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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해외 조선소서 군함 확보 검토…한국·일본 설계도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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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해외 조선소서 군함 확보 검토…한국·일본 설계도 후보

2027년 예산안에 18억5000만 달러 연구비 편성
130년 ‘자국 건조’ 원칙 흔들…한화 필리조선소 투자도 주목
한국 해군의 세종대왕급·정조대왕급 이지스 구축함과 충무공이순신급 구축함. 미국이 설계한 이지스 전투 시스템을 탑재한 이 함정들은 미 해군과의 상호 운용성이 높아 미국의 검토 대상으로 거론된다. 사진=대한민국 해군이미지 확대보기
한국 해군의 세종대왕급·정조대왕급 이지스 구축함과 충무공이순신급 구축함. 미국이 설계한 이지스 전투 시스템을 탑재한 이 함정들은 미 해군과의 상호 운용성이 높아 미국의 검토 대상으로 거론된다. 사진=대한민국 해군

미국 해군이 약 130년간 유지해 온 '군함 자국 건조' 원칙을 재검토하고 있다. 함정 부족과 조선 지연이 장기화하자 한국·일본 등 동맹국의 설계와 조선 역량을 미 함대 확충에 활용하는 방안까지 검토 대상에 올린 것이다. 미 해군력 재건의 병목이 더 이상 예산만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 기반의 문제로 번졌다는 신호다.

24일(현지 시각) USNI 뉴스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의 2027 회계연도 예산안에는 외국 설계 도입과 해외 조선소 활용 가능성을 조사하는 연구개발(R&D) 자금 18억 5000만 달러가 포함됐다. 예산 문서는 이 자금이 "국내 조선소로 더 많은 조선 역량을 유치하고 함대에 추가 함정을 투입하기 위한 전방위적 조달 옵션 조사에 사용될 것"이라며 "동맹국 조선 기업의 함정 또는 구성품 건조 능력 연구"를 명시적으로 포함했다. 이 예산은 기본 예산 외 조정 자금의 일부로 제안됐다.

"전통 공급원이 안 되면 다른 데서 구한다"


러스 보우트(Russ Vought) 백악관 예산관리국(OMB) 국장은 이번 주 해군 연맹 연례 Sea-Air-Space 심포지엄 기조연설에서 "우리는 더 많은 함정이 필요하고 지금 당장 필요하다"며 "기존 공급원에서 비용과 일정에 맞게 필요한 함정을 구할 수 없다면 다른 조선소에서 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USNI 뉴스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펜타곤은 해군에 한국과 일본 조선소 및 설계를 미 함대에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도록 구체적으로 지시했다. 해임되기 전날 USNI 뉴스와 인터뷰한 존 펠런(John Phelan) 전 해군장관은 "외국 전투함 가능성을 검토하도록 지시받았다. 그 길을 간다면 빠르게 함대에 투입 가능한 함정을 봐야 하는데, 그것은 생산성 면에서 한국과 일본 쪽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고 말했다.

한국과 일본 모두 미국이 설계한 이지스 전투 시스템과 AN/SPY-1 레이더를 핵심으로 하는 유도미사일 구축함을 운용한다. 네덜란드, 노르웨이, 스페인 같은 유럽 동맹국들도 자국 유도미사일 함정에 이지스를 탑재하고 있다. 단, 일부 시스템을 공유하더라도 미국 함정은 대부분의 동맹 해군보다 높은 생존성 기준으로 건조된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 설계를 도입한 컨스텔레이션(Constellation)급 유도미사일 호위함은 원설계 수정 과정에서 비용이 폭증하다 결국 사업이 취소됐다.

'핀란드 모델'이 선례…해외 건조 후 미국 내 기술 이전


트럼프 행정부가 구상하는 방식은 미 해안경비대의 아이스 팩트(Ice Pact)가 이미 실행 중이다. 미국·핀란드·캐나다의 협력 협정에 따라 새 중형 쇄빙선 선도함들은 핀란드 조선소에서 건조되고, 후속 함정은 캐나다 조선사 데이비(Davie)의 텍사스 조선소와 미국 볼링거(Bollinger)의 루이지애나 조선소에서 건조된다. 보우트 국장은 이 사례를 '핀란드 모델'이라고 불렀다.

2023년 11월 14일 미쓰비시중공업이 진수한 모가미급 유도미사일 호위함. 미국은 일본과 한국의 설계 및 조선 역량을 미 해군 함대 확충에 활용하는 방안을 18억 5000만 달러 규모의 연구를 통해 검토할 계획이다. 사진=일본 해상자위대이미지 확대보기
2023년 11월 14일 미쓰비시중공업이 진수한 모가미급 유도미사일 호위함. 미국은 일본과 한국의 설계 및 조선 역량을 미 해군 함대 확충에 활용하는 방안을 18억 5000만 달러 규모의 연구를 통해 검토할 계획이다. 사진=일본 해상자위대

한국과 캐나다 조선사들이 이탈리아와 호주 기업에 이어 미국 내 조선 자회사를 설립하는 흐름도 나타나고 있다. 데이비는 텍사스의 걸프-쿠퍼(Gulf-Cooper)를 인수해 10억 달러 확장을 약속했으며, 한화오션(Hanwha Ocean)은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의 필리조선소(Philly Shipyard)를 인수하고 추가 미 해군 사업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예산 발표 관련 두 차례의 행사에서 벤 레이놀즈(Ben Reynolds) 해군 예산 담당 부차관보 해군 소장은 한화의 필리조선소 투자를 미국이 추구하는 방식의 전형으로 거론했다. "우리에게 최선의 답은 미국 내 조선소를 도울 외국 투자와 외국 파트너십을 확보하는 것"이라고 그는 기자들에게 밝혔다. 이어 정식 예산 발표 브리핑에서는 "건조 측면에서 외국 조선소와의 협력 기회가 있는지 앞으로 1년여에 걸쳐 계속 살펴볼 것"이라고 덧붙였다.

19세기 이후 처음…법적 장벽과 국내 반발


해외 건조가 실현되려면 의회의 지지와 면제 조치가 필요하다. 미국 연방법은 국가 안보를 이유로 대통령의 면제가 없는 한 미 해군 군함의 해외 건조를 제한하고 있다. 미국은 과거 순찰정과 고무보트 같은 소형 함정은 동맹국에서 구매한 바 있다. 2차 대전 중 역 무기대여 프로그램으로 캐나다에서 소형 호위함을 구매하기도 했다. 그 외에 마지막으로 외국 조선소에서 주요 수상 전투함을 구매한 것은 19세기 말 영국 암스트롱 휘트워스(Armstrong Whitworth) 조선소에서 뉴올리언스(New Orleans)급 순양함 2척을 도입한 때였다.

미국 조선업계를 대표하는 단체 미국조선협회(Shipbuilders Council of America)는 성명에서 반발했다. 매튜 팩스턴(Matthew Paxton) 협회장은 "우리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연구하기 위해 수백만 달러의 납세자 돈을 쓸 필요가 없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선진적인 해군 함정을 일정과 예산에 맞춰 납품할 능력을 증명했다"고 밝혔다.

일부 의원들과 국내 조선소들도 미국 내 조선소가 아직 최대 용량에 도달하지 않았다며 비판을 제기할 것으로 보인다.


노정용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noja@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