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봉쇄 장기화 우려에 국제유가 100달러 고공행진
탈세계화·AI 에너지 수요까지 겹쳐 '구조적 고물가' 시대 진입 본격화
탈세계화·AI 에너지 수요까지 겹쳐 '구조적 고물가' 시대 진입 본격화
이미지 확대보기갤런당 4달러 돌파… "한 달 새 1달러 폭등"
미국 전역의 주유소 가격이 가계를 옥죄고 있다. 미국자동차협회(AAA)에 따르면 이란과의 전쟁이 발발하기 직전인 2월 말 갤런당 2.90달러대(약 4360원)를 유지하던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은 3월 25일 현재 3.98달러(약 5990원)까지 치솟았다. 불과 한 달 만에 1달러가 오른 것이다. 캘리포니아주에서는 이미 갤런당 5달러(약 7530원) 중반대를 기록하며 6달러(약 9030원)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석유 가격 정보 서비스(OPIS)의 덴튼 친퀘그라나 연구 분석 책임자는 "3월 휘발유 가격 상승률은 약 22%에 이르며, 이는 지난 20년 동안 가장 높은 월간 상승 폭"이라고 밝혔다. 클리블랜드 연방준비은행의 인플레이션 나우캐스팅 모델은 3월 CPI를 3.0%로 예측해 2월(2.4%)보다 0.6%포인트 높아질 것으로 제시했다. 골드만삭스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6주 이상 지속되는 시나리오에서 연간 헤드라인 CPI가 3.3%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으며, 분쟁이 걸프 에너지 인프라에 영구적 피해를 남기는 최악 시나리오에서는 4.9%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예측 시장 플랫폼 폴리마켓에서는 이미 CPI가 4%를 넘을 가능성을 46%로 산정하고 있다.
한국 에너지경제연구원 관계자는 "미국 내 소비자 에너지 가격이 이처럼 빠르게 오를 경우 국제 원유 수급 불안이 확인되는 것이어서, 원유 수입 의존도가 90%를 넘는 한국에도 직결된 위협"이라고 지적했다.
호르무즈 해협 '장기 봉쇄' 현실화되나
이번 물가 충격의 진원지는 중동이다. 지난 2월 28일 이란과의 전쟁이 발발한 이후 국제 원유 가격은 전쟁 초기 배럴당 120달러(약 18만 원)에 육박하며 시장을 뒤흔들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 에너지 시설 공격 유예 가능성을 언급한 이후 브렌트유 가격이 100달러(약 15만 원)선 아래로 잠시 후퇴했지만, 에너지 시장의 공포는 가라앉지 않고 있다.
핵심 변수는 호르무즈 해협이다. 전 세계 원유 해상 물동량의 약 20%가 이 해협을 통과한다. 옥스퍼드 애널리티카의 닉 레드먼드 편집장은 "상황이 매우 유동적이며, 해상 요충지인 호르무즈 해협 폐쇄가 몇 달에 걸쳐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카타르 에너지부 장관도 갈등이 지속될 경우 페르시아만 수출업체들이 선적 중단에 나설 수 있다고 위기감을 내비쳤다.
전문가들은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 아래로 다시 떨어진다 해도, 이미 상승한 물가가 연준의 목표치인 2%로 돌아가는 데 최소 수 년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탈세계화·AI 전력 수요… '구조적 고물가' 시대 진입
단기 전쟁 충격을 넘어, 경제 구조 자체가 고물가 체제로 재편되고 있다는 진단이 힘을 얻고 있다.
하버드대학교 경제학과 캐런 다이넌 교수는 "21세기 초 20년 동안 물가를 낮게 유지했던 세계화의 동력이 소멸하고, 탈세계화가 진행되면서 구조적 인플레이션 압력이 고조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여기에 AI 열풍에 따른 데이터센터 건설 확대가 전력 수요를 폭발적으로 늘리며 전기 요금 등 생산 비용을 밀어 올리고 있다. 이민 제한 조치에 따른 노동력 부족과 임금 상승이 서비스 물가를 끈질기게 떠받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브린 캐피털의 존 라이딩 분석가는 "자본재 가격 상승 폭이 1980년대 후반 이후 최대치를 기록한 것은 산업 전반의 생산능력 제약을 의미한다"며 물가상승 압력의 장기화 가능성을 시사했다.
연준의 고심… 금리 인하 기대 '물거품' 위기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최근 기자회견에서 지난 5년간 인플레이션이 목표치를 웃돌았다는 점을 인정하며, 물가 기대 심리가 불안정해질 위험을 경계하는 메시지를 내놨다. 파월 의장의 발언은 시장의 연내 금리 인하 기대를 다시 한번 냉각시키는 신호탄이 됐다.
시장에서는 4월 금리 인상 가능성을 8% 수준으로 낮게 보고 있다. 그러나 CPI가 실제로 4%대를 찍을 경우 연준의 셈법은 근본적으로 달라질 수 있다. 연준이 기준금리를 3.50~3.75%로 묶어둔 상태에서 물가가 4%를 넘어서면, 사실상 실질 금리가 마이너스로 떨어지는 아이러니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한국도 '이중 경보'… 에너지 수입·금리 고점 동시 타격
미국의 물가 재점화는 한국 경제에 이중 압박으로 작동한다.
첫째,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절대적으로 높은 한국에서 중동발 공급 위기는 곧바로 국내 생산 비용과 소비자 물가를 자극한다. 중동 원유 의존도를 낮추는 수입선 다변화와 전략 비축유 관리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둘째, 미국의 고물가가 장기화할 경우 연준의 금리 인하 시점은 계속 뒤로 밀릴 수밖에 없다. 한미 금리 차가 좁혀지지 않으면 원화 약세 압력이 지속되고, 국내 수입 물가를 추가로 자극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 CPI가 4%를 넘을 경우 한국은행도 금리 인하 시기를 재산정해야 하는 압박에 놓일 수 있다"며 "가계와 기업 모두 고금리 기조가 예상보다 훨씬 오래 지속될 가능성에 대비한 유동성 관리가 필수"라고 당부했다.
2022년 인플레이션 충격을 3년에 걸쳐 간신히 진정시킨 글로벌 경제가 이제 두 번째 파고를 맞고 있다. 이번에는 에너지 위기만이 아니라 탈세계화·AI 수요·인구 구조 변화라는 세 겹의 파도가 겹쳐 밀려오고 있어, 진정까지 걸리는 시간이 훨씬 길어질 수 있다는 점이 진짜 위협이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