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노출도 높은 화이트칼라 기피 뚜렷… '손으로 하는 일'이 미래 직업으로 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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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확대보기통계가 먼저 말한다… 기술직 등록률 20% 급등
월스트리트저널(WSJ)과 스탠퍼드대 인간중심AI연구소(HAI)의 분석을 종합하면, 미국 노동 시장에서 세대교체가 아닌 '직종 교체'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스탠퍼드대 연구가 주목하는 'AI 고노출 직종'은 소프트웨어 개발자, 데이터 입력 담당자, 고객 서비스 담당자 등이다. 이들의 고용률은 2022년 말부터 2025년 9월까지 AI 저노출 직종 대비 16% 낮아졌다. 3년 만에 벌어진 16%포인트 격차는 산업 구조 재편이 '예고'가 아닌 '현재 진행형'임을 보여준다.
보험사 직원이 소방관 시험 통과한 까닭
워싱턴주 타코마에 사는 잭슨 커티스(28)는 3년 6개월간 보험 인수 심사 보조원으로 일했다. 승진 사다리를 타고 오를 수 있는 자리였다. 그럼에도 그는 소방관 자격시험 합격증을 손에 쥐었다. "데이터 입력이 주된 사무직은 AI 대체에 가장 취약하다"는 것이 커티스의 판단이었다. 승진이 보장된다고 해도 불안은 지워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뉴저지주 출신 라이더 파레데스(22)의 결단은 더 급진적이다. 3년 전 컴퓨터과학 전공으로 대학에 입학한 그는 생성형 AI가 코딩 실무를 빠르게 대체하는 장면을 직접 목격하며 취업 문이 닫힐 것을 직감했다. 이에 자퇴 후 직업학교에서 전기 기술 교육을 받고 있다. 파레데스는 "배관이나 전기 배선은 로봇이 창고나 사무실보다 훨씬 들어가기 어렵다"고 말했다.
인공지능 기업이 꼽은 'AI 안전지대'
역설적이게도 AI의 위협 범위를 가장 정밀하게 분석한 곳은 AI 기업 자신이다. 앤스로픽(Anthropic)과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가 발표한 직종 분류 분석에 따르면 농업·건설·소방 등 대면 업무와 신체 활동이 결합된 직종은 AI 영향권에서 상대적으로 멀리 위치한다. 반면 프로그래밍 단순 업무, 법률 문서 초안 작성, 콜센터 상담 업무는 자동화 우선 순위가 높은 것으로 분류됐다.
마이크로소프트 출신 컨설팅 전문가 바비트 부팔란은 17세 딸을 위해 'AI 대체 위험도별 직종 가이드'를 직접 제작했다. 이 분석에서 의사와 외교관은 가장 안전한 직종으로 꼽혔다. 그의 딸 테아 바비트는 원래 목표였던 금융 대신 국제관계학으로 전공을 선회했다. "외교의 본질은 알고리즘이 학습할 수 없는 인간 간의 진정성 있는 협상"이라는 이유에서다.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이 같은 직업 선택 패턴을 두고 "AI 리터러시(해독력)가 높을수록 오히려 아날로그 직종의 안전성을 더 정확히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국 노동시장에 던지는 질문
미국 청년의 진로 재편이 한국과 무관한 이야기는 아니다. 한국고용정보원이 2025년 12월 발표한 'AI의 직업 대체 가능성' 분석은 기술 발전 속도에 따라 세 가지 시나리오로 나뉜다. 낙관적 저위 시나리오에서도 국내 일자리의 12.9%(351만 명)가 대체되고, 중위 시나리오에서는 24.0%(651만 명)에 달한다. 고위 시나리오에서는 전체 일자리의 73.8%, 즉 2005만 명이 AI로 대체될 수 있다는 충격적인 수치가 제시됐다. 주목할 대목은 과거 분석에서 단순 노무직이 주된 대체 대상이었던 것과 달리, 이번 보고서는 데이터 분석과 인지적 업무 비중이 높은 화이트칼라 사무직이 오히려 더 빠르고 강한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측했다는 점이다. 금융사무원·보험심사원·세무신고 대행인 등이 대표적인 고위험군으로 꼽혔다.
반면 용접기능사, 전기기사, 소방설비기사 등 현장 기술직은 대체 가능성이 낮은 직종 상위 20개에 이름을 올렸다. 한국산업인력공단의 공식 통계에 따르면, 전기기능사 자격증 응시 인원은 2022년 4만 8440명에서 2023년 6만 239명으로 1년 만에 24% 급증했고, 2024년에도 6만 1127명으로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단순 수치 증가를 넘어, 청년층과 중장년층 모두에서 전기 관련 기술직으로의 진입이 동시에 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AI가 좀처럼 대신할 수 없는 현장 실무 기술에 대한 선호가 자격증 통계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 20대의 직업 대이동이 태평양 건너 한국에서도 조용히 시작되고 있다는 방증이다.
공포 대신 창업 택했다… AI를 무기로 삼은 '정면돌파형' 청년들
모든 20대가 AI를 피해 달아나는 것은 아니다. 기술 파고를 직접 올라타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캐나다 궬프대학교를 휴학한 베단트 비야스(21)는 실리콘밸리 액셀러레이터 'Y 콤비네이터'를 통해 AI 스타트업 '오픈노트(Opennote)'를 설립했다. 400만 달러(약 60억 원) 이상의 투자를 유치한 그는 "AI가 내 커리어를 결정하게 두는 대신, 내가 어떤 일자리를 만들지 직접 결정하겠다"고 했다.
뉴욕의 루크 세인트 아만드(25)는 아마존 고액 연봉직을 내던지고 교육 스타트업을 창업했다. AI를 학습시켜 남의 일자리를 없애는 부속품이 되기보다, AI를 도구 삼아 새 가치를 만드는 주체가 되겠다는 선택이었다.
텍사스대 2학년 올리 카슨(19)은 애니메이션 전공에 마케팅 부전공을 추가해 '포트폴리오 다각화'로 대응하고 있다. "AI가 발전할수록 예술적 감수성과 기획력을 함께 갖춘 사람의 희소성이 오히려 커진다"는 계산이다.
'기술 활용'과 '인간 공감', 두 축이 갈린다
하버드대 설문에서 AI를 위협으로 꼽은 청년(59%)의 상당수는 대학 졸업자였다. 고등 교육이 역설적으로 AI 불안감을 키우는 셈이다. 이는 단순한 취업 공포가 아니라 '지식 노동의 가치 재정의'에 대한 근원적 물음이기도 하다.
이번 조류가 보여주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미래 노동시장의 생존 전략은 두 갈래로 수렴되고 있다. 첫 번째는 로봇과 AI가 물리적으로 진입하기 어려운 현장, 즉 '몸이 들어가야 하는 일'이다. 두 번째는 AI를 설계하고 활용하는 '기술 주도권'이다. 그 사이, 과거 안정적 중산층의 상징이었던 사무직 화이트칼라의 영역은 조용히 좁아지고 있다.
한국 청년들이 이 흐름을 남의 나라 이야기로 읽는다면, 그것이 진짜 위기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