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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에츠화학, PVA 70엔 인상…호르무즈 봉쇄 에틸렌 대란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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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에츠화학, PVA 70엔 인상…호르무즈 봉쇄 에틸렌 대란 확산

나프타 66% 급등·에틸렌 2배 폭등…일본 화학업계 줄인상 도미노
봉쇄 장기화 시 한국 제조업 생산비 11.8% 상승 경보
아시아 최대 화학 기업 중 하나인 신에츠화학공업(信越化学工業)이 오는 20일 출하분부터 핵심 수지 제품 가격 인상에 나선다. 이미지=제미나이3이미지 확대보기
아시아 최대 화학 기업 중 하나인 신에츠화학공업(信越化学工業)이 오는 20일 출하분부터 핵심 수지 제품 가격 인상에 나선다. 이미지=제미나이3


마트 진열대에서 투명 포장 필름이 사라지고, 건설 현장에서는 접착제 단가 인상 공문이 날아들고 있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사실상 틀어막은 지 한 달여, 그 충격파는 이제 석유화학 원료를 넘어 우리 일상과 맞닿은 소재들을 정조준하기 시작했다.

아시아 최대 화학 기업 중 하나인 신에츠화학공업(信越化学工業)이 오는 20일 출하분부터 핵심 수지 제품 가격 인상에 나선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이 6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에틸렌 대란'이 일본 기초화학 산업의 심장부를 관통하고 있다.

'중동 나프타→에틸렌→PVA' 공급 사슬이 한꺼번에 끊겼다


신에츠화학공업이 가격을 올리는 제품은 초산비닐모노머(VAM)와 폴리비닐알코올(PVA)이다. 두 제품 모두 에틸렌을 출발점으로 하는 유도체 계열로, 오사카부 사카이시 자회사 공장에서 생산된다.

인상 폭은 초산비닐모노머 1킬로그램(kg)당 40엔(약 370원) 이상, PVA는 같은 단위로 70엔(약 660원) 이상이다. 회사 측은 에틸렌 부족을 이유로 이미 3월 초부터 생산 조정에 들어갔으며, 오는 5월에도 출하 제한을 이어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PVA가 어디에 쓰이는지 아는 소비자는 많지 않다. 하지만 이 소재는 생활 곳곳에 녹아 있다.

포장용 수용성 필름, 건축용 접착제, 식품 포장재 코팅, 섬유 사이징 에이전트까지 PVA는 전 세계 수요의 44%를 섬유 부문이, 32%를 포장 분야가 흡수하는 산업 소재 Global Growth Insights다. 가격이 오르면 그 충격은 전방 산업으로 그대로 흘러간다.

이번 사태의 진원지는 호르무즈 해협이다. 일본에서 쓰이는 나프타는 수입 비중이 60%를 차지하는데, 이 가운데 70% 이상이 중동산이다.

일본은 나프타의 원료가 되는 원유 역시 90%를 중동에 의존하고 있다. 공급망의 최상류가 막히자 하류 전체가 흔들린 것이다.

아시아 해상 나프타 수입의 60% 이상이 중동에 의존하는 가운데, 동북아시아 CFR(운임·보험료 포함 인도가) 에틸렌 가격은 3월 19일 기준 t당 1351달러(약 204만 원)를 넘어 3월 초 696달러 대비 두 배 가까이 치솟았다.

신에츠화학공업에 그치지 않는다. 미쓰비시케미컬도 접착제와 사진용지 코팅제에 쓰이는 PVA 수지 가격을 이달 18일 출하분부터 1kg당 70엔 올렸고, 클라레는 젤리컵과 조미료 튜브 등 식품 포장 용기에 쓰이는 합성수지 에바(EVA)의 국내 판매 가격을 이달 15일 출하분부터 1kg당 75엔 인상했다. 일본 화학 업계가 '집단 가격 인상'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한국도 무풍지대 아니다…"나프타 크래커 구조, 일본보다 취약“


문제는 이 충격이 국경을 넘는다는 점이다. 업계에서는 한국 석유화학 산업이 일본보다 더 구조적으로 취약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과 일본 석유화학업체는 나프타 크래커 중심 구조여서 중동산 원유·나프타 조달 차질이 곧바로 기초유분 원가 상승으로 연결되며, 미국의 에탄 크래커보다 원가 변화에 더 취약하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보고서에서 "전쟁이 조기에 끝난다 해도 국제 유가는 전쟁 전 수준(배럴당 63달러(약 9만 5000원))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기 종전 시나리오에서도 배럴당 90달러(약 13만 5900원), 봉쇄 장기화 시 117달러(약 17만 6600원)까지 치솟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수치는 더 가파르다. 산업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봉쇄가 3개월 이상 지속되는 구조적 충격 단계에서는 한국 제조업 생산비가 최대 11.8% 상승할 것으로 추산됐다. 전 산업 평균으로도 9.4% 오르며, 석탄 및 석유제품 생산비는 60.4%까지 뛸 것으로 우려됐다.

소비자 물가도 직격탄을 맞는다. 석유화학 원료가 15% 오를 경우 국내 소비자물가지수(CPI)는 향후 3~6개월 내 최대 0.5%포인트 추가 상승할 것으로 추산되며, 가공식품 포장재와 비닐 용기 가격 상승은 식품 물가를 0.15%포인트 밀어 올리는 '식품인플레이션'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

실제로 최근 국내에서는 종량제 비닐봉투 품귀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국내 화학 소재 유통 업계에서는 일본발 PVA 가격 인상 공문이 이미 일부 수입 거래처를 통해 전달되기 시작했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PVA 시장은 일본산 비중이 상당해 신에쓰화학공업이나 미쓰비시케미컬발 인상이 현실화되면 국내 포장재·접착제 수요 업체의 원가 부담이 적잖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선택적 봉쇄'의 덫…장기화가 진짜 문제다


전면 봉쇄가 아니라는 점이 역설적으로 더 위험하다는 시각도 있다. 이란은 해협을 완전히 막을 경우 자국 수출도 마비된다는 점을 감안해, 전면 차단보다는 통항 불확실성을 높여 보험·운임·선박 운항을 위축시키는 방식으로 압박하고 있다. 시장이 '언제 막힐지 모른다'는 공포에 갇히는 구조다.

경제 전문매체 CNBC는 "전 세계 석유화학 공급의 22%가 호르무즈 해협에 묶여 있다"며 "공급망 마비에 따른 산업계의 타격이 임계점에 도달했다"고 보도했다.

글로벌 공급망 분석 기업 알타나 데이터에 따르면, 이번 사태로 영향을 받는 완제품 시장 규모는 3조 8000억 달러(약 5738조 원)에 이른다.

비닐봉투 한 장, 포장 필름 한 겹. 소비자 눈에 보이지 않는 이 소재들이 중동의 지정학 방정식에 묶여 있다.

호르무즈 해협이 열리지 않는 한, 일본 화학 업계에서 시작된 가격 인상의 파고는 한국의 포장재·접착제·섬유 산업을 넘어 결국 소비자 장바구니를 직접 건드릴 것이라는 관측이 시장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진형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