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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나이티드·아메리칸 합병, 항공권 값 오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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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나이티드·아메리칸 합병, 항공권 값 오르나

국내선 점유율 40% 공룡 탄생…반독점 심사·운임 급등 전망
인천발 미주 노선 운임 구조 변화 불가피
미 레이건 공항의 유나이티드·아메리칸항공 여객기. 사진=연합뉴스 이미지 확대보기
미 레이건 공항의 유나이티드·아메리칸항공 여객기. 사진=연합뉴스


미국발 항공 합병 논의가 태평양을 건너 인천공항 항공권값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최대 항공사 두 곳이 합쳐진다면 단순히 미국 내 문제가 아니라 한미 노선 운임 구조 전체가 흔들릴 수 있어서다.

미국 경제 전문 매체 CNBC와 로이터통신, 블룸버그는 지난 14일(현지시각) 유나이티드항공의 스콧 커비(Scott Kirby) 최고경영자(CEO)가 올 2월 25일 워싱턴 덜레스 국제공항 현안을 논의하는 백악관 회의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아메리칸항공과의 합병 구상을 직접 꺼냈다고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두 항공사가 결합하면 미국 국내선 공급 능력 기준 점유율 약 40%를 차지하는 세계 최대 항공사가 탄생한다.

반독점 장벽, 운임 급등 우려, 주 정부 소송 가능성까지 삼중 장애물이 가로막고 있어 업계에서는 냉담한 시선이 지배적이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친(親)기업 기조가 변수로 떠올랐다.

"시카고도 못 넘는다"…전문가 3인 일제히 회의론


조지워싱턴대 경쟁법 센터장 윌리엄 코백(William Kovacic) 교수는 "이건 가망이 없다"면서 "시카고를 비롯한 여러 대도시권에서 두 항공사 노선이 크게 겹쳐 있고, 어떤 노선 매각으로도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코백 교수의 진단은 숫자로 뒷받침된다. 항공 데이터 분석업체 OAG에 따르면 현재 유나이티드·아메리칸·델타·사우스웨스트 등 상위 4개 항공사가 미국 국내선 공급의 80%가량을 쥐고 있다.

두 항공사가 합쳐지면 단숨에 40%를 독식하는 구조다. TD카우엔(TD Cowen)의 항공 담당 애널리스트 톰 피츠제럴드(Tom Fitzgerald)는 두 항공사 노선이 겹치는 구간이 289개에 달해 대규모 노선 매각이 불가피하다고 분석했다.

항공 컨설팅 업체 ICF의 새뮤얼 엔겔(Samuel Engel) 수석 부사장은 "법무부가 이 딜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어떤 딜에 이의를 제기하겠느냐"며 공급 독점이 운임 상승으로 직결된다는 점을 반독점 심사의 핵심 쟁점으로 꼽았다.

항공 전문 애널리스트 스티븐 트렌트(Stephen Trent)는 BNN블룸버그에 "고유가가 이미 수익성 낮은 노선에서 항공사들을 밀어내고 있어, 합병 없이도 공급 조절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시포트 리서치 파트너스(Seaport Research Partners)의 다니엘 맥켄지(Daniel McKenzie) 애널리스트는 보도 당일 아메리칸항공 주가 8% 급등에 대해 "투자자들이 합병 가능성에 베팅한 게 아니라 공매도 세력이 포지션을 청산한 결과"라며 "이 딜은 공개적 반발이 너무 커지기 전까지 예의 바르게 검토되다 폐기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실적 31배 격차·이란 전쟁·주 정부 소송…세 겹의 장벽


이 논의가 수면 위로 오른 배경에는 아메리칸항공의 뚜렷한 부진이 자리한다. 지난해 아메리칸의 순이익은 1억 1100만 달러(약 1630억 원)로, 전년보다 87% 급감했다.

같은 기간 유나이티드의 순이익은 34억 달러(약 5조 220억 원)에 달했고, 매출은 591억 달러(약 87조 3000억 원)로 회사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아메리칸은 매출 546억 달러(약 80조 원)를 올렸음에도 고비용 구조와 프리미엄 고객층 공략 실패가 발목을 잡아 수익성 격차는 31배를 웃돈다.

커비 CEO가 합병을 꺼낸 것은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이 시작되기 사흘 전이었다. 전쟁 개시 이후 아메리칸 주가는 14.1% 더 빠졌고 유나이티드도 이에 준하는 하락 압력을 받았다.

항공유 가격이 치솟으면서 합병 논의는 더욱 복잡한 국면에 들어섰다. 델타항공 에드 배스천(Ed Bastian) CEO는 최근 실적 발표에서 "고유가는 강자와 약자를 가르고 재편을 강제하는 가장 강력한 촉매"라며 "델타는 유리한 위치에서 이 상황을 헤쳐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주 정부도 변수다. 유나이티드 본사가 있는 일리노이주와 아메리칸 본사가 있는 텍사스주 검찰이 합병 저지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연방 상원 반독점 소위원회를 이끄는 마이크 리(Mike Lee) 의원도 항공 산업 집중화 청문회를 잇달아 열며 경고음을 높이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태도는 다르다. 숀 더피(Sean Duffy) 교통부 장관은 최근 "항공업계에 합병의 여지가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대형 딜이 성사되는 것을 좋아한다"고 밝혔다.

바이든 행정부가 2023년 아메리칸-젯블루 제휴를 법원에서 막아내고, 이듬해 젯블루의 스피릿항공 인수까지 봉쇄한 것과는 결이 다른 태도다.

미국 하늘 재편되면 인천 항공권 값도 오른다


이 논의를 한국 여행객이 외면하기 어려운 이유가 있다. 현재 인천공항에는 유나이티드항공이 인천-샌프란시스코 등 미주 노선을 운항하고 있다.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합병 조건으로 공정거래위원회가 인천-LA, 인천-샌프란시스코를 비롯한 6개 미주·유럽 노선의 슬롯과 운수권을 에어프레미아·유나이티드항공·티웨이항공에 배분 완료한 상태여서, 유나이티드의 덩치가 더 커지면 배분받은 노선에서의 운임 협상력도 함께 강해진다.

대한항공은 오는 5월 인천-애틀랜타 노선을 주 14회로 늘리는 등 미주 노선 공급 확대에 나서고 있으며, 2025년 기준 미주 노선 여객 수 314만 명에 평균 탑승률 86.1%를 기록하고 있다.

지금은 대한항공-아시아나 합병 조건으로 경쟁 체제가 인위적으로 유지되고 있지만, 미국 측 항공사의 과점이 심화되면 이 균형이 다시 흔들릴 수 있다.

커비 CEO는 지난달 보스턴 업계 행사에서 "합병은 크고 어렵고 복잡한 일"이라며 즉각적인 추진 의지를 부인했다.

양사 모두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친기업 기조가 수십 년간 쌓아온 반독점 원칙을 얼마나 흔들 수 있느냐가 이 빅딜의 운명을 가를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항공판이 다시 재편되는 그날, 서울에서 뉴욕행 항공권 값도 함께 오를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진형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