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타리오·서스캐처원·뉴브런즈윅, 캔두·SMR·AP1000 놓고 각자도생
"동일 모델 반복 건설 안 하면 경제성 확보 불가능" 전문가들 일제히 경고
트럼프發 경제 민족주의에 자국 기술 vs 미국 기술 갈등 격화… 한국이 착안할 점은
"동일 모델 반복 건설 안 하면 경제성 확보 불가능" 전문가들 일제히 경고
트럼프發 경제 민족주의에 자국 기술 vs 미국 기술 갈등 격화… 한국이 착안할 점은
이미지 확대보기글로브앤메일(The Globe and Mail)의 지난 9일(현지시각) 보도에 따르면, 캐나다 주요 주정부와 전력사들이 원자로 기종 선정을 두고 합의점을 찾지 못하면서 이른바 '함대형 배치(Fleet-based deployment)' 전략이 좌초 위기에 몰리고 있다. 함대형 배치란 동일한 설계의 원자로를 반복 건설해 숙련도를 높이고 단가를 낮추는 전략으로, 캐나다 원자력 업계에서는 일종의 '교리'처럼 통한다. 인구 4000만 명 수준의 캐나다가 여러 기종을 동시에 운영할 인적·물적 여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세 모델이 벌이는 주도권 다툼
현재 캐나다 시장에서 경합을 벌이는 원자로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캔두(Candu) 모나크(Monark)다. 캐나다가 독자 개발한 중수로 기술의 차세대 버전으로, 1000MW급 대형 원자로다. 설계를 맡은 애트킨스리얼리스(AtkinsRéalis)가 10여 년 전 캐나다 원자력공사(AECL)의 원자로 사업을 인수해 개발을 이어가고 있다. 캐나다산 부품 활용도가 높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나, 캐나다 원자력안전위원회(CNSC)의 설계 인허가 절차가 아직 시작조차 되지 않았다는 점이 걸림돌이다.
둘째, BWRX-300이다. 미국 GE 베르노바 히타치(GE Vernova Hitachi Nuclear Energy)가 개발한 300MW급 소형모듈원자로(SMR)로, 현재 소형 모델 중 사실상 유일한 후보다. 온타리오 전력공사(OPG)가 달링턴 부지에 G7 최초의 SMR을 짓겠다고 확정한 상태이나, 다른 주에서 확산되지는 못하고 있다.
셋째, AP1000이다. 미국 웨스팅하우스(Westinghouse)의 1100MW급 대형 가압경수로로, 중국에서 4기가 가동 중이고 미국에서도 2기가 건설을 마쳤다. 기술적 완성도 면에서는 가장 앞서 있으나, 미국 보그틀(Vogtle) 원전 건설 당시 당초 예산 대비 막대한 비용 초과와 수년간의 공기 지연을 겪은 전력(前歷)이 발목을 잡고 있다.
"최대 3종으로 압축해야"… 전문가들의 한목소리
토론토 소재 에너지·기후정책 싱크탱크 클린 프로스페리티(Clean Prosperity)는 지난 2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이 문제의 핵심을 정면으로 겨냥했다. 보고서는 "캐나다가 원전 확대에 성공하려면 대형(1000MW 이상), 소형(300MW급), 마이크로(20MW 미만) 등 체급별로 최대 3개 모델 이내로 기종을 통일하는 것이 전제 조건"이라고 밝혔다.
브렌단 프랭크(Brendan Frank) 정책전략 국장은 글로브앤메일에 "첫 번째 원자로 건설 비용은 천문학적으로 비싸다"며 "동일한 설계를 되풀이해서 지으면서 학습 효과를 축적해야만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시장 원리에 따르면, 하나의 설계가 반복될수록 건설 노동자의 숙련도가 올라가고 부품 공급망이 최적화돼 비용이 줄어드는 구조다.
지역 이해관계에 발목 잡힌 기종 통일
문제는 각 주정부가 처한 상황과 이해관계가 판이하다는 데 있다.
