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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비디아 패싱?" 중국의 4만7천 개 CPU 승부수, 한국 HBM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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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비디아 패싱?" 중국의 4만7천 개 CPU 승부수, 한국 HBM은?

GPU 배제한 엑사스케일 구현 '승부수'… 美 제재 정면 돌파하나
"실효성 의문" 전문가들 경고… 한국 HBM 공급망 재편 가능성도
중국이 미국의 고성능 반도체 수출 규제를 정면으로 돌파하겠다는 승부수를 또다시 던졌다. 이미지=제미나이3이미지 확대보기
중국이 미국의 고성능 반도체 수출 규제를 정면으로 돌파하겠다는 승부수를 또다시 던졌다. 이미지=제미나이3
중국이 미국의 고성능 반도체 수출 규제를 정면으로 돌파하겠다는 승부수를 던졌다. 29일(현지 시각) 톰스하드웨어 보도에 따르면 중국 선전 국가슈퍼컴퓨팅센터는 지난 24일 미국산 그래픽처리장치(GPU)를 배제한 ‘순수 국산 중앙처리장치(CPU)’ 기반의 엑사스케일 슈퍼컴퓨터 ‘카스 루이(Lingshen)’ 프로젝트를 공식 발표했다. 엔비디아 등 미국 기술기업에 의존해온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기술 자립을 통해 슈퍼컴퓨팅 패권을 확보하겠다는 구상이다.

GPU 없는 엑사스케일, 무모한 도전인가


이번 프로젝트의 핵심은 'CPU만으로 엑사스케일(초당 100경 번 연산) 성능을 구현한다'는 점이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빠른 슈퍼컴퓨터로 꼽히는 미국 에너지부의 ‘엘 캐피탄(El Capitan)’은 AMD의 MI300A APU를 기반으로 하며, GPU 가속기에 크게 의존한다. 반면 카스 루이는 4만7000개의 국산 프로세서를 92개의 컴퓨팅 캐비닛에 집약해 성능을 뽑아내겠다는 전략이다. 루위퉁 선전 슈퍼컴퓨팅센터 센터장이 이끄는 이번 프로젝트는 병렬 컴퓨팅 최적화를 통해 연산 성능의 한계를 극복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회의적인 시각을 견지한다. 무엇보다 ‘순수 국산’이라는 수식어에 의문이 남는다. 발표된 생산 시스템은 x86 기반 CPU를 사용할 계획인데, 현재 중국의 자국산 x86 기술은 자오신이나 하이곤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들은 인텔이나 AMD의 최신 칩 성능을 따라잡기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일각에서는 중국이 미국의 제재를 피하려고 설계 방식을 무리하게 변경한 것 아니냐는 분석까지 내놓는다.

한국 반도체, '공급망 대전환'에 대비해야

중국의 이번 시도는 한국 반도체 업계에 적지 않은 파장을 던진다. GPU 없는 슈퍼컴퓨터가 현실화된다면, 향후 인공지능(AI)과 고성능컴퓨팅(HPC) 시장의 수요 구조가 급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GPU에 최적화된 고대역폭메모리(HBM) 중심으로 재편되어 있다. 만약 중국이 CPU 중심의 독자적인 생태계를 구축하고, 다른 국가들까지 이를 따라갈 경우 HBM 수요의 흐름이 변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또한 미국이 중국의 CPU 자립을 저지하기 위해 범용 CPU 관련 기술 수출 제한을 한층 강화할 경우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은 더욱 파편화될 전망이다.

투자자가 지금 확인해야 할 '3가지 지표'


중국이 제시한 '2 엑사플롭스(ExaFLOPS)'라는 목표 성능은 엘 캐피탄의 실측값인 1.809 엑사플롭스를 웃돈다. 수치상으로는 위협적이지만 실제 가동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독자적인 생태계 구축을 위한 기술적 검증과 자국산 CPU의 실질적 연산 효율성 확보가 관건이다.

투자자와 업계 관계자라면 다음 3가지 지표를 면밀히 관찰해야 한다.

첫째, 자국산 CPU 기기의 '성적표'(벤치마크)다. 카스 루이에 탑재될 프로세서가 실제 범용 작업에서 인텔·AMD 제품 대비 어느 정도의 전력 효율과 연산 속도를 보이는가를 봐야 한다.

둘째, 생산 로드맵의 실체다. 시험 가동 단계에서 생산 단계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실제 공급망이 차질 없이 가동되는가는 중요한 확인 사항이다.

셋째, 미국의 후속 제재 여부다. 중국의 CPU 국산화 시도가 가시화될 경우 미국 상무부가 대중국 반도체 장비·설계 기술 수출 통제 범위를 CPU 분야까지 확대하는지도 살펴봐야 한다.

중국이 주창한 ‘기술 자립’이 거대한 굴기가 될지, 아니면 고립을 자초하는 '나 홀로 고집'이 될지는 이제부터 시작될 하드웨어 검증 과정에서 판가름 난다. 중국의 이번 발표는 단순히 슈퍼컴퓨터 하나를 만드는 문제가 아니다. 미국 기술 패권에 대한 '질문'이자 한국을 포함한 글로벌 공급망에 보내는 '경고장'이다. 우리는 이제 엔비디아의 GPU만이 정답인 시대를 넘어 컴퓨팅 하드웨어의 근본적인 지각변동에 대비해야 할 시점에 서 있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