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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정책 실패가 부른 재앙… 독일·대만·캘리포니아, 이란 에너지 쇼크에 직격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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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정책 실패가 부른 재앙… 독일·대만·캘리포니아, 이란 에너지 쇼크에 직격탄

"좋은 의도와 좋은 계획을 혼동하지 말라"… 탈원전·환경 규제 고수한 3개 지역, 에너지 안보 취약성 적나라하게 드러나
호르무즈 해협 봉쇄와 카타르 라스라판(Ras Laffan) 액화천연가스(LNG) 수출 시설 피격으로 세계 시장에서 증발한 LNG 물량은 약 2800만 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이번 사태를 역사상 최대 규모의 원유 공급 차질로 공식 규정했다. 이미지=제미나이3이미지 확대보기
호르무즈 해협 봉쇄와 카타르 라스라판(Ras Laffan) 액화천연가스(LNG) 수출 시설 피격으로 세계 시장에서 증발한 LNG 물량은 약 2800만 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이번 사태를 "역사상 최대 규모의 원유 공급 차질"로 공식 규정했다. 이미지=제미나이3
"좋은 의도와 좋은 계획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이란 전쟁이 촉발한 에너지 쇼크가 전 세계를 강타하는 가운데, 워싱턴포스트(WP)가 지난달 30(현지시각) 오피니언 지면에 게재한 이 경구 하나가 에너지 정책의 본질을 꿰뚫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와 카타르 라스라판(Ras Laffan) 액화천연가스(LNG) 수출 시설 피격으로 세계 시장에서 증발한 LNG 물량은 약 2800만 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이번 사태를 "역사상 최대 규모의 원유 공급 차질"로 공식 규정했다.

충격은 모든 에너지 수입국을 덮쳤지만, 그 깊이는 나라마다 판이하게 달랐다. WP는 독일, 대만, 미국 캘리포니아주를 이번 쇼크의 가장 뼈아픈 피해 사례로 지목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하나다. 에너지 문제를 국가 안보가 아닌 도덕적 가치의 영역으로 다뤘다는 것이다.

2026 이란발 에너지 쇼크: 글로벌 경제 위협하는 '핵심 리스크 Top 3'. 도표=글로벌이코노믹이미지 확대보기
2026 이란발 에너지 쇼크: 글로벌 경제 위협하는 '핵심 리스크 Top 3'. 도표=글로벌이코노믹

사례 ① 독일 — 원전 대신 LNG 단일 연료에 올인, 결국 석탄 발전 부활


독일의 에너지 전환 실험은 세계에서 가장 야심 차고 가장 값비싼 실패의 기록으로 남을지 모른다.

1980년대 반핵 운동에서 출발한 녹색당은 1998년 연립정부 참여 조건으로 탈원전을 내걸었고, 2021년 재집권 후 2023년 마지막 남은 원전 3기의 가동을 중단시켰다. 독일은 약 350억 톤의 갈탄(갈색 석탄) 매장량을 보유했음에도 탄소 중립을 명분으로 석탄 발전소까지 단계적으로 폐쇄했다.

문제는 원전과 석탄이 빠져나간 그 자리를 단 하나의 연료, LNG로 채웠다는 점이다.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는 날씨에 따라 발전량이 요동치는 간헐성 문제를 극복하지 못했고, 그 불안정성을 LNG 수입이 보완하는 구조가 고착됐다. 에너지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한 것이 아니라, 리스크를 한 바구니에 집중시킨 셈이었다.

결말은 혹독했다. 카테리나 라이헤 독일 에너지부 장관은 최근 "원전 중단은 거대한 실수였다"고 공개적으로 인정했다. LNG 가격이 폭등하자 독일 정부는 이미 퇴역 처리한 석탄 발전소를 다시 가동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친환경 에너지 자립을 선언했던 독일이 위기 상황에서 원자력 강국 프랑스로부터 전기를 수입하는 역설적인 상황에 처한 것이다.

WP"독일의 핵심 오류는 탈원전 그 자체보다, 그 공백을 단일 연료 의존으로 메운 데 있다"고 지적했다. 에너지 전환의 방향이 옳다 하더라도, 전환 과정에서 포트폴리오 리스크를 관리하지 못하면 국가 전체가 외부 충격에 무방비 상태가 된다는 교훈이다.

사례 ② 대만 — 에너지 97% 해상 수송 의존, 섬나라의 구조적 취약성


대만의 경우는 이념과 지리가 맞물려 빚어낸 복합 위기다.

집권 민주진보당(DPP)1986년 창당 당시부터 반핵을 당헌에 명시했다. 2016년 집권 후 '핵 없는 고향' 입법을 통해 국민당 정부 시절 구축된 원전 기반을 해체하기 시작했고, 원전의 빈자리는 LNG 비중 확대로 메웠다.

그러나 이 선택이 초래한 결과는 단순한 연료 교체가 아니었다. 에너지 공급의 97%를 해상 수송에 의존하게 됐다는 것이 진짜 문제였다. 대만은 본토 화석 연료 자원이 사실상 없는 섬나라다.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고 해상 보급로가 위협받자 대만 경제는 즉각적인 마비 위기에 직면했다.

