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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AI 골드러시 속 주 70시간 노동 확산…美 IT 기업들, ‘996’ 문화로 속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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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AI 골드러시 속 주 70시간 노동 확산…美 IT 기업들, ‘996’ 문화로 속도전

메타플랫폼스와 구글의 로고.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메타플랫폼스와 구글의 로고. 사진=로이터


미국의 IT 기업들이 인공지능(AI) 개발 경쟁이 격화되면서 주 70시간 이상 근무를 당연시하는 이른바 ‘996’식 장시간 노동 문화를 공개적으로 내세우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BBC는 AI 기술 상용화를 둘러싼 속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근무시간 자체를 헌신과 성과의 지표로 삼는 분위기가 다시 확산되고 있다며 9일(현지시각) 이같이 보도했다.

◇ “주 70시간 못하면 오지 말라”…AI 스타트업의 노골적 속도전


BBC에 따르면 뉴욕에 본사를 둔 AI 스타트업 릴라는 채용 홈페이지에서 ‘미친 속도’, ‘무한한 호기심’, ‘고객 집착’ 같은 문구를 내걸고 무료 식사와 헬스장 이용, 의료·치과 보험 등을 복지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채용 공고 말미에는 “주당 약 70시간을 뉴욕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데 흥미가 없다면 지원하지 말라”는 경고 문구가 함께 적혀 있다. 이 회사는 영업사원이 고객을 만나는 현장을 AI로 분석·관리하는 시스템을 판매하고 있다.

릴라의 성장 담당 책임자인 윌 가오는 직원들이 장시간 근무를 부담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는 올림픽 선수 같은 집요함과 야망을 지닌 사람을 찾는다”고 말했고 “새벽까지 아이디어에 몰두한 뒤 다음날 늦게 출근하는 식으로 유연하게 일한다”고 설명했다. 회사 측은 근무시간보다 몰입과 속도를 중시한다는 입장이다.

◇ 중국서 시작된 ‘996’, 규제 이후에도 다른 지역으로 확산


이같은 문화는 중국에서 먼저 확산된 ‘996’ 근무 형태와 닮아 있다는 지적이다. 996 근무제는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주 6일 일하는 방식으로 한때 중국 IT 기업과 창업가들 사이에서 성공의 조건처럼 받아들여졌다.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은 과거에 “996으로 일할 수 있는 것은 큰 축복”이라고 주장했고 징둥닷컴 창업자 류창둥도 “게으른 사람은 내 형제가 아니다”라는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과도한 노동과 초과근무 미지급 문제에 대한 비판이 커지면서 중국 당국은 2021년 이후 관련 법 집행을 강화했다. 이후 공개적으로 996 문화를 옹호하는 목소리는 크게 줄었지만 미국과 유럽의 일부 AI 스타트업에서는 비슷한 흐름이 다시 나타나고 있다고 BBC는 전했다.

◇ “40시간 근무 원하면 맞지 않아”…AI 창업가들의 인식


유럽과 북미에서 채용 회사를 운영하는 에이드리언 키너슬리는 “주로 벤처캐피털 자금을 유치한 AI 기업들이 시장 선점을 위해 장시간 노동을 택하고 있다”며 “더 오래 일하면 경쟁에서 이긴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고 말했다.

독일 출신 창업가 마그누스 뮐러가 공동 창업한 브라우저유스는 AI가 웹 브라우저를 직접 조작하도록 돕는 도구를 개발 중이다. 직원들이 함께 거주하며 일하는 이른바 ‘해커 하우스’에서 생활하는 그는 “우리가 풀려는 문제는 매우 어렵고 경쟁도 치열하다”며 “깊이 몰입해야만 돌파구가 열린다”고 말했다. 그는 주 40시간 근무를 원하는 사람은 회사에 맞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 장시간 노동의 그늘…생산성·건강 모두에 경고음


반면 장시간 근무가 성과로 직결된다는 인식에 회의적인 시각도 적지 않다. 벤처캐피털 멘로벤처스의 디디 다스 파트너는 “젊은 창업자들이 가장 많이 저지르는 실수는 근무시간 자체를 생산성과 동일시하는 것”이라며 “오래 일하게 강요하는 방식은 가족이 있는 직원이나 숙련된 인재를 배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는 창업자 본인에 대해서는 “초기 창업자가 주 70∼80시간 일하지 않는다면 투자자로서 오히려 걱정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건강 측면의 위험성도 반복적으로 제기된다.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노동기구(ILO)는 2021년 발표한 공동 분석에서 주 55시간 이상 근무가 뇌졸중과 심장질환 위험을 크게 높인다고 밝혔다. 일본에서는 과로로 인한 사망을 뜻하는 ‘가로시’와 과로 자살을 의미하는 ‘가로지사쓰’가 법적으로 인정될 정도로 장시간 노동의 폐해가 심각하다.

생산성 측면에서도 장시간 근무의 한계는 분명하다는 연구가 많다. 다수 연구는 주 40시간 안팎이 생산성을 유지할 수 있는 임계점이며 이를 넘어서면 피로 누적으로 성과가 둔화된다고 지적한다. 미시간주립대는 “주 70시간 근무자의 산출량이 주 50시간 근무자와 거의 차이가 없다”는 연구 결과를 제시한 바 있다.

그럼에도 기업들이 장시간 노동을 선호하는 이유는 인력 확충에 따른 비용 부담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 방식이 단기적으로는 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번아웃과 이직을 초래해 혁신 역량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한다.

BBC는 “996 문화는 숨기지 않고 오히려 훈장처럼 홍보되고 있다”면서도 “취업 시장 침체나 비자 문제 등 권력 관계 속에서 선택의 여지가 없는 노동자들도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