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HBM 1위의 함정… 엔비디아가 숨겨온 ‘다음 설계’, 삼성·SK 지금이 마지막 기회다

글로벌이코노믹

HBM 1위의 함정… 엔비디아가 숨겨온 ‘다음 설계’, 삼성·SK 지금이 마지막 기회다

"우리가 시키는 대로만 찍어라" 커스텀 HBM이 설계한 을(乙)의 늪과 빅테크의 무서운 결단
TSMC가 쌓은 거대 성벽 뒤의 비밀... 1위에 취해 고립되는 한국 메모리 패권의 치명적 사각지대
삼성전자는 최근 국내에서 열린 JP모건 투자자 컨퍼런스에서 2나노미터(nm) 파운드리 공정 수율의 조기 안정화와 고대역폭메모리(HBM) 매출 3배 확대, 낸드플래시 분기 연속 100% 가격 인상이라는 세 축의 반격 전략을 공개했다. 사진=삼성전자이미지 확대보기
삼성전자는 최근 국내에서 열린 JP모건 투자자 컨퍼런스에서 2나노미터(nm) 파운드리 공정 수율의 조기 안정화와 고대역폭메모리(HBM) 매출 3배 확대, 낸드플래시 분기 연속 100% 가격 인상이라는 세 축의 반격 전략을 공개했다. 사진=삼성전자


한국이 HBM(고대역폭 메모리) 시장에서 독주하고 있다는 소식에 취해 있을 때, 글로벌 반도체 거물들은 이미 판을 뒤집을 독약을 준비하고 있다. 기술 격차만 벌리면 이길 수 있다는 믿음은 어쩌면 우리의 착각일지도 모른다. 세계 반도체 전략가들이 지목한, 한국의 메모리 패권을 단숨에 무너뜨릴 수 있는 가장 치명적인 변수 3가지를 긴급 분석했다.

커스텀 HBM의 역습, 갑을 관계가 완전히 뒤바뀐다


국내 반도체와 인공지능 업계 전문가들에 따르면 지금까지 HBM은 표준 규격에 맞춰 잘 만들기만 하면 팔리는 제품이었다. 하지만 HBM4 이후부터는 고객사가 설계 단계부터 깊숙이 개입하는 커스텀 HBM 시대가 열린다. 엔비디아나 애플 같은 빅테크들이 "우리가 설계한 대로만 만들어라"고 요구하는 순간, 삼성과 SK는 기술 주도권을 잃고 고객사의 입맛에 맞춰 찍어내는 파운드리 하청 업체로 전락할 위험이 크다. 독자적인 기술 로드맵이 무력화되는 것, 이것이 전략가들이 꼽는 첫 번째 공포다.

빅테크의 탈 메모리 선언, 부품 없는 컴퓨팅이 온다

두 번째 변수는 구글, 아마존, 메타 등 거대 플랫폼 기업들의 자체 칩 개발 열풍이다. 이들은 기존의 메모리 구조가 너무 많은 전력을 잡아먹는다는 점에 분노하고 있다. 만약 이들이 메모리 사용량을 획기적으로 줄이거나, 아예 메모리 병목 현상을 원천 차단하는 새로운 방식의 AI 칩(ASIC) 최적화에 성공한다면 어떻게 될까? 한국이 목숨 걸고 지키는 메모리 시장 자체가 전통적인 구식 기술이 되어 수요가 급감하는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수 있다.

대만의 거대 동맹, TSMC 중심의 메모리-로직 생태계 통합


가장 실질적이고 위협적인 변수는 TSMC를 중심으로 한 대만의 생태계 장악이다. TSMC는 전 세계 설계 자산(IP)과 패키징 기술을 한데 묶어 원 스톱 생태계를 구축했다. 여기서 한국의 메모리만 쏙 빼놓거나, 마이크론 등 경쟁사와 연합하여 한국산 HBM을 배제하는 전략을 펼친다면 한국은 아무리 좋은 제품을 만들어도 팔 곳이 없는 외로운 섬이 된다. 기술보다 무서운 것이 바로 이 견고한 카르텔의 힘이다.

메모리 기업에서 AI 컴퓨팅 기업으로 진화하라


결국 HBM 이후의 전쟁은 8단, 12단, 16단처럼 누가 더 안정적으로 높이 쌓느냐의 싸움이 아니다. 누가 더 영리하게 생태계를 지배하느냐의 싸움이다. 요컨대 반도체의 패러다임이 제조에서 설계 및 시스템으로 이동했다는 것이다. 전략가들이 한국이 단순히 메모리를 잘 만드는 공장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조언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스스로 칩을 설계하고, 패키징 주도권을 가져오며, 소프트웨어 규격까지 제안할 수 있는 AI 컴퓨팅 기업으로 거듭나야만 위에서 언급한 3가지 변수를 무력화할 수 있다. 지금의 1위에 취해 변화의 타이밍을 놓친다면, 훗날 2026년은 한국 반도체의 마지막 전성기로 기록될지도 모른다.

이교관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yijion@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