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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값, 온스당 5000달러 ‘초읽기’… 화폐 불신이 부른 ‘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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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값, 온스당 5000달러 ‘초읽기’… 화폐 불신이 부른 ‘질주’

주간 8.5% 폭등,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최대 상승폭
트럼프발 지정학적 리스크와 ‘화폐 가치 절하’ 공포 확산
중앙은행의 공격적 매집과 증시 거품 경고가 상승 견인
시장 불안을 잠재우는‘해독제’로 귀금속을 찾는 수요가 폭발하면서 금값이 사상 최고치를 다시 썼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시장 불안을 잠재우는‘해독제’로 귀금속을 찾는 수요가 폭발하면서 금값이 사상 최고치를 다시 썼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시장 불안을 잠재우는 해독제로 귀금속을 찾는 수요가 폭발하면서 금값이 사상 최고치를 다시 썼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23(현지시각) 금 선물 가격이 온스당 5000달러(726만 원) 돌파를 눈앞에 뒀다고 보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위협과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독립성 침해 논란, 그리고 각국 중앙은행의 공격적인 금 매입이 맞물린 결과다.

미지의 영역 진입한 금값… 신뢰가 무너지고 있다


금 가격이 거침없이 오르고 있다. 뉴욕상품거래소(COMEX)에서 1월 인도분 금 선물은 지난 23일 온스당 4976.20달러(723만 원)에 마감했다. 지난주에만 8.5% 뛰었다. 달러 기준으로는 역대 최대 주간 상승폭이며, 등락률로 따지면 코로나19 확산으로 금융시장이 공황에 빠졌던 20203월 이후 가장 가파르다.

불과 석 달 전 온스당 4000달러(581만 원)를 넘어서며 경이롭다는 평가를 받았던 금값은 이제 5000달러 고지를 넘보고 있다. 연말 인도분 선물 가격은 이미 5000달러 선을 뚫었다.

이번 폭등세는 단순한 수급 불균형이 아니다. 시장 참여자들은 이를 화폐 가치 절하 거래라고 부른다. 정부가 인플레이션을 통제하지 못하거나 나랏빚을 줄이지 못할 때, 화폐 가치가 떨어질 것을 우려해 실물 자산인 금으로 돈이 몰리는 현상이다.

TD증권의 다니엘 갈리 전략가는 금값 상승은 화폐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흔들린다는 방증이라며 현재 신뢰가 위태로운 상황이며, 이것이 완전히 무너진다면 상승세는 훨씬 더 길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트럼프의 관세 폭탄과 지정학적 살얼음판


트럼프 대통령의 거친 행보가 불에 기름을 부었다. 그는 최근 그린란드 영유권 문제로 유럽 동맹국에 추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위협했다가 철회했다. 베네수엘라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을 축출하려 군사 작전을 승인했고, 법무부를 통해 제롬 파월 연준 의장에게 금리 인하를 압박했다.

이러한 행보는 달러화의 안정성을 해치는 요인이다. 실제로 올해 초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공세 탓에 달러 가치는 50년 만에 최악의 상반기를 보냈다. 투자자들은 미국의 재정 건전성과 통화 정책 독립성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유럽과 일본이 경기 부양을 위해 돈을 푸는 확장 정책을 펴면서 화폐 가치 하락 우려는 전 세계로 번졌다.

지난 20일 일본 국채 시장에서 대규모 매도세가 나오며 장기 금리가 사상 최고치로 치솟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대서양 양쪽에서 무역 전쟁이 터질 수 있다는 공포가 안전자산 쏠림을 부추겼다.

큰손중앙은행의 귀환과 금리 인하 효과


각국 중앙은행도 금 사재기에 나섰다. 세계금협회(WGC) 자료를 보면, 2010년 이전까지 금을 주로 내다 팔던 중앙은행들은 금융위기 이후 매수세로 돌아섰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서방이 러시아를 제재한 2022년부터 매입 규모를 대폭 늘렸다.

중국과 폴란드 등 서방과 관계가 껄끄럽거나 지정학적 긴장을 느끼는 국가들이 앞장섰다. 미국이 달러를 무기화하는 상황에서, 제재 대상이 될 수 없는 금으로 외환보유고를 채우려는 전략이다.

후안 카를로스 아르티가스 세계금협회 연구 책임자는 중앙은행이 금을 사는 건 가격이 올라서가 아니다라며 외환보유고를 다변화하고 위험을 분산하는 데 금만 한 자산이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금리 환경도 우호적이다. 연준이 금리를 내리면서 국채나 현금성 자산의 수익률이 떨어졌다. 이자가 나오지 않는 금을 보유하는 기회비용이 줄어든 셈이다. 머니마켓펀드(MMF)에 쌓인 자금은 지난해 말 기준 77000억 달러(11188조 원)에 이른다. 골드만삭스는 이 막대한 자금 중 아주 일부만 금으로 이동해도 가격 파괴력은 엄청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증시 거품론과 멈추지 않는 관성


주식시장의 고평가 논란도 투자자들을 금으로 이끈다. 현재 미국 증시의 주가수익비율(PER)2000년 닷컴 버블 붕괴 직전 수준까지 치솟았다.

엔비디아, 테슬라 등 일부 거대 기술주가 지수를 끌어올리는 착시 효과도 불안 요인이다. 지난 20매그니피센트 7’ 기술주가 일제히 하락하며 하루 만에 시가총액 6830억 달러(992조 원)가 증발하자 시장의 공포감은 극대화됐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금값 고공행진이 이어질 것으로 본다. 씨티은행 분석팀은 역사적으로 금 선물 가격이 20% 이상 오른 해의 다음 해에는 평균 15% 이상 추가 상승하는 경향이 있다고 짚었다. 202427% 급등했던 금값은 202565%나 폭등하며 이런 관성 법칙을 증명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