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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중동발 에너지 위기에 ‘러시아산 석유’ 확보 전쟁… 美 한시적 제재 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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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중동발 에너지 위기에 ‘러시아산 석유’ 확보 전쟁… 美 한시적 제재 해제

인도·동남아, 중동 공급 차질 메우려 러시아산 원유로 급선회
미국, 해상 표류 물량에 30일 면제권 부여… 우랄산 가격 브렌트유 수준 육박
러시아 국적 유조선 블라디미르 모노마흐가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보스포루스 해협을 통과하고 있다. 아시아 국가들은 미국이 일시적으로 러시아 석유 거래 금지를 해제한 후 러시아 석유 확보를 서두르고 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러시아 국적 유조선 블라디미르 모노마흐가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보스포루스 해협을 통과하고 있다. 아시아 국가들은 미국이 일시적으로 러시아 석유 거래 금지를 해제한 후 러시아 석유 확보를 서두르고 있다. 사진=로이터
이란 전쟁으로 중동의 석유 공급망이 마비되자 아시아 국가들이 그간 꺼려왔던 러시아산 석유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미국이 최근 해상에 묶여 있던 러시아산 원유와 석유 제품에 대해 30일간 한시적으로 제재를 면제하면서, 에너지 부족과 가격 폭등에 직면한 아시아 정부들이 이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는 모양새다.

18일(현지시각) 닛케이 아시아에 따르면, 인도와 중국은 물론 태국, 필리핀, 인도네시아까지 러시아산 원유 수입 검토에 착수했다.

◇ "바다 위에 뜬 1억3000만 배럴을 잡아라"… 아시아의 질주


상품 정보업체 케이플러(Kpler)에 따르면, 현재 약 1억3000만 배럴의 러시아산 원유가 해상에 체류 중이며, 이 중 5400만 배럴이 수에즈 운하와 싱가포르 사이 요충지에 위치해 있다.

지난 13일 미국은 해상에 좌초된 제재 대상 러시아 석유 제품의 거래를 30일간 허용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중동 분쟁으로 인한 글로벌 에너지 쇼크를 완화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행정부와의 관세 협상 이후 러시아산 구매를 줄였던 인도는 즉각 수입량을 하루 180만 배럴로 두 배 늘렸다.

시노펙(Sinopec)과 페트로차이나(PetroChina) 등 중국 국영 석유사들도 11월 이후 처음으로 러시아산 원유 추가 구매를 위해 공급업체들과 접촉하기 시작했다.

◇ 동남아 우방국들도 "생존이 우선"… 제재보다 공급 보장


그동안 서방의 제재 기조에 발맞춰 러시아산을 멀리했던 동남아시아의 미국 조약 동맹국들도 입장을 바꾸고 있다.
필리핀 국영석유공사는 러시아 공급업체와 직접 접촉을 시작했으며, 태국 역시 에너지 부족을 막기 위해 러시아를 포함한 브라질, 나이지리아 등 다각적인 공급선 확보에 나섰다.

바힐 라하다리아 인도네시아 에너지부 장관은 "공급 보장이 최우선"이라며 모든 국가로부터의 수입 가능성을 열어두겠다고 공언했다.

수요가 몰리면서 러시아 수출 기준 유종인 우랄산(Urals) 가격은 2월 말 배럴당 58달러 선에서 최근 90달러를 돌파, 국제 기준인 브렌트유 가격에 육박하고 있다.

◇ "완벽한 대체제는 아냐"… 물류 및 제재 불확실성 여전


전문가들은 러시아산 원유 확보가 숨통을 틔워줄 수는 있지만, 중동의 공백을 완벽히 메우기는 역부족이라고 진단한다.

아시아의 많은 정유 시설이 러시아산 중산성 원유를 처리할 준비가 되어 있지만, 급격한 유종 변경에 따른 기술적 마찰과 물류 적체는 해결해야 할 과제다.

제재 면제가 한시적이라는 점도 걸림돌이다. 자카르타 소재 에너지시프트 연구소의 푸트라 아디구나 소장은 "구매자들이 면제 기간 종료 이후의 불확실성 때문에 구매 시기를 극도로 고심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업계 전문가는 닛케이 아시아와의 인터뷰에서 "러시아 원유가 가격을 낮추기보다는 유가의 추가 상승을 제한하는 완충재 역할에 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 한국 에너지 업계에 주는 시사점


아시아 인근 국가들의 러시아산 원유 확보 경쟁은 한국에게도 복합적인 영향을 미친다.

중국과 인도가 러시아산 물량을 선점함에 따라, 중동 외 지역 원유를 노리는 한국 정유사들의 구매 단가 협상력이 약화될 수 있다.

미국 동맹국들조차 실리적인 선택을 하는 상황에서, 한국 역시 한시적 제재 면제 기회를 활용해 전략 비축유를 저렴하게 확보하거나 공급망 안정을 꾀하는 유연한 외교 전략이 필요하다.

우랄산 가격마저 브렌트유 수준으로 올라온 만큼, 원유 도입 단가 하락을 기대하기 어려워 국내 기름값과 전기료 인상 압박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신경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shincm@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