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램 10% 증설에 150조 원"… 중동 전쟁, '칩플레이션' 끝을 2027년으로 밀었다
이란 공습으로 헬륨 생산 거점 카타르 타격… 삼성·SK하이닉스 시총 200조 원 증발
AI 메모리 가격 낙관·중립·비관 3대 시나리오… 수급 균형, 빨라야 내년 하반기
이란 공습으로 헬륨 생산 거점 카타르 타격… 삼성·SK하이닉스 시총 200조 원 증발
AI 메모리 가격 낙관·중립·비관 3대 시나리오… 수급 균형, 빨라야 내년 하반기
이미지 확대보기이란·이스라엘 전쟁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서, 인공지능(AI) 반도체 수요 폭발로 이미 임계점에 달한 메모리 가격에 중동발 에너지·원자재 충격이 겹쳤다. 전쟁 발발 이후 국제 유가는 배럴당 100달러(약 14만9500원)를 순간 돌파했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합산 시가총액은 200조 원 이상 증발했다.
카타르의 헬륨 생산 거점이 이란 드론 공격을 받고, 한국이 97.5%를 이스라엘에서 들여오는 브롬 공급망이 흔들리면서, 반도체 제조 원가는 구조적 압박에 직면했다. 글로벌 빅테크 4사가 올해 AI 인프라에 쏟아붓기로 한 6500억 달러(약 970조 원)의 투자 계획도 고금리 장기화 우려 속에 흔들리고 있다. 가격 상방 압력과 수요 파괴 공포가 동시에 커지는 가운데, 시장은 세 갈래 길 앞에 섰다.
이미지 확대보기"반도체 제조의 혈관"이 전쟁터로… 헬륨·브롬 비상
중동이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일반의 예상을 훨씬 웃돈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 데이터를 보면 카타르 단독으로 세계 헬륨 생산량의 3분의 1 이상을 공급한다. 헬륨은 극자외선(EUV) 리소그래피 공정과 설비 냉각에 쓰이는 소재로 현실적인 대체재가 없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이란의 드론 공격이 카타르 라스라판 산업단지를 강타해 헬륨 생산에 차질이 생겼다.
미국 반도체산업협회(SIA)는 이미 2023년 헬륨 공급이 끊기면 반도체 제조 산업 전체에 충격파가 닥칠 것이라고 공식 경고했다. 헬륨 전문 컨설팅사 콘블루스 헬륨 컨설팅은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면 세계 헬륨 공급의 4분의 1 이상이 시장에서 사라질 수 있다고 추산한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중동 의존 핵심 소재는 모두 14종이다. 이 가운데 D램·낸드플래시 생산의 폴리실리콘 식각 공정에 쓰이는 고순도 브롬화수소(HBr)는 세계 생산량의 약 3분의 2가 이스라엘과 요르단에 집중되어 있다. 한국의 이스라엘산 브롬 의존도는 97.5%에 이른다. 대체 공급처를 찾더라도 품질 인증에만 수개월이 걸려, 분쟁이 장기화하면 공장 라인 가동이 멈추는 최악의 상황도 배제하기 어렵다.
이미 공급 교란은 숫자로 드러나고 있다. CNBC가 지난 10일(현지시각) 보도한 내용을 보면, AI 서버용 고대역폭메모리(HBM)로 생산 능력이 집중되면서 일반 PC용 DDR5 가격은 몇 달 새 400%나 뛰었다. 미국 소매시장에서는 32기가바이트(GB) DDR5 키트가 지난해 11월보다 33% 이상 오른 360달러(약 53만7400원)에 거래된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의 황민성 연구위원은 지난 12일 웨비나에서 "올 1분기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전 분기 대비 최대 180% 뛰었다"며 "서버용 D램과 HBM이 전체 D램 매출의 60%를 차지할 정도로 빅테크의 공격적인 AI 투자가 가격 상승의 핵심 동력"이라고 진단했다. 황 위원은 특히 "D램 생산 능력을 10% 늘리기 위해서는 약 150조 원 규모의 설비 투자가 필요하다"며 단기간 공급 확대의 한계를 지적했다.
삼성전자 이원진 글로벌 마케팅 총괄 사장도 지난 1월 7일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2026년에는 반도체 공급과 관련한 문제가 발생할 것이며, 이는 삼성전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기업에 영향을 미칠 산업 전반의 현실"이라고 밝혔다.
상승이냐 붕괴냐… 동전의 양면
시장에는 두 힘이 팽팽히 맞선다.
상승 쪽의 핵심 논거는 구조적 원가 압박이다. 대만 TSMC는 대만 전체 전력 소비량의 9%를 혼자 쓴다. LNG 가격이 오르면 웨이퍼 제조 원가가 높아지고, 이 비용은 결국 메모리 가격에 얹힌다. 미국 리서치 회사 가트너는 2026년 D램 가격이 47% 추가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업계에서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들이 에너지 원가 상승분을 납품가에 전가할 가격 결정력을 갖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반대로 하방 압력도 무시할 수 없다. 로이터 등에 따르면 알파벳, 아마존,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4대 빅테크는 올해 AI 인프라 구축에만 6500억 달러(약 970조 원)를 투입할 계획이다. 그런데 중동 분쟁으로 글로벌 인플레이션이 다시 고개를 들고 고금리 기조가 굳어지면, 특수목적법인(SPV)이나 민간신용(사모신용)을 통한 자금 조달이 이자 부담에 눌려 차질을 빚는다. 투자 규모를 줄이는 순간 HBM 수요도 함께 꺾힌다.
