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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인물 열전] 하워드 슐츠 "스타벅스 탱크 콜옵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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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인물 열전] 하워드 슐츠 "스타벅스 탱크 콜옵션"

하워드 슐츠 스타벅스 창업자 /사진=스타벅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전 고려대 교수  이미지 확대보기
하워드 슐츠 스타벅스 창업자 /사진=스타벅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전 고려대 교수
[인물해부] 하워드 슐츠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전 고려대 교수

른바 '스타벅스 탱크 사건'으로 명명된 신세계그룹 정용진 회장의 행보가 거대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기업 오너의 개인적 돌출 행동이나 정치적, 사회적 논란이 핵심 계열사의 브랜드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오너 리스크(Owner Risk)'의 전형적인 사례로 금융 시장과 산업계의 이목이 쏠려 있다. 이러한 위기 상황 속에서 가장 주목받는 것은 단연 미국 스타벅스 글로벌 본사, 그리고 그 정신적 지주인 하워드 슐츠(Howard Schultz) 전 최고경영자(CEO)의 이름이다. 급기야 시장 일각에서는 본사가 브랜드 가치 훼손을 명분으로 콜옵션(Call Option, 주식매도청구권)을 행사하여 신세계(이마트)로부터 한국 스타벅스(SCK컴퍼니)의 경영권 및 지분을 강제 회수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까지 거론되고 있다.

하워드 슐츠의 경영 철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유년 시절에 깊게 새겨진 빈곤과 상실의 트라우마를 직시해야 한다. 1953년 뉴욕 브루클린의 빈민가(카나시 프로젝트)에서 태어난 그는 육체노동으로 생계를 잇는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그가 7살 무렵, 트럭 운전사였던 아버지가 작업 중 빙판에서 넘어져 발목이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다. 그 당시 미국의 열악한 노동 환경 속에서 의료보험이나 산업재해 보상은 전무했다. 아버지는 즉각 해고되었고, 가족은 깊은 절망과 경제적 파탄에 빠졌다. 다리에 깁스를 한 채 소파에 무기력하게 누워있던 아버지의 모습은 어린 슐츠의 뇌리에 '존엄성을 상실한 노동자'의 비극으로 각인되었다.
이 뼈저린 경험은 훗날 스타벅스의 파격적인 복지 정책의 근간이 되었다. 슐츠는 기업이 이윤을 추구하되, 그 과정에 참여하는 구성원의 인간적 존엄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철학을 세웠다. 1988년, 스타벅스는 미국 기업 최초로 파트타임 직원(주 20시간 이상 근무자)을 포함한 전 직원에게 종합 의료보험 혜택을 제공했다. 또한 1991년에는 '빈 스톡(Bean Stock)'이라는 이름의 스톡옵션 제도를 도입하여 직원들을 단순한 종업원이 아닌 '파트너'이자 회사의 공동 소유주로 격상시켰다. 이는 시혜적 복지가 아니라, "직원이 만족해야 고객이 만족하고, 비로소 기업이 성장한다"는 가장 본질적이고도 합리적인 인적 자본 투자(Human Capital Investment) 전략이었다. 슐츠가 스타벅스의 창업자는 아니다. 1982년 마케팅 책임자로 합류할 당시, 제리 볼드윈(Jerry Baldwin)을 비롯한 스타벅스의 원년 창업자 3인은 시애틀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에서 최고급 아라비카 원두만을 볶아 파는 소규모 소매업자들에 불과했다. 이들은 매장에서 커피 음료를 추출해 파는 것을 '커피의 순수성을 훼손하는 일'이라며 터부시했다.

슐츠의 인생과 기업의 운명을 바꾼 결정적 변곡점은 1983년 이탈리아 밀라노 출장이었다. 길거리 곳곳에 위치한 에스프레소 바(Bar)에서 이탈리아인들이 바리스타와 유대감을 나누며, 에스프레소 한 잔을 매개로 휴식과 대화를 즐기는 활기찬 문화를 목격한 것이다. 슐츠는 직감했다. "커피는 단순한 상품(Commodity)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매개체(Medium)다." 그는 집(제1의 공간)과 직장(제2의 공간) 사이에서 대중이 스트레스를 풀고 편안하게 소통할 수 있는 '제3의 공간(The Third Place)' 개념을 주창했다. 그러나 원두 판매라는 낡은 비즈니스 모델에 갇혀 있던 기존 창업자들은 슐츠의 제안을 단호히 거절했다.

