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28일(현지시각)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두 나라의 군사적 긴장이 단기간에 형성된 것이 아니다.
양국 관계의 균열은 1953년 미국과 영국 정보기관이 모하마드 모사데그 이란 총리를 축출하고 친서방 성향의 모하마드 레자 팔라비 국왕을 복위시킨 쿠데타에서 본격화됐다. 이는 이란 의회가 1951년 석유 산업 국유화를 결정한 이후 벌어진 일로, 이 사건은 이란 사회에 반미 정서를 깊게 남겼다.
◇ 혁명과 단교…1979년이 분수령
미국과 이란은 1968년 핵확산금지조약(NPT)에 함께 서명하며 협력 기조를 유지했지만 1979년 이슬람 혁명이 관계를 완전히 뒤집었다.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가 주도한 혁명으로 팔라비 왕정이 무너지고 이슬람 공화국이 수립됐다.
그해 11월 테헤란 주재 미국 대사관이 점거되며 미국인 52명이 444일간 억류됐다. 지미 카터 당시 미국 대통령은 외교 관계를 단절했고 이후 공식 외교는 복원되지 않았다.
1980년 이라크의 침공으로 발발한 이란·이라크 전쟁에서는 미국이 이라크를 지원했다. 1988년에는 미 해군 순양함 빈센스함이 이란 민항기를 오인 격추해 290명이 사망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 제재·스캔들·‘악의 축’ 발언
1984년 미국은 이란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했고 이후 무기 금수와 경제 제재를 강화했다. 1986년에는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가 이란에 무기를 비밀 판매한 이란-콘트라 스캔들이 드러났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2002년 국정연설에서 이란을 북한, 이라크와 함께 ‘악의 축’으로 규정했다. 그해 이란 반체제 단체는 나탄즈 우라늄 농축 시설과 아라크 중수로 존재를 공개했다.
◇ 핵합의 체결과 파기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시기인 2013년 미국과 이란은 고위급 통화를 재개했고 같은 해 잠정 핵합의가 체결됐다. 2015년에는 포괄적공동행동계획(JCPOA)이 타결됐다. 이 합의에 따라 이란은 우라늄 농축도를 3.7%로 제한하고 농축 우라늄 보유량을 300㎏으로 축소하기로 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첫 임기였던 2018년 JCPOA를 일방적으로 탈퇴하고 ‘최대 압박’ 제재를 재개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따르면 미국 탈퇴 이후 이란은 농축 우라늄 생산을 확대해 60% 농축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 솔레이마니 사망과 군사적 긴장
2019년 미국은 이란 혁명수비대를 테러조직으로 지정했다. 2020년에는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드론 공습으로 가셈 솔레이마니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이 사망했다. 이란은 미군 기지에 미사일을 발사하며 보복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021년 JCPOA 복원을 시도했지만 협상은 결렬됐다. 2023년에는 오만과 카타르 중재로 양국이 수감자 맞교환을 단행했고 동결 자금 60억 달러(약 8조6000억 원)가 인도적 목적에 한해 이전됐다.
◇ 2025년 공습과 2026년 재충돌
트럼프 대통령은 재집권 후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에게 새 핵합의 체결을 요구했다. 2025년 이스라엘이 이란 핵시설을 공습했고, 미국도 포르도와 나탄즈 등 시설을 타격했다. 이란은 카타르 내 미군 기지에 보복 공격을 감행했다.
2026년에는 이란 통화 가치 붕괴를 계기로 반정부 시위가 확산됐고, 당국의 강경 진압으로 수천명이 사망하고 수만명이 체포됐다는 보고가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과 이스라엘이 다시 이란 내 목표물을 공습하며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다.
블룸버그는 현재의 군사적 충돌이 단순한 일회성 사건이 아니라 70여년간 누적된 불신과 적대의 연장선에 있다고 분석했다. 핵 문제와 제재, 중동 내 세력 균형이 얽히며 양국 관계는 여전히 구조적 갈등 상태에 놓여 있다는 평가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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