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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손가락 센서 전쟁…MEMS 시장 440억 달러 판도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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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손가락 센서 전쟁…MEMS 시장 440억 달러 판도 바뀐다

촉각·토크 센서 융합, AI 엣지컴퓨팅 핵심 부품으로 급부상
대만·일본·한국 삼각 경쟁…현대차·삼성 125조 베팅 배경은
AI 로봇의 연산 지능이 클라우드에서 기기 자체로 이동하는 흐름 속에 '로봇 손가락 끝 센서'가 다음 기술 혁신의 최전선으로 떠오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AI 로봇의 연산 지능이 클라우드에서 기기 자체로 이동하는 흐름 속에 '로봇 손가락 끝 센서'가 다음 기술 혁신의 최전선으로 떠오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달걀 한 알. 무게 50g, 껍질 두께 0.3mm. 이것을 깨뜨리지 않고 집어 드는 동작이 지금 전 세계 로봇 산업의 최전선에서 수천억 원짜리 기술 전쟁을 촉발하고 있다.

인간의 손가락 끝에는 1㎠당 약 2500개의 신경 수용체가 밀집해 있다. 이 감각 밀도를 실리콘과 금속으로 재현하는 것이 지금 글로벌 로봇 산업의 핵심 난제다.

대만 IT 전문 매체 디지타임스(Digitimes)는 지난 21일(현지시각) 보도에서, AI 로봇의 연산 능력이 클라우드 데이터센터에서 기기 자체 쪽으로 크게 이동할 것이라고 전하면서, 정교한 로봇 손이 그 핵심 끝점(endpoint)으로 부상하고 있으며 AI 로봇 분야의 다음 대형 돌파구가 손가락 끝의 감지 기술에서 나올 것이라고 보도했다.
클라우드가 아닌 손가락 끝 안에서 AI가 직접 판단하고 제어하는 구조, 이른바 '엣지 지능형 손'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는 것이다.

손가락 하나에 감지점 1000개…기술 경쟁 실체


현재 손가락 끝 센서 기술 경쟁은 단순한 촉각 감지를 넘어 압력·온도·미끄러짐·진동·방향력을 동시에 처리하는 다차원 복합 감지 체계를 얼마나 작은 공간에 구현하느냐의 싸움으로 전개되고 있다.

싱가포르 소재 샤파 로보틱스(Sharpa Robotics)가 최근 대량 생산으로 전환한 로봇 손 '샤파웨이브(SharpaWave)'는 손가락 하나당 초소형 카메라와 1000개 이상의 촉각 화소(tactile pixel)를 결합해 0.005뉴턴(N) 수준의 미세한 힘도 감지하는 시각·촉각 복합 감지 기능을 갖췄으며, 22개의 자유도를 구현했다.

일본 와세다대학 연구팀에서 분리 독립한 XELA 로보틱스는 올해 초 라스베이거스 소비자가전박람회(CES 2026)에서 촉각 센서 '유스킨(uSkin)'이 통합된 로봇 손을 공개했다.

손가락 끝뿐 아니라 손가락 마디와 손바닥 전체를 감싸는 구조로 손가락 하나당 12개의 감지 포인트를 구현했으며, 0.1그램력(gram-force)까지 집어내는 고감도 촉각 기술을 선보였다.

알렉산더 슈미츠 XELA 로보틱스 최고경영자는 "현재 많은 작업이 로봇으로 완전히 자동화되지 못하는 이유는 로봇이 인간만큼 조심스럽고 효율적으로 물체를 다루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촉각 기술로 로봇에 인간과 같은 감각을 부여해 복잡한 작업을 전례 없는 정밀도로 수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XELA 로보틱스는 올해 2분기부터 감지 포인트 크기를 기존 4mm×4mm에서 2.5mm×2.5mm로 줄인 차세대 센서 양산에 들어간다는 일정을 확정했다. 더 좁은 면적에 더 많은 감지점을 밀집시켜 감지 해상도를 끌어올리겠다는 전략이다.

대만·중국 공급망 맹추격…MEMS 시장 2034년 440억 달러로


세계 미세전자기계시스템(MEMS) 센서 시장 규모는 2025년 189억 3000만 달러(약 28조 원)로 평가됐으며, 2034년까지 440억 3000만 달러(약 66조 원)로 두 배 이상 팽창해 연평균 성장률 9.83%를 기록할 전망이다.

특히 아시아·태평양 지역이 2023년 기준 가장 큰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으며, 대만·일본·중국·한국이 이 지역 성장을 이끌고 있다.

