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이란, 하메네이 차남 무즈타바 최고지도자 전격 추대… '세습 정권'으로 미국·이스라엘 정면 도전

글로벌이코노믹

이란, 하메네이 차남 무즈타바 최고지도자 전격 추대… '세습 정권'으로 미국·이스라엘 정면 도전

알리 하메네이 피살 열흘 만에 전문가 회의 승계 완료, 혁명수비대(IRGC) 즉각 충성 맹세… 47년 이슬람 혁명 체제 '왕조화' 논란 점화
트럼프 "경량급, 인정 못 해" 직격탄에도 정면 돌파, 중동 전문가 "아버지 시대가 그리울 것" 경고
미국과 이스라엘의 합동 타격으로 이란의 최고 권력자가 제거된 지 열흘, 테헤란이 내놓은 답은 타협이 아닌 '세습'이었다. 이란 전문가 회의(Assembly of Experts)는 8일(현지시간) 알리 하메네이의 차남 무즈타바 하메네이(56)를 제3대 최고지도자로 공식 추대했다. 이미지=제미나이3이미지 확대보기
미국과 이스라엘의 합동 타격으로 이란의 최고 권력자가 제거된 지 열흘, 테헤란이 내놓은 답은 타협이 아닌 '세습'이었다. 이란 전문가 회의(Assembly of Experts)는 8일(현지시간) 알리 하메네이의 차남 무즈타바 하메네이(56)를 제3대 최고지도자로 공식 추대했다. 이미지=제미나이3
미국과 이스라엘의 합동 타격으로 이란의 최고 권력자가 제거된 지 열흘, 테헤란이 내놓은 답은 타협이 아닌 '세습'이었다. 이란 전문가 회의(Assembly of Experts)8(현지시간) 알리 하메네이의 차남 무즈타바 하메네이(56)를 제3대 최고지도자로 공식 추대했다.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47년 만에 처음으로 아버지에서 아들로 최고 권력이 이전된 것이다.

이번 결정은 지난달 28일 미·이스라엘 공습으로 86세의 알리 하메네이가 테헤란 최고지도자 집무실 단지에서 사망한 후, 정권의 핵심 수뇌부가 동시에 궤멸된 상황에서 단행됐다.

8일 악시오스(Axios) 보도에 따르면 알리 샴카니 안보 고문, 모하마드 팍푸르 혁명수비대(IRGC) 지상군 사령관, 아지즈 나시르자데 국방장관이 이날 공습으로 함께 목숨을 잃었다. 서방의 '참수 작전'이 성공했음에도 이란 지도부가 강경파 세습이라는 정면 돌파를 택한 것은, 중동 정세에 새로운 변곡점을 예고하는 신호탄이다.

혁명수비대가 밀어올린 '그림자 실권자', 성직 자격 논란은 여전


무즈타바 하메네이는 1969년 이란 북동부 마슈하드(Mashhad)에서 태어났다. 시아파 성지인 이 도시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그는 1979년 혁명 이후 가족과 함께 테헤란으로 이주했다. 18세가 되던 1987년 혁명수비대에 자원입대해 이란-이라크 전쟁의 최전선인 '하비브 이븐 마자히르 대대(27 모하마드 라술룰라 사단 소속)'에서 복무했다. 유로뉴스(Euronews)에 따르면 카셈 솔레이마니, 호세인 타에브 등 이 부대 출신 인사들이 이후 이란 정보·보안 기구의 핵심 요직을 장악했으며, 이 인맥이 무즈타바의 가장 강력한 권력 기반으로 작용하고 있다.

2008년 공개된 미 국무부 외교 전문(위키리크스)은 공식 직함 없이도 아버지의 최고지도자 집무실(Beyt) 안에서 30년 가까이 '문지기' 역할을 수행해 온 무즈타바를 "권력 뒤의 실체"라고 규정했다. NBC뉴스에 따르면 혁명수비대는 선출 직후 국영 방송을 통해 무즈타바를 "완전한 자격을 갖춘 법학자이자 젊은 사상가"로 칭하며 "전적으로 명령에 따를 준비가 되어 있다"고 충성을 맹세했다.

그러나 신학적 정통성은 약점으로 꼽힌다. 무즈타바는 콤(Qom) 신학교에서 수학한 '호자톨에슬람(hojjatoleslam·중급 성직자)'에 머물러 있어, 최고지도자에게 요구되는 아야톨라(ayatollah) 지위에 미치지 못한다. 알자지라(Al Jazeera)는 아버지 알리 하메네이 역시 1989년 취임 당시 동일한 문제에 직면했고, 당시 법률 개정으로 자격 요건을 완화한 전례가 있다고 전하며 "유사한 타협이 다시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 외교관계협의회(CFR)는 알리 하메네이가 생전에 행정 경험과 신학적 자격이 더 뛰어난 후보군을 검토했으며, 무즈타바는 그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경량급" 일축… 워싱턴-테헤란 정면충돌 서막


무즈타바의 등장에 워싱턴은 즉각 반발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5일 악시오스 인터뷰에서 "하메네이의 아들은 경량급"이라 깎아내리며 "내가 이 임명에 관여해야 한다. 하메네이의 아들은 나에게 수용 불가"라고 잘라 말했다. 이어 ABC뉴스 인터뷰에서도 "우리의 승인 없이 선출된 지도자는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라며,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축출 사례를 들어 직접 개입 가능성까지 시사했다. 이스라엘군(IDF) 역시 같은 날 "하메네이의 후임자는 누구든 공격 대상이 될 것"이라는 경고를 발표했다.

