 연쇄적으로 느슨해진다.

신 먼로 독트린은 기후 의제 앞에서 국익 개념의 자기 모순을 드러낸다


미국의 기후변화 이탈이 특히 심각한 이유는 그것이 신 먼로 독트린이라는 자국 국익 중심 대전략과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신 먼로 독트린의 핵심 논리는 명확하다. 글로벌 관리 비용은 부담하지 않고, 국제 규범과 제도는 선택적으로 활용하며, 자국의 단기적 국익과 영향권을 우선한다는 사고다. 이 논리는 외교와 안보 영역에서는 현실주의 전략으로 포장될 수 있다. 그러나 이 논리가 기후변화 의제에 적용되는 순간, 치명적인 모순이 발생한다.

기후변화는 단기적 국익 계산에 맞지 않는 의제다. 기후변화는 장기적이며 집단적이고, 국경을 초월해 작동하기 때문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관리가 필요하다. 신 먼로 독트린식 국익 계산은 기후변화 대응에 가장 부적합한 방식인 것이다. 그럼에도 미국이 이 의제에서 이탈했다는 것은, 자국 국익을 명분으로 삼아 사실상 미국인 자신에게도 적용되는 인류 생존의 핵심 관리 의제를 전략의 우선순위에서 밀어냈다는 뜻이다.

패권국의 기후 이탈은 동맹 신뢰와 안보 개념까지 함께 붕괴시킨다


이 같은 선택은 미국에게 이중의 자기부정을 낳는다. 첫째, 미국은 패권국으로서 인류 생존 관리의 핵심 행위자라는 역할을 스스로 포기한 것이다. 둘째, 미국은 자국민에게도 직접적으로 돌아올 위험을 국익에 반한다는 이유로 외면한 것이다. 이는 국익의 강화가 아니라 국익 개념 자체의 축소라고 보아야 한다. 국익은 단기적 비용 절감이 아니라, 국가와 국민이 지속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조건을 유지하는 데서 성립하기 때문이다. 그 조건을 훼손하면서 국익을 말하는 것은 전략이 아니라 근시안인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탈이 동맹 질서에 미치는 파급 효과다. 기후변화 의제는 군사 동맹과 무관한 영역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동맹 신뢰의 중요한 기반이다. 국제적 약속을 일방적으로 철회하는 행위는 동맹국들에게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환경 협약을 쉽게 폐기하는 국가가 안보 약속은 끝까지 지킬 것이라는 확신을 어떻게 가질 수 있는가라는 질문인 것이다. 이 질문이 확산되는 순간, 동맹의 자동성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자동성이 약화된 억지는 억지가 아니다.

기후변화 의제 이탈은 문명 관리 포기이며 대응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기후변화 대응에서의 이탈은 안보 개념 자체를 흔든다. 전통적 안보는 군사적 위협을 억지하고 방어하는 개념이었다. 그러나 기후변화는 그 어떤 군사력으로도 억지할 수 없는 위협이다. 기후 관리를 거부하는 국가는 군사력으로 대응할 수 없는 위협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셈이다. 이는 안보의 범위를 좁히는 것이 아니라, 안보의 토대를 허무는 선택이다.

이제 문제는 대응 방향이다. 기후변화 의제를 다시 환경 정책의 영역으로 환원시키려는 시도를 중단해야 한다. 이 의제는 비용과 이익의 문제가 아니라 관리와 방치의 문제다. 관리하지 않으면 비용은 통제 불가능한 방식으로 돌아온다. 더군다나 기후 거버넌스의 공백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규범은 유지될 때 복원이 가능하며, 붕괴된 이후에는 훨씬 더 큰 비용을 요구한다. 마지막으로 기후변화 대응을 안보와 분리해서 다루지 말아야 한다. 기후 관리는 평화 유지의 부차적 요소가 아니라 전제 조건이기 때문이다.

본지가 제기하고자 하는 결론은 명확하다. 미국의 기후변화 의제 이탈은 환경 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 생존 관리 체계의 균열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미국이 자국 국익을 명분으로 삼아, 미국인 자신에게도 해당하는 인류 생존의 가장 중대한 문제를 전략의 후순위로 밀어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는 국익의 강화가 아니라 국익 개념의 자기 해체라고 봐야 한다. 기후변화 대응을 둘러싼 논쟁은 더 이상 찬반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관리할 것인가, 방치할 것인가의 선택인 것이다. 그리고 그 선택의 결과는 어느 한 국가가 아니라 인류 전체가 감당할 수밖에 없다.


이교관 글로벌이코노믹 대기자 yijion@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