온타리오주는 캐나다 원전의 심장부다. 전력사 브루스 파워(Bruce Power)가 '브루스 C' 부지에, OPG가 '웨슬리빌(Wesleyville)' 부지에 각각 대형 원전을 추진 중이다. 웨슬리빌의 경우 완공되면 최대 10,000MW 규모로, 현재 세계 최대인 브루스 원전을 넘어설 수 있다. 스티븐 레체(Stephen Lecce) 온타리오주 에너지광업부 장관은 글로브앤메일과의 인터뷰에서 "'포스트 트럼프' 시대에 캐나다의 지식재산권과 공급망을 보호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며 사실상 자국 기술인 캔두를 밀어야 한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반면 서스캐처원주의 셈법은 다르다. 이 주에는 세계 최대급 우라늄 생산 기업인 카메코(Cameco) 본사가 있다. 카메코는 2023년 11월 브룩필드(Brookfield)와 공동으로 웨스팅하우스를 인수하면서 49%의 지분을 보유하게 됐다. 웨스팅하우스가 바로 AP1000의 설계사다. 서스캐처원주 입장에서는 AP1000 또는 웨스팅하우스의 소형 모델인 AP300을 선택하는 것이 지역 경제에 직접적인 이익을 가져다주는 셈이다. 지난 1월 서스캐처원주 정부는 대형 원자로 도입을 위한 타당성 평가에 공식 착수했다고 발표했다.
뉴브런즈윅주는 더 복잡한 처지에 놓여 있다. 당초 SMR 벤처 기업인 아크 클린 테크놀로지(ARC Clean Technology)와 몰텍스 에너지(Moltex Energy)의 차세대 모델을 선택했으나, 두 기업 모두 자금 조달에 난항을 겪으면서 사업이 교착 상태에 빠졌다. 로리 클라크(Lori Clark) 뉴브런즈윅 전력공사(NB Power) 사장은 글로브앤메일에 "결국 온타리오주의 결정을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라며 "실패 위험이 큰 '세계 최초' 기술보다는 이미 검증된 모델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고 밝혔다.
트럼프 시대의 경제 민족주의, 원전 선택까지 흔든다
기종 선정이 지연되는 배경에는 미국과의 역학 관계도 깔려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압박과 경제적 통합 압력에 직면한 캐나다 내부에서는 미국산 기술에 대한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AP1000이나 BWRX-300은 모두 미국 기업이 설계한 원자로다. 특히 BWRX-300의 핵연료는 미국 뉴멕시코주 시설에서 농축해야 하는데, 이는 유사시 미국이 지렛대로 활용할 수 있는 취약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캐나다 맥마스터대 공학물리학과의 제레미 휘틀록(Jeremy Whitlock) 겸임교수는 글로브앤메일에 보낸 이메일에서 "현재 캐나다에는 여러 종류의 원전 기술을 동시에 지원할 산업 기반과 숙련 노동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며 "기술 노선을 조속히 통일하지 않으면 원전 생태계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휘틀록 교수는 국제원자력기구(IAEA) 안전조치국 선임기술고문을 역임한 원자력 비확산 분야의 권위자다.
한국에 던지는 교훈, '기술 통일'과 '규모의 경제'
캐나다의 난맥상은 원전 수출국의 위상을 다시 세우려는 한국에도 무거운 울림을 준다. 한국은 지난해 체코 두코바니 원전 2기 수출 계약(약 26조 원 규모)을 성사시키며 16년 만에 원전 수출의 물꼬를 텄다. 현재 폴란드, 사우디아라비아 등으로의 추가 수출도 타진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역시 대형 원전(APR1000·APR1400)과 혁신형 소형모듈원자로(i-SMR)를 동시에 추진하면서, 한정된 인력과 공급망 역량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의 과제를 안고 있다. 캐나다 사례가 보여주듯, 기종이 분산되면 학습 효과가 희석되고 건설 단가가 올라간다. 이는 곧 전기료 상승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에너지 안보가 국가 생존과 직결되는 시대다. 원전 기술의 자주성이라는 자존심과 경제적 실리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는 일은 캐나다만의 숙제가 아니다. 주정부 간 조율 실패가 건설 비용을 끌어올리고 결국 국민 부담으로 전가될 수 있다는 캐나다의 경고는, 원전 르네상스의 성패가 기술 선택의 일관성에 달려 있음을 환기시킨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