미국 재무부는 이미 2019년 행정명령 13867호에 따라 무즈타바를 제재 대상에 올렸다. 당시 재무부는 그가 "선출되거나 임명된 공직 없이도 아버지의 불안정화 지역 야망과 억압적 국내 목표를 추진하기 위해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적시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무즈타바가 자신 명의가 아닌 핵심 측근들의 이름으로 런던, 빈 등 유럽 주요 도시에 부동산과 투자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으며, 이란 내에서도 측근 알리 안사리가 운영하던 아얀데 은행의 부실 파산이 인플레이션을 가중시킨 정황이 무즈타바의 비자금 네트워크와 연결된다는 분석이 나온다.

"아버지 시대가 그리울 것"… 철권통치와 내부 탄압 우려 증폭


중동 전문가들은 무즈타바 체제의 이란이 이전보다 훨씬 강경하고 폐쇄적인 길을 걸을 것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한다. 중동연구소(MEI)의 알렉스 바탄카 선임연구원은 타임스오브이스라엘 보도에서 "이 규모의 작전을 수행하고 그만큼의 위험을 감수한 끝에 86세 노인을 제거했더니, 그보다 더 강경한 아들이 그 자리를 대체한 셈"이라며 "미국에게는 큰 굴욕"이라고 평가했다.

같은 보도에서 테헤란 사정에 정통한 한 역내 고위 관계자는 로이터를 통해 "세계는 알리 하메네이 시대를 그리워하게 될 것"이라며 "무즈타바는 철권을 보여줄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전직 미국 외교관이자 이란 전문가 앨런 에어는 "무즈타바는 아버지보다 더 강경하며, 혁명수비대가 가장 원했던 인물"이라면서 "그에게는 복수해야 할 것들이 산적해 있다"고 진단했다.

무즈타바의 과거 행적이 이러한 우려를 뒷받침한다. 미 재무부와 외교관계협의회(CFR)에 따르면 그는 2005년 강경 보수파 마흐무드 아마디네자드의 대선 당선을 배후에서 설계했고, 2009년 부정 선거 항의 시위(녹색운동) 당시에는 혁명수비대를 동원한 유혈 진압을 직접 감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스라엘 공습으로 아내 자흐라 하다드 아델과 가족을 잃은 무즈타바가 개인적 비극까지 정치적 동력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이란 내 반체제 인사와 개혁파에 대한 탄압이 한층 거세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한국에 미치는 영향, 원유 가격 급등과 중동 경제 불확실성


무즈타바 체제의 출범은 한국 경제에도 즉각적 충격파를 던진다.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이후 국제유가는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했으며(NBC뉴스), 이란산 원유 수출 차질과 페르시아만 해상 운송 리스크가 동시에 부각되고 있다. 한국은 중동 원유 의존도가 높은 만큼, 유가 상승이 물가·무역수지·환율에 미치는 삼중 압박이 불가피하다.

에너지 업계 관계자는 "이란 정세가 장기 불안으로 치달을 경우, 한국 정유·석유화학 업종 원료 조달 비용이 구조적으로 상승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한, 이란 핵 프로그램을 둘러싼 긴장이 재점화되면 한반도 비핵화 외교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동의 시계가 '세습 강경파' 앞에서 돌아간다


폴 세일럼(Paul Salem) 중동연구소(MEI) 선임연구원은 로이터 보도에서 "지금 등장하는 인물 중 미국과 타협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이것은 가장 강경한 시기에 내려진 가장 강경한 선택"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무즈타바 체제의 이란을 1991년 이후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 2012년 이후 바샤르 알아사드의 시리아에 비유하며 "국제 고립 속에서도 버텼지만 결국 통제력을 잃어간 정권들의 궤적"을 경고했다.

1979년 혁명으로 팔라비 왕조를 무너뜨린 이슬람 공화국이 47년 만에 자체적으로 '왕조적 세습'이라는 모순을 안게 된 역사적 아이러니 앞에서, 이란이 선택한 길은 결국 외부의 압력에 대한 저항의 극대화였다. 아버지의 죽음이 '순교', 아들의 등극이 '결사 항전'으로 이어지는 구도에서 외교적 타협의 여지는 사실상 사라졌다. 전쟁의 포연이 채 걷히지 않은 중동에서, 이란이라는 변수가 어떤 연쇄 반응을 촉발할지, 그것이 핵 문제든 유가 폭등이든 역내 대리전 확산이든 세계의 시계는 다시 '이란 시간'에 맞춰 돌아가기 시작했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