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호르무즈 봉쇄, 전기차 배터리 직격탄… 니켈·리튬 공급망 '올스톱' 위기

글로벌이코노믹

호르무즈 봉쇄, 전기차 배터리 직격탄… 니켈·리튬 공급망 '올스톱' 위기

황산 공급난에 인니·호주 광산 조업 중단 우려… 글로벌 EV 생태계 붕괴 전조
중국 배터리 업계 직격령, 베이징 '이란·미국' 동시 압박 카드로 국면 전환 시도 전망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전쟁으로 통항이 제한되고 있는 호르무즈 해협(CG). 사진=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전쟁으로 통항이 제한되고 있는 호르무즈 해협(CG). 사진=연합뉴스
중동의 지정학 요충지인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에너지 위기를 넘어 글로벌 전기차(EV) 산업의 심장부인 배터리 공급망을 정조준하고 있다.

지난 11일(현지 시각) 로이터 통신의 클라이드 러셀 아시아 상품·에너지 전문 칼럼니스트는 "호르무즈 해협 폐쇄가 길어지면서 석유와 천연가스뿐만 아니라 전기차 배터리 제조의 필수 원료인 황산 수급에 비상이 걸렸다"고 분석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번 사태는 단순한 물류 차질을 넘어 세계 최대 배터리 생산국인 중국과 원자재 강국인 인도네시아·호주의 생산 기반을 뿌리째 흔드는 '3차 파급효과'로 확산하는 양상이다.

'배터리 혈액' 황산 공급망 마비…니켈·리튬 생산 단가 50% 폭등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해상 유황 물동량의 약 절반이 통과하는 핵심 경로다. 유황은 원유와 가스 정제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산물로, 배터리급 니켈과 리튬을 추출하는 데 꼭 필요한 '황산'의 주원료가 된다.

글로벌 원자재 분석업체 케플러(Kpler)의 통계 자료를 보면, 이란과 충돌하기 전 월평균 127만t에 이르렀던 호르무즈 해협 유황 물동량은 지난 3월 18만t, 4월에는 3만t 수준으로 급감했다.

공급 부족으로 인해 아시아 지역 유황 인도 가격은 t당 880달러(약 130만 원)까지 치솟으며 전쟁 전보다 50% 이상 폭등했다.

이러한 수치 정보는 배터리 업계에 치명적이다. 인도네시아의 고압산침출법(HPAL) 공정은 니켈을 추출하기 위해 막대한 양의 황산을 소비하는데, 원료 수급이 끊길 경우 공장 가동 중단이 불가피하다.

호주의 리튬 광산과 칠레의 구리 광산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다. 익명을 요구한 원자재 전문가는 "황산은 대체재를 찾기 어렵고, 대체 공정을 도입하더라도 생산 효율이 급감해 배터리 제조 원가 상승을 피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중국 EV 산업 '비상'…베이징, 미·이란 향한 외교적 총공세 예고

글로벌 전기차 시장의 패권을 쥔 중국 배터리 기업들은 이번 사태의 최대 피해자로 지목된다. 인도네시아산 니켈과 호주산 리튬에 대한 의존도가 압도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지난달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아시아 배터리 원자재 콘퍼런스'에 참석한 인도네시아와 호주의 광산업계 관계자들은 "중기적으로 황산 공급 물량을 확보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우려를 쏟아냈다.

시장에서는 이번 위기가 중국 정부의 외교전략 변화를 이끌어낼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그동안 이란의 우방을 자처했던 중국이 자국 핵심 산업인 전기차와 에너지저장장치(ESS) 부문이 붕괴될 위기에 처하자 이란에는 '해협 재개방'을, 미국 트럼프 행정부에는 '합의 도출'을 강하게 압박하는 중재자 역할을 자청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중국이 실질적인 경제적 타격을 입기 시작하면 호르무즈 문제는 더 이상 중동만의 전쟁이 아닌 글로벌 산업 전쟁으로 번질 것"이라는 해석이 우세하다.

알루미늄 공급 중단에 인도 '콜라 대란'…실물경제 곳곳 '공급망 동맥경화'


호르무즈 봉쇄의 불똥은 예상치 못한 곳으로도 튀고 있다. 해협을 통해 운송되던 전 세계 알루미늄 물량의 8%가 차단되면서 인도의 식음료 산업이 타격을 입은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케플러 데이터에 따르면 지난 4월 해협을 빠져나온 알루미늄 물량은 2만t에 불과해 평시 126만t과 비교하면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이로 인해 인도 현지에서는 알루미늄 캔 공급이 끊겨 특정 다이어트 콜라 제품이 품절되는 등 생필품 시장에 교란이 발생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음료 부족을 넘어 글로벌 공급망의 유기적 연결성이 끊겼을 때 소비자 물가와 행동 양식에 얼마나 즉각적인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으로 풀이된다.

국제사회는 호르무즈 해협의 폐쇄가 길어질 경우 에너지 가격 상승을 넘어 첨단산업의 가치사슬 자체가 해체될 수 있다는 공포에 직면해 있다.

업계에서는 앞으로 몇 주 내에 가시적인 외교적 돌파구가 마련되지 않을 경우 전기차 배터리 생산량 감산과 그에 따른 차량 가격 폭등이라는 '2차 인플레이션' 파도가 전 세계를 덮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진형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