대만은 반도체·정밀기계 분야의 축적된 공급망을 바탕으로 MEMS 기반 센서에 촉각 센서와 6축 힘·토크 센서를 하나의 손가락 끝에 통합하는 기술 개발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올해 초 CES 2026에서 대만은 57개 기술 스타트업과 83개 공급망 파트너사를 앞세워 9년 연속 국가대표팀으로 참가하며 AI를 일상에 접목한 기술 역량을 공세적으로 과시했다.

중국 팍시니 테크(PaXini Tech)의 행보는 가격 전쟁에서 변수로 떠오른다. 이 회사는 6축 힘, 질감, 탄성 등 15개 차원을 감지하며 전 측정 범위에서 0.01N 힘 감지 분해능을 구현하는 고정밀 촉각 센서를 49달러(약 7만 원)에 공급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업계 출하량 1위를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반도체 대형 업체들도 이 시장에 본격 진입했다.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STMicroelectronics)는 최근 NXP 반도체의 MEMS 센서 사업을 현금 최대 9억 5000만 달러(약 1조 4300억 원)에 인수 완료했다.

인수 대상에는 자동차 안전·산업용 센서 제품군이 포함됐으며, 2024년 매출은 약 3억 달러였다. 로봇 센서 공급망의 주도권이 스타트업을 넘어 반도체 대기업으로도 옮겨가고 있다는 신호다.

대만 랜너 일렉트로닉스(Lanner Electronics)는 엔비디아(NVIDIA)의 젯슨 토르(Jetson Thor) 기반 로봇용 엣지 AI 플랫폼 'EAI-I351'을 출시하며, 물리적 AI 작업 부하에서 요구되는 실시간 추론과 센서 융합을 기기 안에서 즉각 처리하는 구조를 상용화했다.

손가락 끝 센서가 수집한 데이터를 클라우드가 아닌 팔뚝 내부의 연산 칩이 바로 판단하는 완전 자율형 구조다.

삼성·현대차 125조 베팅…한국도 전선 가세


현대차그룹은 2030년까지 국내에 총 125조 2000억 원을 투자해 한국을 글로벌 로봇 산업 허브로 이끌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현대모비스는 보스턴다이내믹스(Boston Dynamics)와 손잡고 아틀라스(Atlas) 휴머노이드 로봇에 정밀 액추에이터를 공급하며 글로벌 로봇 부품 시장에 본격 진출하기로 했다.

삼성전자 노태문 대표이사는 CES 2026 현지 기자간담회에서 "삼성 내부에 있는 많은 생산 거점에 먼저 로봇을 적용하고, 여기서 축적한 기술과 역량으로 B2B와 B2C 사업으로 진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삼성전자가 보유한 반도체·가전 공장이 거대한 로봇 센서 실증 공간으로 활용되는 구조다.

국내 센서 전문 기업도 글로벌 무대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에이딘로보틱스는 자체 개발한 촉각 센서(ATT)를 손 전면에 탑재한 16자유도 2세대 인간형 로봇 핸드를 이달 공개했다.

지난해 아마존 로보틱스를 포함한 미국·호주에 1세대 모델을 수출한 성과를 바탕으로 올해 상반기 2세대 모델 정식 출시를 계획하고 있다고 이윤행 대표이사가 밝혔다.

가격·해상도·양산…세 마리 토끼 잡아야 승자


기술이 앞서가는 만큼 상용화의 벽도 선명하다. 미국 오르카 덱스테리티(ORCA Dexterity)의 로봇 손 '오르카핸드 터치(orcahand touch)'는 손 하나에 351개의 촉각 화소(taxel)를 탑재하고 3차원 힘 벡터 값을 출력하는 성능을 갖췄으나, 한 쌍 풀 구성 가격이 최대 1만 7900달러(약 2600만 원)에 달해 대규모 보급에는 한계가 뚜렷하다.

이 간극을 좁히는 것이 이번 경쟁의 본질이다. 업계 안팎에서는 승부처로 세 가지를 꼽는다. 첫째, 감지 해상도를 높이면서 부피를 줄이는 초소형 집적 기술이다.

둘째, 수십 달러 수준의 양산 단가 혁신으로, 팍시니 테크의 49달러 목표가 기준점이 된다. 셋째, 손가락 내부에서 MEMS·촉각·토크 센서 데이터를 즉각 처리하는 엣지 연산 칩의 소형화·저전력화다.

로봇의 눈(시각 센서)에서 촉발된 반도체 집적 전쟁이 이제는 로봇의 손끝으로 전선을 이동했다. 달걀 한 알을 깨뜨리지 않고 집어 드는 그 0.3mm의 감각이, 다음 10년 AI 로봇 산업의 승자를 가를 분수령이 되고 있다.


진형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