슐츠는 1985년 스타벅스를 떠나 자신의 비전을 담은 '일 지오날레(Il Giornale)'라는 에스프레소 바를 창업하여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후 1987년, 원년 창업자들이 스타벅스 브랜드를 매각하려 하자, 슐츠는 380만 달러의 자본을 조달하여 스타벅스를 인수했다. 일 지오날레와 스타벅스의 합병, 그것이 바로 전 세계 80여 개국에 3만 개가 넘는 매장을 거느린 오늘날의 글로벌 커피 제국, 스타벅스의 실질적인 건국일이다. 1992년 기업 공개(IPO) 이후 스타벅스는 폭발적인 양적 팽창을 거듭했다. 주가는 연일 천정부지로 솟았고, 매장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슐츠는 2000년 글로벌 확장에 집중하기 위해 최고경영자(CEO) 자리에서 물러나 이사회 의장직만 유지했다.

맹목적인 성장은 독이 되어 돌아왔다. 2007년 무렵, 스타벅스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다. 효율성과 회전율을 높이기 위해 도입한 자동화 에스프레소 머신은 바리스타의 숙련도와 커피 추출의 낭만을 앗아갔다. 매장에서는 커피 향 대신 치즈 샌드위치 타는 냄새가 진동했다. 무엇보다 '제3의 공간'이라는 안락함은 사라지고, 수익 창출만을 위한 패스트푸드점으로 전락하고 있었다. 여기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겹치며 주가는 반토막이 났고, 월가는 스타벅스의 시대가 끝났다고 선언했다. 이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2008년 1월, 하워드 슐츠가 8년 만에 CEO로 전격 복귀했다. 그의 위기관리 리더십은 단기적인 재무 지표 개선이 아닌 '핵심 가치(Core Value)의 복원'에 맞춰져 있었다.

가장 상징적인 사건은 2008년 2월 26일, 미국 전역의 7,100여 개 매장을 3시간 반 동안 일제히 폐쇄한 일이다. 수백만 달러의 매출 손실과 경쟁사들의 조롱을 감수하면서까지 단행한 이 조치는, 전 바리스타들에게 완벽한 에스프레소 추출 방법을 재교육하기 위함이었다. 이는 주주와 시장, 그리고 고객들에게 "우리는 수익을 위해 완벽함을 타협하지 않는다"는 강력한 시그널을 보내는 충격 요법이었다. 슐츠는 매장에서 커피 향을 가리는 샌드위치를 퇴출하고, 무분별하게 확장된 부실 매장을 과감히 정리했다. 단기적인 주주들의 거센 항의 속에서도 "우리는 사람을 챙기는 비즈니스를 통해 커피를 파는 것이지, 커피 비즈니스를 통해 사람을 챙기는 것이 아니다"라는 신념을 고수했다. 이러한 본질로의 회귀 전략은 결국 고객의 신뢰를 되찾았고, 스타벅스는 창사 이래 최대의 실적을 갱신하며 극적으로 부활했다.
스타벅스 본사의 콜옵션 행사설'은 단순한 루머를 넘어, 기업 지배구조(Corporate Governance) 관점에서 중대한 시사점을 던진다. 글로벌 합작 투자나 마스터 프랜차이즈 계약에 있어 본사는 현지 파트너사의 귀책 사유(도덕적 해이, 평판 훼손 등)로 인해 브랜드의 존립이 위협받을 경우를 대비해, 미리 정해진 가격이나 시장가로 지분을 강제 매수할 수 있는 권리(콜옵션)를 조항에 삽입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한국 스타벅스의 위기에 하워드 슐츠의 이름이 거론되는 것은, 과거 그가 수익성 극대화라는 명분 앞에서도 브랜드의 영혼이 훼손되는 것을 용납하지 않고 CEO로 복귀하여 메스를 가했던 '브랜드 수호자'로서의 상징성 때문이다. 슐츠와 스타벅스 본사에게 한국 시장은 매출 3조 원을 넘보는 세계 4위 규모의 핵심 시장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단기적인 로열티 수익보다 중요한 것은 전 세계적으로 균일하게 유지되어야 할 '스타벅스의 정신'이다. 로컬 파트너의 오너 리스크가 글로벌 브랜드의 정체성을 갉아먹는 상황을 본사가 방관할 수 없다는 시장의 합리적 추론이 '콜옵션 행사'라는 극단적 시나리오로 발현된 것이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