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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BM 패키징 전쟁] 한미반도체 TCB 독주, 흔들리지 않는 이유…하이브리드 본딩 '비용의 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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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BM 패키징 전쟁] 한미반도체 TCB 독주, 흔들리지 않는 이유…하이브리드 본딩 '비용의 벽'

삼성전자·SK하이닉스, 차세대 공정 전환 '관망'…3~5배 비용·수율 리스크에 막혔다
엔비디아 가격 압박 속 한화세미텍·세메스 도전장, 한미반도체 와이드 TCB로 맞불
 '꿈의 패키징'으로 불리는 하이브리드 본딩(Hybrid Bonding)의 한계가 잇따라 드러나면서, 열압착 본딩(TCB) 시장을 70% 가까이 장악한 한미반도체(042700)의 독주체제가 더욱 견고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사진=한미반도체이미지 확대보기
'꿈의 패키징'으로 불리는 하이브리드 본딩(Hybrid Bonding)의 한계가 잇따라 드러나면서, 열압착 본딩(TCB) 시장을 70% 가까이 장악한 한미반도체(042700)의 독주체제가 더욱 견고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사진=한미반도체
인공지능(AI) 반도체 핵심 부품인 고대역폭메모리(HBM)를 둘러싼 패키징 장비 경쟁이 뜨겁지만, 정작 승부의 추는 '기술 혁신'보다 '경제성의 현실'을 향해 기울고 있다. '꿈의 패키징'으로 불리는 하이브리드 본딩(Hybrid Bonding)의 한계가 잇따라 드러나면서, 열압착 본딩(TCB) 시장을 70% 가까이 장악한 한미반도체(042700)의 독주체제가 더욱 견고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하이브리드 본딩, 기술의 꿈과 현실의 간극


하이브리드 본딩은 칩과 칩 사이를 연결하는 미세 돌기(마이크로 범프)를 없애고 구리(Cu)와 구리를 직접 접합하는 방식이다. 신호 전달 경로를 대폭 단축해 데이터 전송 속도를 높이고, 패키지 두께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어 HBM 다음 세대의 핵심 공정으로 주목받아 왔다.

그러나 디지타임스(Digitimes)가 지난 5(현지시간) 보도한 분석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비롯한 주요 메모리 제조사들이 하이브리드 본딩 전환을 사실상 보류하거나 속도를 늦추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

기술적 장벽이 첫 번째 걸림돌이다. 하이브리드 본딩은 웨이퍼 표면을 나노미터() 단위로 평탄하게 가공하는 화학기계적연마(CMP) 공정이 필수다. 문제는 본딩 과정에서 발생하는 열이 웨이퍼 표면을 미세하게 변형시킨다는 점이다. 표면이 수십 나노미터라도 튀어나오거나 함몰되면 칩 간 접합 불량으로 이어진다. 미세 먼지나 이물질 오염에도 극도로 취약해 생산 수율을 끌어내리는 구조적 약점을 안고 있다. 현재까지 업계에서 이 문제를 완벽히 해결한 사례는 보고되지 않았다.

디지타임스에 따르면, 주승환 인하대학교 기계공학과 교수는 "HBM 제조팀은 수년간 납(Solder) 기반 공정에 숙달되어 있다""마케팅 차원의 필요가 아니라면, CMP 기반 하이브리드 본딩으로 공정을 급히 바꿀 명분이 없다"고 밝혔다.

비용 충격, TCB 대비 최대 5배… 공장 자체를 갈아엎어야


경제성 문제는 더욱 치명적이다. 업계 추산에 따르면 하이브리드 본딩 공정 비용은 기존 TCB 패키징 대비 3배에서 최대 5배까지 높다. 단순히 장비를 교체하는 수준이 아니라, 공장 구조 자체를 허물고 다시 지어야 하는 사안이다.

