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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값 100달러 공포"… 美 비축유 '5달러 할인' 공세에도 시장이 떨고 있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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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값 100달러 공포"… 美 비축유 '5달러 할인' 공세에도 시장이 떨고 있는 이유

유럽 정유사, 美 비축유 '5달러 할인'에 웃지만… 호르무즈 물동량 5%로 급락
IEA 주도 방출 물량, 글로벌 공급 부족분 50일 치 불과… '근본 처방' 멀어
중동발 지정학적 위기가 글로벌 원유 공급망을 정면으로 타격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주도하는 전략비축유(SPR) 방출이 시장의 공포를 잠재우기 위해 속도를 내고 있지만 '에너지 혈관'인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마비되면서 시장의 불안감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미지=제미나이3이미지 확대보기
중동발 지정학적 위기가 글로벌 원유 공급망을 정면으로 타격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주도하는 전략비축유(SPR) 방출이 시장의 공포를 잠재우기 위해 속도를 내고 있지만 '에너지 혈관'인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마비되면서 시장의 불안감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미지=제미나이3
중동발 지정학적 위기가 글로벌 원유 공급망을 정면으로 타격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주도하는 전략비축유(SPR) 방출이 시장의 공포를 잠재우기 위해 속도를 내고 있지만, '에너지 혈관'인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마비되면서 시장의 불안감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지난 25일(현지 시각) 블룸버그 통신과 오일프라이스닷컴 등의 보도를 종합하면,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3월 말부터 120일간 총 1억7200만 배럴의 비축유를 시장에 공급하기로 결정했다. 이 중 미국 에너지부(DOE)가 현재까지 승인해 출하한 물량만 7970만 배럴에 이른다.

트라피규라(2140만 배럴), 셸(1810만 배럴) 등 글로벌 에너지 공룡들이 이 물량을 확보했고, 상당 부분은 유럽행 배에 실리고 있다. 선박 추적 업체 케플러(Kpler) 데이터에 따르면, 초대형 원유 운반선 ‘이글 베르사유’호가 텍사스 브라이언 마운드 기지에서 출하된 원유 210만 배럴을 싣고 네덜란드 로테르담으로 가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5달러 할인'의 미끼와 교환 방식의 속내


미국산 비축유가 대서양을 건너 유럽으로 쏠리는 이유는 가격 경쟁력이다. 미국은 현재 유럽 정유사들에 현지 원유 대비 배럴당 약 5달러 저렴한 가격으로 비축유를 제공하고 있다. 브렌트유 가격이 배럴당 105달러 선에서 등락을 거듭하는 상황에서 유럽 정유업계에는 더할 나위 없는 매력적인 조건이다.

미국 정부는 이를 단순 매각이 아닌 '교환(exchange)' 방식으로 진행한다. 기업들이 당장 미국 비축유를 가져가는 대신, 향후 일정 시점에 프리미엄을 얹어 돌려받는 구조다. 미 정부는 오는 2028년까지 최대 22%의 이자를 더해 더 질 좋은 원유로 회수할 계획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 방식이 단기적인 유가 진정 효과는 줄 수 있어도 구조적 결핍을 해결하기엔 역부족이라 진단한다. 현재 중동 전쟁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이탈한 원유 물량은 하루 800만 배럴에 육박한다. IEA의 방출 물량을 다 합쳐도 전 세계 공급 부족분을 겨우 50일간 메울 수 있는 수준이다.

호르무즈 봉쇄, 돌아올 수 없는 강 건넜나


시장이 진정되지 않는 진짜 이유는 호르무즈 해협의 경색 국면 때문이다. 이란 당국은 자국 승인을 받은 국가에만 통항을 허용하고, 선박당 100만 달러(약 14억7100만 원)가 넘는 고액의 통행료를 강요하고 있다. 이슬람혁명수비대(IRGC)의 통제 아래 기뢰와 드론 공격 위협이 일상이 되면서 해상 보험료는 전쟁 이전보다 10배 이상 치솟았다. 사실상 상업용 항로로서 기능은 마비됐으며, 현재 호르무즈를 지나는 물동량은 평시 대비 5% 수준에 불과하다.

미국 전략비축유 재고가 4억1500만 배럴(총용량의 약 60%)까지 줄어든 상황에서 추가 공급 충격이 발생할 경우 시장을 방어할 수단은 이제 거의 바닥났다.

투자자가 지금 당장 확인해야 할 '3대 지표'


지정학적 리스크가 시장을 지배하는 국면에서 투자자는 다음 세 가지 지표를 통해 에너지 시장의 변곡점을 읽어내야 한다.

첫째, 브렌트유 100달러 지지선 여부다. 유가가 100달러를 꾸준히 웃돈다는 것은 공급 차질이 단순히 단기 문제가 아님을 의미한다.

둘째, 호르무즈 해협의 물동량 회복세다. 통행료 협상이나 이란의 태도 변화 혹은 군사적 충돌 완화 신호가 없다면 유가 상방 압력은 계속될 것이다.

셋째, 미국 정부의 재비축(Buy-back) 시점이다. 향후 정부가 비축유를 다시 채우기 위해 원유 매입에 나서는 순간, 이는 강력한 유가 상승 방아쇠가 될 수 있다.

비축유 방출은 전쟁이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임시로 쌓은 방파제에 불과하다. 파도가 멈추지 않는 한, 에너지 가격의 변동성은 투자자의 자산에 언제든 치명적인 리스크가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