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전쟁 후 유가 40% 급등·고용 9만2천 명 감소…침체 확률 49% 육박
유가 10달러 오를 때마다 미 가계 65만 원 부담·한국 제조업 생산비도 0.71% 상승
유가 10달러 오를 때마다 미 가계 65만 원 부담·한국 제조업 생산비도 0.71% 상승
이미지 확대보기미국 경제 전문매체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24일(현지시각) 무디스 애널리틱스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마크 잔디가 소셜미디어 X에 공개한 분석을 인용하며 "배럴당 125달러(약 18만 7000원)가 미국 경기 침체를 유발하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고 전했다.
이란 전쟁 발발 이후 국제유가가 100달러를 넘어선 가운데, 잔디의 경고는 단순한 수치 제시를 넘어 미국 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을 정면으로 겨냥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2분기가 분수령…잔디가 정조준한 숫자
잔디는 X에 올린 글에서 "무디스 글로벌 거시경제 모델 시뮬레이션 결과, 올해 2분기 유가 평균이 배럴당 125달러 수준에 이르는 것만으로 경기 침체를 촉발하기에 충분하다"고 밝혔다. 그는 "긴장이 여전히 고조된 상황에서 이 수준의 유가는 무리한 전망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이란 전쟁 발발 이후 무디스 팀이 산출한 유가 전망치 수정 폭은 눈길을 끈다. 이란 전쟁 이전인 2월 전망치와 개전 직후인 3월 전망치를 비교하면, 무디스는 2026년 연간 유가 예상치를 배럴당 15달러 가까이 올려 잡았다.
이 조정 하나로 올해 실질 GDP 성장률 전망치가 20bp(0.2%p) 낮아졌다. 잔디는 4월 전망에서 기준 유가를 최소 10달러 추가 인상할 계획이며, 이 경우 성장률이 15bp(0.15%p) 더 하락할 수 있다고 예고했다.
산술적으로만 따지면 두 번의 조정이 겹칠 경우, 전쟁 이전 대비 성장률 하방 압력은 최대 0.35%p에 이른다. 이란 전쟁이 장기화하는 한, 이 숫자는 굳어지는 것이 아니라 계속 내려갈 여지가 있다.
고용 빙하기에 유가 불 지르기…'이중 충격' 구조
잔디의 경고가 시장에서 무게감을 갖는 건 유가 충격이 진공 속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약해진 경제 위에 덮쳤기 때문이다.
잔디는 이런 고용 지표 악화를 근거로 이란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침체 확률이 49%까지 치솟았다고 경고했으며, "거의 모든 경제 지표가 지난해 말부터 부드러워졌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 확률이 50% 선을 넘는 것은 "크게 어려운 상상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잔디는 "미국이 현재 자국 소비에 맞먹는 수준의 원유를 생산하더라도, 유가 상승은 미국 소비자를 더 빠르고 가혹하게 타격한다"며 "고유가가 석유 생산자들의 투자 확대를 이끌어내는 속도보다 소비자 지출이 얼어붙는 속도가 훨씬 빠르다"고 설명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에서 발생한 침체 가운데 코로나19 시기를 제외한 모든 경기침체에는 예외 없이 유가 급등이 선행했다.
유가가 10달러 오를 때마다 미국 가계는 연간 약 450달러(약 67만 원)의 추가 지출을 감수해야 한다고 무디스는 분석했다. CNN 소비 주도 경제에서 이 부담이 가계 전반으로 번지면, 소비 둔화→기업 매출 감소→고용 위축으로 이어지는 하강 고리가 형성된다.
월가는 엇박자, 한국엔 '호르무즈 폭탄’
월가의 전망은 엇갈린다. 뱅가드는 유가가 150달러 수준에서 올해 남은 기간을 유지할 경우 미국이 침체에 빠질 수 있다고 분석했고, 웰스파고는 130달러 이상이 '지속적으로' 유지되면 "침체 위험이 현저히 높아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골드만삭스는 침체 확률을 25%, JP모건은 35%로 각각 제시하고 있어 무디스의 49%와는 온도차가 상당하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물가는 관세에 이어 전쟁으로 오르고 있는 반면 성장세는 꺾이고 있다"며 미국이 스태그플레이션(고물가 속 성장 둔화) 위험에 직면했다고 경고했다.
골드만삭스는 유가가 배럴당 10달러 상승해 연말까지 그 수준을 유지하면 연간 GDP 성장률이 약 0.1%p 낮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 경제의 침체 여부는 지구 반대편 한국 경제와도 직결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아시아향 원유 운송로 봉쇄가 한국과 일본 석유화학 업계의 위기를 심화시키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의 납사 수입에서 페르시아만 물량이 차지하는 비중은 60%에 달하며, 여천NCC는 이미 공급 불가항력을 선언했고 롯데케미칼과 LG화학도 불가항력 가능성을 공지한 상태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국제유가가 10% 오르면 국내 제조업 전체 생산비용이 평균 0.71% 늘어나며, 석유제품 산업은 6.30%, 화학제품은 1.59%의 비용 압력을 받는다.
미국 정부는 아직 낙관론을 거두지 않고 있다. 케빈 해싯 미국 국가경제위원회 의장은 "미국 경제는 여전히 근본적으로 건전하다"며, 이란과의 갈등이 예상보다 길어지더라도 경제에 큰 타격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상원에서 "미국이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기침체를 겪을 수 있다"고 경고해 적중시킨 잔디는 현 상황을 "역사상 유가 충격이 불황의 선행 지표였던 패턴"과 겹쳐 읽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의 봉쇄가 풀리느냐, 아니면 125달러 선이 먼저 뚫리느냐. 그 답이 나오는 2분기가 2026년 세계 경제의 향방을 가를 것이다.
진형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