씨티그룹은 최근 보고서에서 "2026년 하반기부터 AI 인프라 구축 자금 조달과 관련한 부채 우려가 커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반도체 원가 상승이 스마트폰, PC, 전기차 가격을 연쇄적으로 끌어올리면, 일반 소비자의 지갑이 닫히고 AI 서비스 확장 동력도 함께 사그라든다.
세 갈래 길… 전쟁 길이가 종착지를 결정한다
먼저 낙관적 시나리오다. 조기 휴전, IT 생태계 선순환, 가격 안정 진입구조다.
트럼프 대통령이 조기 종전을 시사한 가운데, 수 주 안에 휴전이 성사되면 헬륨·브롬 공급망은 큰 영구 손상 없이 복구될 수 있다. 유가가 배럴당 80달러(약 11만9400원)대로 안정되면 빅테크의 970조 원 투자 계획도 속도를 유지한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확보한 HBM 장기 공급 계약이 단기 수요를 방어하고, 올해 하반기부터 DDR5를 비롯한 일반 D램 가격이 점진적으로 안정된다. 이 경우 증권가가 전망하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합산 연간 실적 약 5510억 달러(약 822조 원)도 현실적인 목표로 남는다.
두 번째는 중립적 시나리오다. 분쟁이 수개월 동안 지속되고, 제품별 가격 양극화가 심화되는 국면이다.
전쟁이 3~6개월 이상 이어지면 헬륨 대체 공급처(미국·캐나다) 확보에만 수개월의 인증 기간이 필요하다. 브롬 부족은 D램 생산 수율을 압박하고, LNG 가격 상승은 TSMC 등의 웨이퍼 제조 원가를 구조적으로 끌어올린다. 유가는 배럴당 80~90달러(약 11만9400원~13만4300원) 안팎에서 상단을 형성한다. BofA는 2026년 HBM 시장 규모를 전년보다 58% 성장한 546억 달러(약 81조2900억 원)로 추산해 AI 서버용 HBM 가격은 계속 오르는 반면, 소비자용 D램은 수요 둔화가 맞물려 제품군 사이 가격 양극화가 깊어진다. DDR5의 경우 현재 수준에서 20~40% 추가 상승이 점쳐진다.
끝으로 비관적 시나리오다. 호르무즈 봉쇄가 장기화로 AI 투자 거품이 꺼지는 국면이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장기화하는 최악의 수순이다. 세계 헬륨 공급의 4분의 1 이상이 시장에서 사라지고, 유가는 배럴당 120달러(약 17만9000원)를 웃돈다. AI 데이터센터 운용 비용이 급등하면서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등 대형 데이터센터 운영사들이 자본 조달 압박에 못 이겨 970조 원 규모의 투자를 대거 보류하거나 줄인다. 메모리 가격은 단기 품귀로 일시 폭등하지만, 수요 절벽이 뒤따르면서 고물가 속 수요 침체라는 전형적인 스태그플레이션(물가 상승 속 경기침체) 공포와 함께 반도체 시장이 급격히 냉각된다. 월가 일각에서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대 수요 절벽이 올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빨라야 내년 하반기"… 수급 균형 기약 없다
한편 시장 참여자들 사이에서는 "2026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더 이상 수요와 공급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대만 에이데이타(ADATA)의 천리바이 회장은 지난해 10월 기자간담회에서 "D램, 낸드플래시, HDD까지 4대 주요 메모리 제품이 동시에 부족한 건 30년 업력 사상 처음"이라고 말했다.
가격 안정 시점도 불투명하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의 황민성 연구위원은 지난 12일 "의미 있는 공급 물량 증가가 나타나 시장 숨통이 트이려면 2027년 하반기는 돼야 한다"고 밝혔다. 단기적으로는 호르무즈 해협을 비롯한 에너지 물류망의 향방이, 중장기적으로는 970조 원을 건 빅테크 기업들이 AI 투자 수익성을 입증할 수 있느냐가 AI 반도체와 메모리 가격의 종착지를 가를 것이라는 분석이 금융권 안팎에서 나온다.
현대차증권의 노근창 연구원은 지난 1월 현대차증권 리포트에서 "HBM 중심의 고수익 구조에 서버용 D램과 모바일 D램 가격 상승이 더해지며 SK하이닉스의 매출과 수익성이 동반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면서도 "범용 D램 가격 강세가 꺾일 경우 HBM 가격 변동성에 대한 부담이 고스란히 드러날 수 있다"고 짚었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메모리 가격은 짧게 치솟다 길게 무너지는 역설적 경로를 밟을 수 있다. 2026년 반도체 시장의 온도계는 이제 팹(fab) 안이 아니라 호르무즈 해협 위에 놓여 있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