기존 HBM 생산 라인은 TCB 장비의 규격과 무게에 맞춰 설계되어 있다. 하이브리드 본딩 장비는 크기와 진동·온도 조건이 달라 공장 천장 높이, 기둥 배치, 물류 동선을 전면 재설계해야 한다. 이처럼 재건축에 가까운 공사를 마치더라도, 초기 가동 단계에서는 오히려 생산 능력이 줄어든다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분석이다.

공급망 구조도 전환을 가로막는 요인이다. TSMC처럼 독점적 지위를 가진 파운드리와 달리, HBM 시장은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구도다. 제조 원가 상승분을 고객사에 고스란히 전가하기 어려운 환경인 것이다.
엔비디아(Nvidia) 등 대형 고객사들이 높아진 HBM 가격을 순순히 수용하면서까지 하이브리드 본딩 도입을 재촉할 가능성이 낮다는 관측이 시장 참여자들 사이에서 확산되고 있다. AI 서버 제조 원가를 낮추려는 엔비디아의 전략적 방향성과도 정면으로 충돌하는 시나리오인 탓이다.

한미반도체의 응수, 와이드 TCB'다음 세대'까지 선점


이 같은 시장 환경이 오히려 한미반도체의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 한미반도체는 HBM 패키징 장비 시장에서 약 70%의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으며, 하이브리드 본딩 전환 지연이 길어질수록 자사 TCB 장비의 수명 주기가 연장되는 구조다.

한미반도체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미래 수요에 선제 대응하는 '와이드(Wide) TCB' 장비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HBM의 적층 단수 증가가 물리적 한계에 다가서면서, 칩의 면적 자체를 넓혀 용량을 키우는 대면적 설계로 업계 방향이 이동하고 있다. 한미반도체의 와이드 TCB는 이런 추세에 맞춰 HBM5HBM6 세대까지 대응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기존 TCB 공정의 신뢰성과 수율 안정성을 유지하면서 대형 칩까지 처리할 수 있는 와이드 TCB, 하이브리드 본딩 상용화 이전의 과도기를 장악하겠다는 포석이다.

도전자들의 반격 → 한화세미텍 'SHB2 나노', 세메스도 추격


후발 주자들의 도전도 거세다. 한화세미텍은 접합 정밀도를 100㎚ 수준으로 끌어올린 2세대 하이브리드 본딩 장비 'SHB2 나노'를 개발 완료하고 상용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삼성전자 자회사인 세메스 역시 관련 장비 테스트를 병행하며 양산 준비를 진행 중이다.

특히 삼성전자는 HBM 시장에서 SK하이닉스에 빼앗긴 기술 주도권을 되찾기 위한 승부수로 하이브리드 본딩을 예상보다 공격적으로 도입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삼성이 자회사 세메스의 장비를 활용해 하이브리드 본딩을 조기 양산할 경우, 이는 단순한 공정 전환이 아니라 HBM 패키징 판도를 뒤흔드는 변수가 될 수 있다.

다만 한미반도체 역시 하이브리드 본딩 연구개발을 병행하고 있어, 기술 전환의 물꼬가 트이더라도 시장 대응력을 갖추고 있다는 평가다.

기술 혁신이 아닌 '경제성'이 승패를 가른다


HBM 차세대 패키징 시장의 흥망은 기술의 우열보다 비용과 수율이라는 두 축이 결정할 공산이 크다. 하이브리드 본딩이 '언젠가는 온다'는 것은 반도체 업계의 공통된 인식이지만, '언제'2026년인지 2028년인지에 따라 수조 원 규모의 장비 시장 판도가 뒤바뀐다.

당분간 메모리 제조사들은 검증된 TCB 방식을 유지하며 하이브리드 본딩의 기술 성숙을 기다리는 쪽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그 시간 동안, 한미반도체의 와이드 TCB는 시장의 브리지 역할을 맡을 전망이다. 차세대 패키징 경쟁의 진짜 승자는 가장 먼저 도착하는 기업이 아니라, 가장 오래 살아남는 기업이 될 것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