이는 단순한 에너지 정책의 실패가 아니다. 에너지 안보는 전력망의 문제인 동시에 해상 통제력의 문제이기도 하다. 중국의 군사적 위협과 미·중 전략 경쟁이 상존하는 대만해협 환경에서, 해상 수송에 대한 97% 의존은 에너지 취약성을 넘어 국가 존립 문제와 직결된다.

결국 대만 정부는 지난주 기존 탈원전 방침을 공식 철회하고 원전 재가동 계획을 발표했다. WP는 이 결정을 두고 "재생에너지만으로는 국가 안보를 담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위기가 가르쳐 준 것"이라고 평가했다.

사례 ③ 캘리포니아 — '고립된 시장' 설계의 대가, 휘발유 1갤런 6달러


미국 내에서 가장 엄격한 환경 규제를 자랑하는 캘리포니아주는 스스로를 에너지 고립 지대로 만드는 선택을 해 왔다.

주 정부가 독자적으로 정한 '특수 혼합 연료' 의무화 규정 때문에 다른 주에서 생산된 휘발유는 캘리포니아에서 사용할 수 없다. 여기에 탄소 배출 부담금 강화와 정유시설 규제가 더해지면서 주요 정유사들이 가동을 축소하거나 철수했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송유관도 없는 상태에서 캘리포니아는 아시아 정유 시설의 휘발유 수입에 의존하는 구조를 굳혀 왔다.

핵심 문제는 규제의 강도가 아니라, 외부와 '호환되지 않는 시장'을 설계한 결과 위기 시 유연성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중동 전쟁으로 아시아발 물동량이 급감하자 캘리포니아 주유소의 휘발유 가격은 1갤런(3.78리터)6달러에 육박했다.

앤디 월츠 셰브론(Chevron) 정유 부문 사장은 WP와의 인터뷰에서 "탄소 배출을 해외로 떠넘기려던 시도가 오히려 에너지 안보를 해외에 저당 잡히는 결과를 낳았다"고 비판했다. 셰브론은 규제 환경이 바뀌지 않는다면 10년 안에 캘리포니아에서 완전히 철수할 수 있다고 경고한 상태다.

한국의 현재, 원전 강국이지만 '농축 우라늄 수입 의존'이라는 아킬레스건


이번 위기는 한국에도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

미국 외교협회(CFR)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은 이란 전쟁 발발 이후 긴급 국무회의를 소집해 중동 사태의 에너지 안보 함의를 점검했다. 한국은 세계 주요 원전 생산국 중 하나로, 독일이나 대만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기저 부하 전원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충격을 버티는 체력이 있다.

그러나 한국의 치명적 약점은 따로 있다. CFR 보고서는 "한국은 원전을 운영하지만 농축 우라늄을 전량 수입에 의존한다"고 지적했다. 2015년 미·한 민간핵협력협정(123협정)에 따라 우라늄 농축 능력이 제한돼 있기 때문이다. 이 협정을 어기고 독자 농축에 나서는 것은 미·한 동맹 관계와 북핵 문제에 심각한 긴장을 초래할 수 있다.

이 대통령 정부는 현재 미국과 123협정 재협상을 추진하면서 국내 농축 우라늄 생산 기반 마련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이 직면한 에너지 안보 과제는 원전 기술이나 발전 비중의 문제가 아니라, 연료 공급망 자립이라는 더 깊은 층위에 존재한다.

동남아 주요국은 비교 기준으로 더욱 취약하다. CFR"동남아 대부분 국가가 비축한 석유·LNG20일에서 50일치에 불과하다"고 분석했다. 이들 국가가 한국에 중간재와 부품을 공급하는 글로벌 공급망의 중간 거점임을 감안하면, 이란발 에너지 쇼크의 파장은 한국 수출 경쟁력에도 직결된다.

에너지 전환의 방향이 아니라 '리스크 관리 방식'이 국가의 미래를 가른다


이번 위기가 남기는 교훈은 단순하다. 에너지 전환의 방향이 옳고 그른지가 아니라, 전환 과정에서 어떤 리스크를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국가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에너지 위기를 상대적으로 잘 버텨내는 나라들은 가장 탄소를 적게 배출하는 나라가 아니라, 공급원을 다변화하고 에너지 자립도를 일정 수준 이상 유지한 나라들이다. 재생에너지는 방향이고, 에너지 안보는 조건이다. 이 두 가지는 대립하지 않지만, 전제와 결과를 혼동했을 때 그 대가는 국민 전체가 치른다.

가장 위험한 나라는 탄소를 가장 많이 쓰는 나라가 아니라, 단 하나의 에너지원에만 의존하는 나라다. 이 명제가 2026년의 에너지 지형도 위에서 이렇게 선명하게 증명될 줄은, 정책 입안자들조차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블룸버그는 지난달 31일 보도에서 "트럼프의 이란 전쟁이 아이러니하게도 화석 연료보다 재생에너지와 원자력으로의 전환을 가속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위기가 촉발한 변화가 어떤 방향으로 수렴할지, 시장 참여자들이 지금 당장 주목해야 할 지표는 ① 호르무즈 해협 통항 재개 여부(LNG·원유 가격의 직접 결정 변수) ② 카타르 라스라판 시설 복구 속도(글로벌 LNG 공급 회복의 핵심 관건) ③ 이재명 정부의 미·123협정 재협상 결과(한국 에너지 자립 로드맵의 분기점) 등 세 가지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