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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들고 참호 가지 마라"…우크라, 30달러짜리 '실전 드론 게임' 출시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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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들고 참호 가지 마라"…우크라, 30달러짜리 '실전 드론 게임' 출시한 이유

우크라군 5천 명 양성한 시뮬레이터, 민간용 게임으로 변신…"물리 엔진·조작감 실전과 판박이"
개발자 "청년들에게 소총 대신 조종기 쥐어줄 것"…미래 전력 확보 위한 '조기 교육' 포석
러시아 악용 우려엔 선 그어…"침투 경로 등 핵심 전술 데이터는 삭제, 아케이드성 가미"
우크라이나 개발사가 출시한 '우크라이나 파이트 드론 시뮬레이터(UFDS)'의 게임 화면. 플레이어가 FPV 드론 시점으로 러시아군 트럭을 향해 돌진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이 게임을 통해 청소년들이 자연스럽게 드론 조작술을 익혀 미래의 비대칭 전력으로 성장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사진=UFDS이미지 확대보기
우크라이나 개발사가 출시한 '우크라이나 파이트 드론 시뮬레이터(UFDS)'의 게임 화면. 플레이어가 FPV 드론 시점으로 러시아군 트럭을 향해 돌진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이 게임을 통해 청소년들이 자연스럽게 드론 조작술을 익혀 미래의 비대칭 전력으로 성장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사진=UFDS

현대전의 게임체인저로 등극한 'FPV(1인칭 시점) 자폭 드론'이 이제 안방 모니터 속으로 들어왔다. 우크라이나가 자국 드론 조종병 양성에 사용하던 군용 시뮬레이터를 일반인도 즐길 수 있는 비디오 게임으로 개조해 출시했다. 단돈 30달러(약 4만 3000원)에 판매되는 이 소프트웨어는 단순한 오락거리를 넘어, 전쟁의 장기화에 대비해 미래의 드론 전사를 육성하려는 우크라이나의 치밀한 '전 국민 군사화' 전략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 CBS 뉴스는 6일(현지 시각) "우크라이나군이 사용하는 훈련 프로그램의 축소판인 '우크라이나 파이트 드론 시뮬레이터(UFDS)'가 전 세계 게이머들에게 판매되고 있다"며 전쟁 도구와 엔터테인먼트의 경계가 무너진 현대전의 단면을 보도했다.

전장의 물리학을 그대로…"이건 게임이 아니라 훈련이다"


이 게임의 개발을 주도한 블라드 플락신(Vlad Plaksin)은 실제 우크라이나군 드론 조종사를 양성하는 '드론 파이트 클럽 아카데미'의 CEO다. 그는 개전 이후 5000명 이상의 군용 드론 조종사를 배출한 인물로, 지난해 독일 람슈타인 미 공군 기지에서 미군과 합동 훈련을 진행하기도 했다.
UFDS의 가장 큰 특징은 '초현실적인 물리 엔진(Ultra-realistic physics)'이다. 시중의 아케이드 게임처럼 버튼 하나로 쉽게 비행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전장의 바람, 기상 악화, 통신 지연 등 변수들을 그대로 구현했다. 게이머들은 모니터를 통해 실제 우크라이나 드론병들이 러시아 전차와 미사일 발사대, 병력을 타격할 때 느끼는 긴장감과 조작 난이도를 고스란히 체험하게 된다.

플락신 CEO는 "이 게임은 최전선에서의 교훈을 바탕으로 제작된 선도적인 훈련 도구의 대중적 적응판"이라며 "누구나 최전방 조종사처럼 비행하고 현대전의 긴박감을 느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소총 대신 조종기…"참호전의 비극 막겠다"


군용 소프트웨어를 굳이 민간 게임으로 푼 이유는 명확하다. 바로 '예비 전력의 조기 확보'다.

4년째 이어지는 러시아와의 총력전 속에서 인력 부족에 시달리는 우크라이나는, 청소년들이 게임을 통해 자연스럽게 드론 조작법을 익히기를 기대하고 있다. 플락신은 CBS와의 인터뷰에서 "우리의 목표는 젊은이들을 훈련시켜 '그들이 소총을 들고 참호로 들어가지 않게 하는 것(not to go to the trench with rifles)'"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육탄전 중심의 소모전에서 벗어나, 로봇과 드론이 주도하는 비대칭 전력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의지다. 그는 "대다수 우크라이나 젊은이들은 비행을 원하고, (러시아군을) 타격하고 싶어 하며, 로봇 공학의 새로운 세상에서 성장하기를 원한다"고 덧붙였다.

러시아가 베끼면 어쩌나?…"전술 데이터 뺀 '알맹이'만 제공"


일각에서는 적국인 러시아가 이 게임을 역으로 이용해 자국 드론병을 훈련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한다. 이에 대해 개발진은 "민간 버전과 군용 버전은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고 선을 그었다.

공개된 게임 버전에는 군사 기밀에 해당하는 '핵심 전술(Tactics)' 데이터가 삭제됐다. 예를 들어, 실제 훈련에서는 목표물까지 30분 이상 비행하며 지도를 독해하고 침투 경로를 짜는 지루하고 복잡한 과정이 필수적이지만, 게임 버전에서는 이를 과감히 생략하고 교전 상황 위주로 구성했다.

플락신은 "실제 드론 작전에서 지도를 읽고 지형을 대조하는 능력은 필수적이지만, 게이머들에겐 지루할 수 있어 제외했다"며 "러시아군이 이 게임으로 기본적인 조작감은 익힐 수 있어도, 우크라이나군의 작전 교리나 전술적 노하우는 훔칠 수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과거 미 육군이 모병을 위해 '아메리카스 아미(America's Army)'라는 게임을 제작한 적은 있지만, 현재 진행 중인 전쟁의 실전 데이터를 기반으로 민간용 시뮬레이터를 내놓은 것은 전례 없는 일이다. 우크라이나의 '30달러짜리 훈련소'는 전쟁이 일상이 된 국가가 생존을 위해 선택한 가장 현대적이고 처절한 몸부림으로 읽힌다.


김정훈 기자 kjh777@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