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 수입의 70%가 이 해협을 지난다… 한국 유조선 26척 '발 묶여'
휘발유 리터당 1,800원 돌파·원달러 환율 1,500원 터치… 서민 경제 직격탄
비축유 200일분 확보했지만 "물류 마비 길어지면 수출 생산 라인 멈춘다"
휘발유 리터당 1,800원 돌파·원달러 환율 1,500원 터치… 서민 경제 직격탄
비축유 200일분 확보했지만 "물류 마비 길어지면 수출 생산 라인 멈춘다"
이미지 확대보기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에 대한 보복 조치로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봉쇄되면서, 전 세계 석유 물동량의 약 20%가 한꺼번에 통로를 잃었다. CNBC 인도네시아가 5일(현지시각) 보도한 데 따르면, 이 여파는 산유국이 아닌 에너지 수입 의존국에 먼저, 그리고 가장 깊이 꽂혔다.
이미지 확대보기주유소 줄서기·환율 1500원… 공포가 수치가 되다
3월 4일 서울 시내 곳곳의 주유소는 평소와는 전혀 다른 풍경을 연출했다. 가격이 더 오르기 전에 연료를 채우려는 운전자들이 몰리면서 대기 행렬이 인근 도로를 점령했다. 서울에서 만난 한 직장인은 "내일이면 기름값이 얼마가 될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점심시간을 쪼개 달려왔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날 기준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은 리터당 1800원을 넘어서며 서민 가계를 압박했다.
금융시장의 충격은 더 컸다. 코스피(KOSPI)는 4일 12% 이상 폭락하며 거래소가 '사이드카'(일시 매매 중단 제도)를 발동했고, 이틀간 누적 하락 폭은 지수의 20%에 달했다. 이후 교전 공포가 일부 진정되면서 5일 10% 반등에 성공했으나, 시장의 불안감은 가시지 않고 있다. 외환시장에서는 원·달러 환율이 장중 한때 1500원 선을 넘었다가 1460원대로 내려앉았다. 이는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7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에너지 수입 비중이 높은 한국 경제 구조가 통화 가치에까지 얼마나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다.
'호르무즈 덫'… 한국 유조선 26척 발 묶여
세계 7위 원유 소비국인 한국은 에너지 수요의 9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한다. 그 가운데 원유 수입량의 70.7%, 액화천연가스(LNG) 수입량의 20.4%가 폭 50킬로미터도 채 안 되는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온다. 해협 봉쇄는 한국에 단순한 가격 변수가 아니라, 산업 전반의 혈관을 조이는 물리적 충격이다.
현재 이란 혁명수비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인해 해당 해역(페르시아만 및 오만만)에 우리 국적 선박 총 40척이 머물고 있으며, 이 중 해협 안쪽인 페르시아만을 빠져나오지 못한 선박이 26척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란의 공격으로 여러 나라의 유조선 10척이 불에 타는 사태가 벌어지면서 해상 보험료는 최대 7배까지 치솟았다. 보험료 급등과 운항 지연은 수출 기업의 물류비를 끌어올리고, 납기 준수를 위협한다. 자동차·스마트폰·화장품 등 한국 주력 수출품의 생산과 배송 체계가 동시에 흔들릴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는 이유다.
비축유 7개월분… 그러나 "물류 위기는 다른 문제"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정부는 2026년 3월 현재 약 1억 배럴의 전략 비축유를 보유하고 있다. 민간 재고까지 합산하면 200일에서 208일, 약 7개월분에 해당하는 양으로 국제에너지기구(IEA) 권고 기준인 90일을 두 배 이상 웃돈다. 에너지 전문가들은 국제 유가 배럴당 100달러를 1차 위기 국면으로, 120달러 선을 실질 경제 충격의 임계점으로 본다. 정부는 민간 재고가 급감할 경우 전국 9개 비축기지 물량을 즉각 방출할 준비를 마쳤다.
아프리카 희망봉 우회나 사우디 동부 유전과 홍해를 잇는 송유관, 아랍에미리트(UAE) 푸자이라 항 활용 등 대체 경로도 검토되고 있다. 그러나 희망봉을 우회할 경우 운송 기간이 최대 15일 길어지고 물류비와 해상 보험료가 동반 급등한다. 에너지 수급 자체보다 물류 지연이 수출 생산 라인을 멈춰 세울 수 있다는 점이 더 큰 위협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원유 비축량이 7개월분이라는 수치는 분명 안도감을 준다. 하지만 비축유는 '정제 후 사용'이 전제다. 제때 원유가 들어오지 않으면 정유 공장 가동률이 떨어지고, 이는 다시 산업용 연료 및 석유화학 원료 부족으로 이어진다. 단순 재고량보다 '공급 흐름의 지속성'이 핵심인 셈이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당시 유럽이 경험한 에너지 공급망 단절과 달리, 한국은 비축량 면에서 선제 대응 여력이 있다. 그러나 분쟁이 3개월을 넘길 경우 현재의 수비 라인이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은 지금부터 대비책을 촘촘히 짜야 할 이유로 충분하다.
퍼스·런던도 줄 섰다… 글로벌 연료 쟁탈전
한편 연료 사재기는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호주 서부 퍼스에서는 수천 명의 운전자가 밤새 주유소 앞에 늘어서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로저 쿡 서호주 주총리는 "공급은 충분하다"며 사재기 자제와 부당 가격 인상 정유사 조사 방침을 밝혔다. 영국 런던과 리버풀에서도 1시간 이상 대기 줄이 생겼다. 영국 당국은 "현재 주유소 가격이 지난해 초보다 오히려 낮다"며 운전자들에게 평소의 주유 습관을 유지할 것을 당부했다.
공포가 수요를 창출하고, 인위적 수요가 다시 공포를 키우는 악순환. 시장은 지금 실제 공급 부족이 아닌 '심리적 공급 부족'에도 반응하고 있다.
예고 없이 뒤집힌 시장… 지정학 리스크는 통계로 잡히지 않는다
이번 사태는 시장 예측이 얼마나 허술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미국 중심의 공급 증가와 글로벌 소비 감소로 하루 100만 배럴 수준의 공급 우위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골드만삭스·JP모건 등 월가 투자은행들도 유가 하락세를 기본 시나리오로 제시했다. 그러나 어떤 모델도 중동의 무력 충돌이라는 변수를 확률 높게 반영하지 못했다.
경제학자들은 이를 '지정학적 프리미엄'이라 부르지만, 실상은 숫자로 값을 매기기 어려운 위험이다. 호르무즈 해협이 하루 아침에 닫힌 지금, 한국이 지닌 에너지 안보 구조의 취약성은 더 이상 교과서 속 경고가 아니다.
앞으로의 분수령은 두 가지다. 이란이 해협 봉쇄를 협상 카드로 활용하는 단기 분쟁으로 마무리될 것인지, 아니면 중동 지역 전체로 전선이 확대되는 장기 충돌로 번질 것인지. 전자라면 한국 경제는 상처를 안은 채 회복 궤도를 밟을 수 있다. 그러나 후자라면 비축유 숫자와 무관하게 한국 수출 경제 전체가 새로운 시험대에 오를 것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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